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상(我相)
#20230308 #아상
나는 다니는 절에서 영상부의 일을 하고 있다. 법회 때는 법회 준비 및 뒷정리를 하고 있다.
법회가 시작하기 직전에야 법상(法床)의 마이크가 잘 나오는지만 확인하고, 패드 전원은 확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총무부장께서 슬쩍 보시니 꺼져있다고 하셨다. 아차 싶기도 하고, 불편하시겠다 싶어 내 마음도 불편했다.
끝나고 확인해보니 패드는 역시 꺼져있었다. 법상에 올라가지 않고 그 앞에서 전원 버튼을 누르려는데, 어떤 절 어른께서 갑자기 내 팔을 잡으셨다. 법상 앞에 있는 봉황 장식에 닿지 말라고 하셨다. 대답은 “아, 예” 했지만, 속으로는 ‘뭐야?’ 이랬다. 그 뒤에서 촛불을 끄시던 다른 어른께서 그 상황을 보시고는, 나한테 “장식에 자꾸 닿으면 금박이 벗겨져요~”라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나는 또 대답만 “아, 그렇군요” 하고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패드의 전원 버튼을 찾아 눌렀다. 패드는 그래도 켜지지 않았다. ‘왜 안 켜지지?’ 하고 팔을 빼다가 결국 오른쪽 팔꿈치를 봉황 머리에 찍었다. 무척 아팠다.
알고 보니 보조배터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항상 ‘점심 먹고 올라와서 연결해야지’ 하는데, 다들 까먹었나 보다. 나는 겉으로는 “네” 하고,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내 모습을 생각했다. 아상(我相)이 그렇게나 두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