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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희 Mar 12. 2022

유럽 비즈니스

1. 자율인 


   자주 이용하는 벌교~고흥 고속도로는 길이가 20여 킬로미터 남짓되는 짧은 구간이지만 속도감시 카메라와 속도제한 표시가 수십 개가 넘는다. 독일 근무 때의 아우토반이 생각난다. 어쩌다 한 번 등장하는 감시 카메라에다 속도도 무제한인데도 사고율은 우리보다 훨씬 적다. 지방 행정기관을 방문해보면 얼마 되지 않은 직원들이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가령 농업직불금 수령자의 실제 경작 여부, 경작 면적, 작물의 확인이 그 예다. 공공기관 사업의 참가자를 선발하는 심사표를 보면 내용이 매우 복잡하다. 기준이나 평가 사항을 대폭 줄여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본질을 잊고 문제 예방에 몰두할 때 생길 수 있는 비효율이다. 본질과 껍질 중 본질에 집중하는 사회는 경쟁력이 높은 반면 껍질에 집중하는 사회는 경쟁력도 낮고 혁신능력도 낮다. 뉴스가 끝나고 날씨예보에 나오는 기상캐스터들을 보면 유럽과 사뭇 다른 모습들이다. 기상캐스터의 본질은 날씨를 전하는 일이다. 독일 날씨 예보를 볼 때면 기상캐스터들의 옷 색깔도 시청자들이 날씨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느낄 정도다.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점심을 함께 해야 할 때가 많다. 간단히 식사와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아끼는 것이 비즈니스 식사의 본질일 것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체면 때문에 지나친 접대에 시간을 들이는 경우가 많다.

     

       


      CPNP (화장품 등록 포털)

     유럽에 화장품을 수출하려면  CPNP 등록 절차를 밟아야 한다. 화장품 등록 포털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이 제도의 목적은 유통 화장품 품질 유지 및  소비자 피해 방지다. 해외 수출업체는 현지에 화장품 전문가를 책임자로 지정해야 한다. 문자 그대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란 뜻의 RP를 정하면 유럽 당국은 시장에서 피해가 발생하거나 문제가 생길 때 이 책임자를 상대한다. 화장품 출시 때 성분, 라벨링 등 검사를 받아야 한다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것이다. 이 제도는 유럽의 선등록 후검증 시스템의 한 예이다. 판매 개시 후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면 업체가 짊어지는 부담은 매우 크다. 사업 정지, 막대한 벌금을 각오해야 한다. 한-EU 간의 FTA 수출 절차도 마찬가지다. FTA(자유무역협정)를 체결하면 양국 기업들은 특혜관세를 누려 좀 더 낮은 가격으로 수출할 수 있다. 가령 EU의 평균 관세가 6.5%인데 양국 기업들은 이 보다 낮거나 무관세로 제품을 수출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해당 제품이 체결 국가의 원료로 만들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원산지 증명이라는 것으로 어느 정도 이상의 부가가치를 당사국 내에서 창출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 원산지 증명을 보통 아시아 다른 나라들에서는 공공기관이 발급한다. 하지만 EU와 협정에 따라 양 측은 자율발급제도를 택하고 있다. EU가 오래전부터 시행해오던 제도이다. 수출업체 스스로 원산지 증명을 발급하고 책임도 진다.  사후 검증 때 허위증명이 발각되면 업체에게 부과되는 징벌도 크다. 화장품 수출의 책임자(RP) 제도처럼 FTA에도 인증수출자(Approved Exporter) 제도가 있다. 자율적인 원산지 증명을 할 수 있는 자격 제도이다.

           

    자율 사회

    바야흐로 세상은 자율주행 사회가 되고 있다. 자동차도, 선박도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교통사고의 95% 이상이 인간의 실수로 인한 것이다. 자동차 중 운행하지 않고 세워둔 차량의 비중이 96%에 달한다. 자율 차 시대가 되면  교통사고와 자동차 숫자도 줄일 수 있다. 노르웨이의 자율운항 선박 야라 바르셀란 호의 운항으로 인해 연간 4만 대의 디젤 트럭의 운행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불과 12 킬로미터의 운송 거리에서 얻는 절감 효과다.  디지털카메라 시장 부동의 1위인 캐논의 경영 모토는 3자 정신이다. 자각, 자치, 자발이 그것이다. 불교신자였던 창업자의 신앙에 바탕해 회사 이름도 관음보살 (Kwanon)에서 따왔다. 이 회사의 자율경영의 효과는 혁신으로 나타난다. 미국 기업들이 개발한 복사기와 프린터를 아시아 소비자가 사용하기 쉽도록 소형으로 개선했다. 독일 카메라를 벤치마킹해 원조 카메라보다 편의성이 높아진 세계 1등 카메라를 만들었다. 타율적인 컨베이어 시스템을 개선해 작업자의 창의를 반영할 수 있는 셀(Cell) 조직으로 변화시킨 것이 그 예다. 기계적으로 부품을 조립하지 않고 작업자가 스스로 생각하면서 반 수동적으로 제품을 만든다. 캐논 안산공장은 셀 생산 방식 도입으로 생산성이 10배는 높아져 경영자들의 학습 시찰 코스가 되었다. 

     

   

ASML 혁신 파트너 네트워크

      ASML

     일본 기업의 특징 중 하나가 ‘생각하는 작업자’이다. 도요타의 끝없는 개선, 일본전산의 깨어있는 의식, 캐논의 자각의 근로자가 그 예이다. 모두 자율성에 기반한다. 오늘날 세계 반도체 기업의 모델 중의 모델인 네덜란드 ASML의 경영 특징 역시 개방과 자율이다. 하청업체 대하는 방식이 다르다. 최고의 업체 1개를 정해 자율성을 부여한다. 필요하면 연구개발비와 운영비를 투자한다. 독일 렌즈 파트너 자이스에 25%의 지분을 참여했다. 고객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빅 고객인 삼성, 인텔, TSMC의 지분 참여를 받아 EUV 장비를 개발한 것이 그 예이다. 최고의 공급업체를 선발해 품질관리를 믿고 맡기는 것, 필요하면 고객들의 투자를 받아 함께 과실을 나눈다. 100개 이상의 연구개발 파트너, 5천 여개의 공급업체와의 관계 유지 방식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연결, 네트워크, 오픈이 특성이 되는 디지털 사회로 바뀌고 있다. 책임, 안목, 본질, 개방이 체화된 자율인 양성은 새 시대의 국가 경쟁력이자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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