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易地思之), 회향(廻向)
#20230310 #역지사지 #회향(廻向)
예전에 아버지와 나눈 대화 중 하나이다. 다른 길로 빠지는 차선 끝에서 끼워달라고 머리를 들이밀면, 아버지는 불쌍해서 끼워주고 싶지 않냐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괘씸해서 안 끼워준다고 했다. (이미 마음의 차이가 느껴지십니까?)
지난주 금요일(3/3) 퇴근 시간에 천안에서 세종으로 넘어오는데 그런 일이 생겼다. 아산에서 세종으로 빠지는 길에(정확히는 온천대로에서 세종평택로로 빠지는 길에) 줄이 그렇게 길게 서 있을 줄 몰랐다. 퇴근 시간인 걸 간과해서였을까? ‘끼어들어야 하는데 어쩌지?’ 하면서도 ‘에잇, 몰라’ 하면서 계속 앞으로 가다가, 빠지는 부분에서 머리를 들이밀었는데, 옆 차가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여기서 못 빠지면 빙 둘러서 가야 해, 좀 봐줘라’ 나는 애가 타는데, 옆 차는 안 비켜주겠다고 앞 차 꽁무니에 바짝 붙여서 운전하는 와중에 줄이 잠시 멈췄다. 나는 계속 머리를 들이밀면서 미안하다고 비상깜빡이를 켰다. 줄이 다시 진행하자 옆 차는 더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얼른 줄에 들어섰다.
이후에 오면서 미안한 마음에, 내 앞에 끼어들고자 하는 차들은 다 끼워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은하수 교차로에 우회전하는 길이 또 길게 줄을 서는데, 거기서는 일찌감치 줄을 서서 혹시나 끼워줘야 하는 차가 없는지 살폈다. 중간에 신호를 한 번 받으니, 옆 차선에 서 있던 차가 속도를 내서 내 앞에 끼어들기에 그러려니 했다. 바쁜 일이 있겠거니, 길을 잘 모르겠거니. 생각할 수 있는 이유야 여러 가지다.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이지. 받은 만큼이라도 돌려주자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