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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Apr 29. 2019

상사맨, 중국 술상무를 이겨라

해외출장 에피소드

    중국의 거래선 식사와 술상무에 대한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새로운 스피커 공급선을 선정하기 위해 출장을 진행하였다.  당시 우리 부서에서는 스피커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스피커 전문인 경력사원을 입사시켰고 당시 구매, 제품 개발을 책임지던 나는 이 B대리를 출장에 동반했다.  중국 스피커 공장에서는 한국의 대기업에 납품을 할 중요한 기회였기에 현지 공장에 도착을 하니 그 준비가 만만치 않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미팅엔 회사의 오너인 회장이 직접 참석을 하였고 자신들이 개발한 수많은 스피커 샘플이 미팅 룸에 전시되어 있었다. 


    공급선의 담당 매니저는 제품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했지만 소싱 하기에는 제품의 끝마무리 등 구매책임자 이던 내가 기대하던 수준에는 못 미치는 점들이 적지 않았다. 소개하는 제품마다 기대에 못 미치는 점과 개선해야 할 사항들에 대해서 지적을 하자 회장이 자신의 직원들에게 호통을 치며 다른 제품을 가져오라고 하는 등 미팅의 분위기는 점점 험악 해졌다.  특히 제품의 테크니컬 한 측면의 미흡한 점은 동반한 B대리가 하나 하나 언급을 하였다. 


    당시 과장이었던 나는 스피커 전문가인 B대리와 첫 출장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B대리도 경력 입사 후 긴장되는 첫 출장이었던 것이었다. 문제는 스피커 전문가였던 B대리는 기존 회사에서 해외거래선과 교류기회가 없었기에 영어를 구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따라서 내가 회의를 진행하는 내내 B대리의 대화까지 하나하나 통역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이야기는 물론 B대리의 이야기까지 통역을 하면서 진행하는 회의는 다른 출장보다 더 피곤하게 느껴졌다. 

    

    자신들의 제품에 대해서 많은 개선점이 요청되자 자존심이 상한 회장은 회의를 계속 진행하였고 점심식사도 공장에서 간단히 먹고 강행이 되었다.  미팅은 저녁식사를 위해 예약했던 식당도 취소를 해야 할 정도로 장시간 진행이 되었다.  아침에 시작된 회의는 장장 10시간이 넘어서야 마칠 수가 있었다.  회장은 예약했던 식당은 미팅이 길어져서 대안으로 예약한 곳은 아주 좋은 식당이 아니라며 미안해하면서 이동을 했다.  나와 B대리는 사실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먹지 않더라도 호텔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출장을 온 이상 현지 호스트의 호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식당에 도착해서 예약된 방으로 들어가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회장이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자 방으로 하루 종일 회의때에는 참석을 하지 않았던 한사람이 양손에 쇼핑백을 무겁게 들고 들어왔다. 그는 B대리 옆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석한 공장의 매니저가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는 나에게 명함을 정중히 건네었다.  


    명함에는 ‘CEO Assistant(회장 보좌역)’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다.  짐작한 대로 그는 ‘술상무’였다.  당시 중국 출장을 많이 진행하고 있던 나는 이미 몇몇 업체에서 술상무가 나오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술상무가 이렇게 정식으로 자기명함을 건네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양손 쇼핑백 가득이 무겁게 들고 온 것은 50도가 넘는 중국의 백주였다. 


    하지만 그날 석식은 또 한가지의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B대리가 술은 한잔만 마셔도 얼굴이 새빨개지며 힘들어하는 체질이었던 것이다.  깎뚜기 헤어스타일의 덩치 좋은 술상무 소개가 끝나자 B대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B대리는 내 눈을 계속 쳐다보았다. 사실 B대리에게 나는 새로 입사한 회사의 엄한 직속 상사였던 것이다. 당일 미팅에서도 내가 B대리를 대신해 영어 통역까지 하면서 업무가 진행된 것에 미안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술상무까지 옆에 앉아있으니 그야말로 B대리는 멘붕이 되었던 것이다.

 

    회장은 내 옆에서 그리고 술상무는 B대리 옆에서 계속 잔을 권하며 건배를 외쳐 댔다. 더욱이 술상무는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서 나와 B대리의 눈만 마주쳐도 술을 따라주며 건배를 외치며 자기도 건배한 술잔을 자신의 머리위에 터는 중국의 술자리 예의를 보여주었다.


