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집에 대한 첫 기억은 뜨겁다. 그리고 매섭다.
여름이면 철판으로 된 벽이 달궈져 뜨겁고 겨울이면 벽에 한기가 돌아 얼음장 같던 그곳에서 나는 자랐다.
그렇다. 우리 집은 주소가 없는 컨테이너 박스였다. 심지어 주소가 없는 곳이었다.
초등학생들이 그렇듯, 삼삼오오 모여 학교 가는 길에 한 친구의 질문이 처음으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너네 집은 왜 공사장이야?"
친구가 내게 던진 첫 질문이었다.
8살. 4월 그날 처음으로 나는 내 집이 다른 집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집은 아파트나 주택이었지만,
내 집은 공사장 인부들이 하루 일자리를
배정받는 컨테이너 사무소와 같은 곳이었다.
특히 학교에서 주소를 적으라 했을 때,
나는 우리 집 주소가 없어 옆집 주소를 썼다. 집에 대해 물어본 친구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너네 집은 왜 공사장이야?"
그 순간 확실하게 느낀 점이 있다면 바로 '창피함'이었다. 확실히 그전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본능적으로 부끄럽고 얼굴이 벌게졌다.
그 이유는 어려도 느낄 수 있었던 '남들과 다르다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감정이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컨테이너 박스가 내 집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 시작했다.
먼저 나와 새벽 공기는 친구가 되었다.
매일 아침 6시, 다른 친구들이 일어나기도 전에 나는 이미 등굣길에 올랐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친구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다는 안도감이 컸다.
초등학교 1학년이 6시에 등교를 하면, 아무도 만나지 않고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친구들도, 선생님도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니,
아침 일찍 학교를 가는 것이 마음 편하고 행복했다.
그때의 습관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일까?
지금도 6시면 눈을 떠서 하루를 시작한다.
밤을 새우는 것은 너무 어렵지만
새벽 기상하는 것은 나에게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지금의 나는 어쩌면 결핍과
부끄러움이 만들어낸 작품인지도 모른다.
주소가 없던 집
컨테이너 박스에서의 삶이
오히려 남들보다 앞선 새벽의 세계를 선물해 주었다.
새벽 기상 습관을 만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