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없는데 녹색어머니를 어떻게 해
"어머니가 없는데 녹색어머니를 어떻게 해 "
초등학교 시절 나에게 푸르른 녹색은 두려움의 색이었다.
어린 나이에 겪은 일이었지만, 녹색만 보면 입안이 마르고 가슴이 뛰었다.
심지어 컨테이너 박스에 사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새벽 등교를 통해 친구들의 시선을 피했지만, 결국 나를 덮친 것은 '녹색 조끼'였다.
그렇다. 녹색어머니라는 봉사의 존재는 나에게 공포였다.
내게는 없는 '어머니'라는 존재와 함께.
"돈독아! 내일 돈독이네 어머니 차례야"
하교 길에 앞 번호 친구 어머니가 던진 말이었다.
8살.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장이 벌렁거리고 식은땀이 흘렀다. 녹색어머니.
각 반 어머니들이 돌아가며 교통안전 봉사를 하는 활동이었다.
그들이 입은 조끼가 녹색이라 불리던 이름.
당시 아버지와 남동생만 있던 우리 집에서 '어머니'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컨테이너 박스 집 때문에 이미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나는 이제 '엄마가 없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 더 큰 놀림거리가 될까 두려웠다.
그전까지는 새벽 등교를 통해 친구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지만,
녹색어머니는 피할 수 없었다. 내 순번이 왔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또 다른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먼저 나와 거짓말은 친구가 되었다. 밤새 고민한 끝에 다음 날 아침,
나는 큰 결심을 했다. 문구점에 가서 녹색 조끼를 빌린 뒤,
그 커다란 조끼를 입고 횡단보도 앞에 홀로 서 있었다.
지나가는 어른들이 물었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니?"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엄마가 늦잠 자서 제가 대신 왔어요! 저는 원래 학교 일찍 오거든요!"
그렇게 3시간 같은 30분이 흘렀고, 결국 담임 선생님이 나를 찾으러 왔다.
나는 잘못한 것도 없는데 횡설수설했다.
"녹색이 좋아요. 자동차가 좋아요."
"그래서 저기에 있었어요"
그리고 4교시가 끝나고 종례 시간, 선생님은 나에게 자리에 남으라고 했다.
엄마가 늦잠꾸러기라고 해야 하나,
엄마가 녹색을 싫어한다고 해야 하나.
선생님에게조차 '엄마가 없다'라고 말하면
선생님마저 날 놀릴 것 같았다.
그래서 작은 거짓말을 만들어냈던 나의 어린 시절.
선생님은 꼬옥 나를 안아주었다.
그렇게 몇 분 동안을 한참을 우셨던 것 같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 비밀,
'없는 어머니'를 대신하려 했던 큰 조끼의 무게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은
이미 모든 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리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우셨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
엄마가 없다는 것을
부끄럽지만 꼬옥 안아준 선생님은 나를
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때의 기억은 거짓말이 아닌 솔직해야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 이후 나의 강점은 진실성, 솔직함이 되어
지금까지도 인정을 받는다."
어린 시절 상처가 성인이 된 내게 남긴 것은 의외로 '진실성'과 '솔직함'이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내 모습,
그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푸르른 녹색을 피해 달리던
어린 나에게 진솔한 습관을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