    나는 B대리에게 식사가 시작되면서 넌지시 “B대리, 힘든 거는 알지만 거래선 앞에서 절대로 흐트러지거나 술에 취한 모습을 보이면 안돼” 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B대리는 그야말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나와 B대리는 어서 호텔로 돌아가서 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행히 식사를 마치고 이제 호텔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회장이 다시 외쳤다.  오늘 회의도 오래했고 식사도 예정한 곳에서 못해서 미안하니 2차로 호텔 바에 가서 한잔 더하자고 제안을 했다.   B대리는 거의 울상이 되어 있었다.


    호스트인 상대방의 차량으로 이동을 하고 행동을 같이 하니 우리만 따로 도망을 갈 수도 없었다.  또한 그것은 출장 시 예의도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2차로 장소로 갈 수밖에 없었다.  2차 장소에 도착하자 술이 얼큰하게 오른 회장은 앉아서 졸기 시작했다.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당일 B대리의 술실력 등 상황을 파악한 술상무의 공격은 나한테 시작이 되었다.  B대리는 한쪽 구석에서 술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술상무의 페이스에 말리면 불리한 것이 자명하니 나는 출장 생존비법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술자리에서는 주사위 게임 등 여러가지 중국식 술자리 게임이 있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좀더 익숙하고 상대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는 한국식 게임으로 전환을 하곤 했다.  


    그날은 같은 아시아 문화를 적극 활용해서 ‘장유유서’전략을 폈다.  술상무에게 ‘당신 몇살이냐?’고 질문을 하자 웃으며 본인의 중국 공민증(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는 내나이를 짐작하며 자신보다 어릴 것이라고 하였다.  사실 내가 술상무보다 나이가 1살 적었다. 


    하지만 술상무도 어느정도 술이 취한상태이기에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면서 주민등록증의 나이부분을 슬쩍 가리면서 보여주었다.  이에 술상무는 나를 ‘따거(형님)’ 하였다.  따거의 위세로 나는 술상무에게 오히려 술을 계속 주어서 술상무를 골아 떨어지게 성공을 하였다. 


    이때 한잠 잘 자고 있던 회장이 깨어났다.  그러자 구석에서 잘 쉬고 있던 공급선의 매니저가 한테이블을 치우더니 그 위로 큰 맥주잔을 들고 뛰어 올라서서 큰 잔에 양주를 반, 그리고 맥주를 반씩 한잔 가득이 채우고 잔을 높이 들면서 “삼성과 XXX(자신들 회사이름)을 위하여!” 라고 크게 외치고 원샷을 하였다.  회장은 이러한 자신의 직원의 행동에 매우 흡족해하는 눈치였다. 


    이제 우리도 테이블로 올라가서 똑 같은 세레머니를 해야 할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B대리였다.  그 순간 B대리는 내 팔을 꼭 붙잡고 내 귀에 속삭였다. “과장님, 저 올라가면 죽습니다.”  나는 B대리 눈을 쳐다본 후 한숨을 내쉬며 테이블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한잔 가득한 중국의 폭탄주를 들고 “XXX와 삼성을 위하여!”라고 외치고 원샷을 하였다.  다행히 이 세레머니를 마지막으로 그날의 술자리는 마칠 수가 있었다. 


    다음날 귀국길에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전날 숙취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B대리에게 이야기했다. “B대리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꼈을 테니 이제 영어공부에 전력을 해라. 그리고 술도 한두잔씩 연습 좀 해라.”  마침내 짧았던 출장을 마치고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기내식으로 점심이 나왔으나 나는 손도 댈 수가 없었다.  맛있게 기내식을 먹던 B대리는 “과장님 왜 식사 안하세요?”라고 순진하게 질문을 하여 쓰린 내 속을 더 뒤집어지게 했다.                                                     

  

    그 출장 후에 나는 B대리가 사내영어 과정을 포함해서 개인적으로도 영어공부에 집중해서 단기간에 많은 성장을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B대리의 술실력은 영어실력만큼 늘지는 않았으나 해외 거래선과의 협상을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을 정도로 나아졌다.  해외출장을 통해 조직원 스스로가 본인의 부족한 점을 자각하고 영어공부에 더욱 정진하였고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분명 해외출장의 긍정적인 효과였다. 


're:Global(다시, 글로벌)' 저자 정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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