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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Apr 29. 2019

2002년 월드컵, 붉은악마 “대~한~민국!”

상사맨, 이태리전 승리 후에 이태리 출장을 가다

    “대~한~민국!!” “짜짝~짝 짝짝~” “대~한~민국!!” “짜짝~짝 짝짝~”


    아마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구호를 흥얼거리면 바로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2002년월드컵의 하이라이트 중 백미는 아마 안정환 선수가 연장전에서 헤딩골로 이태리팀을 역전해서 이긴 경기일 것이다. 특히 우리가 이기고도 어리둥절한 게임이었으니 우승을 목표로 하던 이태리는 한국에 당한 패배에 이태리 전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당시에 나는 이태리 공급선으로부터 카메라 필름 소싱을 책임지고 있었기에 매달 이태리로 출장을 다니던 시절이었다. 이태리전의 승리의 기쁨을 안고 이태리 출장길에 또 오른 나는 비행기안에서 스페인전의 승리 소식도 전해 들었다. 당연히 월드컵은 전국민의 관심사였기에 유럽으로 향하던 비행기안에서 기장이 스페인전의 승전보 소식을 알려주었다. 국적기를 타고 가고 있었기에 승객들의 환호성이 크게 터질 줄 알았는데 그날의 비행기에는 일본인 단체가 많이 탑승을 하고 있었기에 나와 몇몇 한국인 승객들만 소리를 지르고 나서 멀쑥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가 대세이고 필름 카메라는 유물 취급을 받고 있지만 디지털 카메라의 급격한 성장 전까지 사진이라 함은 35mm 필름 카메라 사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코닥, 아그파, 후지, 코니카 등 필름은 미국, 독일 그리고 일본의 몇 개 브랜드가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장에서 이태리의 공급선은 OEM 브랜드로 다른 회사들의 필름을 생산해주는 거의 유일한 회사였다.


    필름을 사업부의 핵심 성장아이템으로 선정을 하고 구매효율화에 대해서 개선 및 극대화하는 것이 당시 나의 미션이었기에 매월 이태리 출장을 진행하였다.  종합상사의 특성상 해외출장은 항상 1인 단독출장으로 이루어졌다.  반면 출장 가서 내가 항상 상대해야 할 공급선의 인력들은 사장을 포함한 영업 총괄 및 담당자, 공장생산담당, 주요 이슈별 R&D 담당 등 매번 8 ~ 10명씩 되었다.  


    출장은 통상 현지에서 2 ~ 3일간 집중 미팅을 각 섹션별로 진행을 하였다.  상대의 영업총괄과 담당자는 내 출장기간 중 모든 미팅 참석 및 아침 픽업부터 저녁 식사까지 여러 이슈들에 대해서 논의를 하였기에 1년 이상 진행된 사업관계는 담당자들간에 비즈니스 이상의 개인적인 친분과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월드컵 이태리전 승리 후 출장에 이태리 친구들을 위해 나는 특별한 선물을 준비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당시 전국민이 한두 장씩은 사서 입었다는 붉은 악마(Be the Reds) 티셔츠였다.  월드컵 초기엔 티셔츠 한 장당 5,000원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승리가 지속될수록 티셔츠의 가격은 계속 오르고 한장에 15,000원을 줘도 구하기가 어려울 지경이 되었다.  전국적으로 붉은 천이 바닥이 나서 흰천에 붉은색으로 염색을 해서 티셔츠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였다.  나는 어렵게 7~8장의 붉은 악마 티셔츠를 구했고 모자란 숫자는 붉은 악마 머플러도 구매를 하여 이쁘게 개별 포장을 하였다.


    출장으로 도착한 이태리의 분위기는 말그대로 살벌했다.  


    호텔방에서 켠 TV에는 온통 월드컵 이야기와 한국과 이태리전 그리고 한국과 스페인전을 계속 보여주면 프로그램에 참석한 패널들이 고성을 지르며 열띤 토론을 하고 있었다.  공급선은 밀라노에서 약 1시간 떨어진 제노아(우리에겐 제노바로 알려진) 근처에 위치했다.  도착한 다음날 아침 일찍 호텔 앞을 산책을 하고 있던 나에게 중년의 이태리 남성이 다가와서 다짜고짜 뭐라고 핏대를 올리면서 이야기를 했다. 이태리어를 모르지만 이는 분명히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태리 출장 아침 산책 중 (이 산책중에 누군가 다가와서 내가 다짜고짜 화를 냈다)

    

     이태리 친구들에게 귀한 선물까지 준비한 나는 이번 출장 미팅은 상당히 재밌고 흥미로운 협상이 될 것으로 짐작을 하고 설레였었다.  여느 출장과 같이 공급선의 7 ~8명이 각부서 책임자들과 미팅을 진행하면서 미팅 중간중간 서로간에 이견이 있거나 네고를 해야 할 땐 “우리 축구이야기 좀 할까?” 라고 농담을 던지면서 상대방의 멘탈을 흔들고 협상을 즐겼다.  정말 다혈질인 몇몇 친구들은 “제발 축구이야기 하지마”라고 짜증을 내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가기까지 했다.


    내 출장전에 일본에서도 출장자들이 왔는데 일본 출장자들이 한국축구 후에 이태리에서 한국인으로 오해가 되어 봉변을 당할 까봐 일본여권을 꺼내어 흔들며 “We are Japanese, not Korean” 라고 외치면서 왔다는 농담 아닌 농담과 함께 나에게 밖에 돌아다닐 때 모르는 이태리사람들에게 봉변을 조심하라고 충고까지 해주었다.

 

    첫날의 미팅을 마치고 다같이 저녁식사를 하러 향한 곳은 지역의 유명한 레스토랑이었다. 레스토랑에 아시아인인 내가 들어서자 일제히 식사를 하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면서 수근 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나를 비롯해 공급선 담당자들이 테이블에 앉고나서 나는 준비했던 선물을 꺼내서 한명 한명씩 나누어 주었다. 


      뜻밖에 선물에 그들은 감사 해하며 그 자리에서 이쁘게 포장된 선물을 열어봐도 좋으냐고 물었다. 나는 “My pleasure~”라고 답을 하며 어서 선물을 열어보라고 권했다.  그 다음의 결과는 독자 여러분들에게 맡긴다.

                                             

   다음날 지속된 미팅은 다시 축구 농담과 붉은 악마 티셔츠 선물 등의 이야기로 재미있게 진행이 되었다.  이태리 친구들은 미팅을 중단하고 그날 진행되고 있던 월드컵 4강전인 한국과 독일의 경기를 보자고 계속 우겼다.  나는 출장와서 미팅을 해야지 뭔 말이냐고 했지만 마침 점심시간에 겹쳐서 같이 4강전을 구내식당에서 관전하였다.  다행히 월드컵 축구의 헤프닝은 4강전에서 한국이 독일에 패한 후 에야 이태리친구들의 마음도 풀리고 잘 마무리가 되었다.


're:Global(다시, 글로벌)' 저자 정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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