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H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퐁퐁남’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내가 이해한 ‘퐁퐁남’의 정의는, 이 남자, 저 남자 다 만나보고 놀 거 다 놀다가 안정을 찾는 여자에게 ‘취집’ 당하는 남자다. 단어 자체가 이미 ‘남자가 불쌍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어서 이 단어 또한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표현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처음 단어를 들었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듣기 불편했는데, H와 얘기하다 보니 좀 정리가 되었다. 우선, 남녀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서로를 믿지 못하면 왜 계속 만나는가? 상대가 작정하고 속인다면 어쩔 수 없지만. 애초에 상대가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관계는 깊은 관계가 될 수도, 오래갈 수도 없다.
두 번째로 자신이 스스로에게 ‘퐁퐁남’이라고 하는 것은 자조(自嘲)이자, 자신이 만나는 사람에 대한 욕밖에 되지 않는다. 못 놀아본 게 한이라면 솔직하게 못 놀아본 게 아쉽다고 해라. 지금 만나는 사람에게 만족하지 못하고 더 나은 인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헤어져라. 당신을 믿고 함께하기로 한 사람을 왜 굳이 욕 먹이는가?
다음으로, 누군가에게 ‘퐁퐁남’이라고 하거나, ‘설거지 당했다’라고 하는 건 무례한 언사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건 정서적, 신체적으로 가까워지고, 가까운 사람밖에 모르는 비밀도 얘기하며, 둘만의 일들도 생긴다는 의미다. 그런 일들을 하나도 모르면서 겉으로 드러난 사실만 갖고 ‘설거지 당했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자신이 그 정도로 가벼운 사람이라는 것을 방증(傍證)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결국 ‘퐁퐁남’이라는 단어는 스스로에게도, 남에게도 쓸 말이 아닌 게다.
사람 간의 관계가 다 그렇지만, 특히 연애에 있어서 두 사람의 이야기는 둘만의 것이다. 사람들은 남의 얘길 하길 좋아하고, 둘의 이야기가 드러낼수록 상처받는 건 당사자들 뿐이다. 어쩌면 이 ‘퐁퐁남’이라는 단어도, 자신의 불만을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사람의 찌질한 발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