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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이 Mar 12. 2023

29. 장자(長者)와 궁자(窮子) 이야기

법화칠유(法華七喩)

#20230312 #법화칠유 #장자궁자이야기


 3월 첫 주는 하루만 출근하고, 대부분을 세종에서 보냈다. 엄마는 세종에 머무는 날 위해서 소고깃국을 끓여서 얼려놓고, 다른 반찬들도 많이 두고 가셨다. 근데 나는 올라간 첫날에는 지친다며(진주에서 세종 집까지 door-to-door 5시간) 치킨을 시켜 먹었고, 다음날에도 사 먹거나, 시켜 먹거나, 라면을 먹었다. 그래서 엄마가 해준 건 소고깃국 하나 데워 먹은 거 말고는 더 안 먹었다. 엄마가 썰어둔 김치만 잔뜩 먹었네.


 문득 장자(長者; 부자)와 궁자(窮子; 거렁뱅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이야기는 법화칠유(法華七喩) 중 하나이며, 법화경 신해품(信解品) 제4에 나오는 비유이다.

 가난한 거렁뱅이는 원래 부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어려서 미아가 되어 자기의 신분도 모르고 유랑 걸식하며 성장한다. 성장한 뒤에도 가난과 싸우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품팔이를 하며 유랑한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부자 아버지가 있는 고향에 도착해 장자의 집 앞에 도달했지만 비천한 신분에 다가갈 수 없다고 느껴 도망한다. 거지가 자신의 아들임을 직감한 장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거지를 자신의 집에서 일할 수 있도록 유인한다. 그리고 점차 환경에 익숙해지자 여러 가지 기술을 가르쳐 마침내는 장자의 출납을 담당하는 회계로 키운다. 이후 집사로 성장시켰다가 자신의 아들임을 인식시키고, 자신의 모든 재산을 물려준다.*


 여기서 부자는 부처님을, 거렁뱅이 아들은 중생을 비유한 것이다. 부처님은 어떻게든 자기 재산(깨달음)을 다 물려주려고 하는데, 어리석은 중생들은 자기가 자격이 안 되는 줄 알고 그걸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엄마도 나를 생각해서 다 두고 가셨는데, 나는 귀찮다고 안 먹었으니...


 전법(傳法)을 할 때도 비슷한 비유가 되지 않을까 싶다. 종교가 없는 사람에게 종교를 갖게 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나라고 신심(信心)이 깊은 게 아닌데. 하지만 ‘·공간이 있으면 변화[생로병사(生老病死), 성주괴공(成住壞空), 흥망성쇠(興亡盛衰), 생주이멸(生住異滅)]가 있다. 그래서 괴롭다. 그러니 시·공간을 떠난 자리를 찾아야 한다’라는 법문을 생각해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은데, 이걸 어떻게 전해야 할까?


 종교(宗敎)란 한자 그대로 마루(최고)의 가르침이어야 하고, 우주의 법칙과 괴로움을 없애는 법을 알려줄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종교와 신앙의 차이니까. ‘믿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알면 알수록 더 믿어지는 그런 것. 무(無; 없다)과 미지(未知; 모른다)는 다른 것이고, 나도 경험해본 게 없어서 아직 ‘믿어두는’ 부분이 많지만, 그럴 법한데. 분명히 있고, 증득해 나가야 하는 것들이라고 하셨으니까, 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할 따름이다. 전법이 어려운 건, 상대에게 적절한 상황과 그에 맞는 법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가 없어서 그렇다.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법화칠유(法華七喩),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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