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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trick JUNG Apr 29. 2019

‘쯔드라스브이째!’지역전문가 러시아어 테스트

상사맨의 러시아 지역전문가 에피소드

        러시아 지역전문가 프로그램인 GBP(Global Business Program)파견 한달 후에 인사팀에서 ‘러시아어 스피킹 테스트 보셔야 합니다’ 라는 전화가 왔다.  만일 테스트에서 떨어지면 바로 귀환해야 한다고도 했다.  러시아어 알파벳도 헛갈리는데 스피킹 테스트라니 말이 안 나왔다.   파견전에 러시아어 교육도 못 받았고 아직 러시아어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준비가 안되었으니 6개월 파견을 마치고 귀임해서 테스트를 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인사팀은 그러한 사정은 모르겠고 테스트를 봐야한다고 했다.


    결국 1달후에 테스트를 하기로 했다.


    파견후에 러시아어 학원을 등록을 했으나 출근전에 아침 한시간 수업이었다. 근무시간에는 지사에서 기존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기에 사실 러시아어 공부는 집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어렵기로 소문난 러시아어를 어떻게 한달만에 스피킹 테스트를 할 수가 있을까?  인사팀이 원망스럽기도 했으나 방법을 찾아야 했다.


    묘안이 떠올랐다.


    우선 러시아어 스피킹 테스트 시에 질문으로 나올 만한 예상 질문들을 머리를 짜내서 리스트업 했다. 그리고 그 질문과 대답을 영어로 작문을 했다. 약 20페이지 정도의 분량이었다. 학원 선생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남아있는 테스트 날짜까지 정상적인 수업 속도로는 문법을 포함해서 테스트 준비를 할 수가 없으니 20장의 영작(英作) 내용을 러시아어로 바꾸어 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날부터 무작정 러시아어로 바뀌어 진 내용들을 외우기 시작했다.  러시아어 밑에 한글로 토를 달아서 발음도 적어 놓고 문법도 배울틈이 없으니 그냥 무조건 외웠다.  외우는 과정에서 단어들과 문법을 이해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마디로 발음부터 모두 모르는 이상한 나라의 말들 같았다.  만일 내가 준비한 예상 질문 외에 다른 질문이 나온다면?  그것은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는 내가 외운 다른 문장이라도 읊을 심사였다.  

    그리고 비상용으로 필살기 한문장을 준비해서 특히 잘 외웠다.  그것은 ‘잘 안들립니다’ 였다. 


    한달 후 스피킹 테스트는 웹캠으로 연결해서 진행되었다.  러시아어 교수가 인력개발원으로 와서 모스크바 지사 회의실에 있는 나와 웹캠으로 연결되었다. 인력개발원의 관계자가 내 인사카드를 꺼내서 모스크바에 연결된 나와 비교를 하며 본인이 맞는지 확인을 하였다.


    인력개발원의 담당자가 이해 못하겠다는 듯이 한마디 했다. ‘복귀해서 테스트하면 되지 해도해도 너무하네요. 이렇게 웹캠으로 외국어 테스트하는 것은 이번이 최초입니다’.  당시에 내 맘도 ‘이건 너무 한거야’라고 똑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제서 고백 하건데 나는 테스트를 위해 별도의 비상준비도 했었다.  지사 회의실에서 화상테스트가 진행되니 웹캠은 내 얼굴만 비출 수밖에 없었다.  나는 회의실 벽과 테이블위에 커다란 종이에 내가 준비했던 예상 질문내용들 중에 잘 안외워지고 어려운 문장들은 큼지막하게 매직펜으로 써서 잔뜩 붙여 놓았던 것이다.  한결 심리적으로 조금 위안이 되고 안정이 되었다.


    ‘쯔드라스브이쩨! (안녕하세요)’ ‘미냐 자븟 정XX (내이름은 정XX입니다)’ 테스트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다행히 내가 준비했던 예상 질문들도 꽤 나왔다.  하지만 준비 못한 질문들도 당연히 나왔고 이럴 땐 뻔뻔스럽게 동문서답이더라도 내가 외운 문장들을 그냥 읊었다.  하지만 비상용으로 회의실 벽면과 테이블위에 가득히 붙여 놓았던 컨닝 페이퍼들은 테스트가 시작되자 마자 ‘흰색은 종이요, 검정색은 글씨’라는 것만 구분될 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의 테스트 기억은 머릿속이 하얗게 느껴지는 기분이었다는 것 뿐이다.  이렇게 40여분의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지사장방은 회의실 옆방이었다. 마침내 테스트를 마치고 나오자 옆방에서 내가 40여분 동안 버벅거리며 떠든 러시아어를 들은 지사장이 묘한 웃음을 지으며 내게 칭찬인지 모를 한마디를 던졌다.  


    “정XX이 러시아말 잘하네~”.   


    다행스럽게 그날의 테스트로 나는 러시아어 회화등급을 획득하고 계속해서 GBP 파견 근무를 할 수가 있었다.  생각컨데 러시아어 교수님이 그날 내가 필살기를 써가며 40여분간을 버틴 용기를 높이 샀던 것 것 같다.                                                      

     

    교수님 “쓰빠시바! (감사합니다!)”


모스크바 크레믈린 궁



're:Global(다시, 글로벌)' 저자 정해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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