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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Dec 30. 2020

나의 글 쓰기

있어 보이는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20201125 (~ 11/29 내용 추가 및 일부 수정) #글쓰기 #좋은글


 이제껏 나는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았다. 적어도 머리를 스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주제를 정하고 써본 적은 많지 않다. 브런치 심사에서 떨어지고 나서 왜 떨어졌는지를 생각해보니 계획 부분을 무책임하게 적었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식의 말은 아무 때나 아무렇게 글을 쓰겠다는 식으로 비쳤을지도 모른다. 한 달에 한 번씩은 책이든 영화든 읽고/보고 리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어떤 글을 써야 할까 기대 반 고민 반으로 영화 <트루먼 쇼>를 봤는데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여태 글을 많이 썼다고 생각했는데, 글이 이어지지 않는 경험은 오랜만이라 생소했다. 안 써지는 글은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생각해서 써야 했던 글인데... ‘뭐지. 나름 글 좀 쓰는 줄 알았더니.’ 평소에 쓰던 글과 뭐가 다를까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써왔던 글은 누군가에게 읽히기 위한 글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간간이 인스타에 글을 올리곤 했다. ‘찍어서 올린다’라는 인스타의 취지에는 맞지 않게, 아무런 사진을 올리고 평소 생각하던 걸 주저리주저리 적어서 올렸다. 당시의 내가 하던 고민들,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되니까 더 생각하지 않아도 쉽게 쓰인 글.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일기처럼 되었다. 사적인 내용이니 읽는 사람이 공감하기 힘들었겠지(그래서 좋아요 수가 적었나). 하지만 브런치는 그런 공간이 아니었고 내 글을 심사하던 사람들은 그걸 간파했나 보다. 그런 글들은 일기장에나 쓰라고.            



    

 그렇다면 어떤 글이 좋은 글일까? 어떤 글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각자 추구하는 글이, 끌리는 글이 다를 텐데. 어렸을 때의 나는 추리소설을 좋아했다. 셜록 홈스 전집, 뤼팽도 몇 권 읽었고, <초콜릿 칩 쿠키 살인사건>을 비롯한 코지 미스터리(cozy mystery) 책도 몇몇 읽었다. 중, 고등학교 때는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외고/대학 입시를 준비하느라 바빴는데, 그 와중에도 책을 놓지 않는 친구가 있었으니, 마음의 여유가 문제였으려나 싶다. 대학교에 와서도 책에 별로 관심을 주지 못하다가(책보다 자극적인 게 많았다), 일하기 시작하면서 (게임도, 술도 지겨워져서) 다시 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책을 읽기보다는, 사서 모으는 데에 더 재미를 붙였다. 책장의 절반 정도 책이 채워져 있지만, 읽은 책은 그 반도 되지 않는다. 뭐 어떠랴. 내 눈에 재밌어 보이는 것들을 샀으니 언젠가는 읽겠지. 


 판타지도 좋다. <해리포터>나 <룬의 아이들> 같은 책도 재밌게 읽었다. 만화도 좋다. <원피스>, <강철의 연금술사>, <샤먼 킹> 등. 하지만 그 책들을 사지는 않았다. 지금 책장에 꽂힌 책들은 소위 말하는 ‘있어 보이는 책’들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팩트풀니스>, <러브 팩추얼리>, <이기적 유전자>,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등... 일부는 읽고 일부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스스로 교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반영된 책들이 아닐지. 이런 책들을 읽고 거기서 얻은 지식을 뽐내고 싶은 게 아닐지. 내가 좋아하는 글은 그런 글이 아닐까. 적당히 지식이 있고, 적당히 공감할 수 있는 글. 


 자기 생각만 나열한 책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구나’라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별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구나’ 하는 작은 위로? 특히 요새는 독립출판이 가능해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보다) 쉽게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전할 수 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같은 책이 그 예이다. 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블로그, 브런치 등 어느 매체로든 끊임없이 글을 쓰다 보면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 책으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저런 방법을 통해 그런 책들이 많이 나온다는 건, 우리 사회가 아주 작은 위로조차 건네고 있지 못하다는 방증(傍證)일지도 모르겠다. 




 브런치에서 관심있게 보는 작가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자기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오는 반면, 다른 한 분은 글을 자주 올리지는 않지만, 읽으면 ‘좋은 글을 읽었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두 분의 글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어차피 사람들은 각자 받아들인 대로 각자 경험한 세상에 대한 글을 쓰는데, 왜 어떤 글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게 되고, 어떤 글은 ‘좋은 글이네’ 하게 되는 걸까? 


 며칠 전 미국에서 뇌졸중 이후 재활에 관한 연구를 하는 친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신이 쓴 글을 보내며, 일반인들을 위한 칼럼인데 읽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알려달라 했다. 글은 뇌파(腦波)로 뇌졸중의 예방과 치료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뇌파에 관한 전문적인 설명이 조금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적혀있었다. (글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뇌파 말고 다른 뇌파에 관한 설명이 너무 길어서 지워도 되지 않겠냐고 물으니, 그러면 내용이 너무 적어져서 어쩔 수 없단다) 적당한 전문성. 




 나 혼자 쓰고 자족하는 글이 아닌, 남이 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바라는 글이 적당한 지식과 적당한 공감이 담긴 글인 만큼, 그런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의 내가 가진 지식은 정신의학이나 불교 지식이니 그걸 글에 잘 녹여내면 좋겠다. 나의 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내가 표현하려 한 의미를 저 사람도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지, 혹시 오해를 낳진 않을지. 세상에 나가려는 자는 그 무게 또한 견뎌야 하는 법. 이제 발을 떼기 시작했고, 또 넘어지기도 하겠지만 꾸준히 한 발짝 한 발짝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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