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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평희 Mar 19. 2022

유럽 비즈니스

  2. 투명성

    로마가 갈리아는 정복했지만 게르마니아는 정복을 포기한 것은 게르만의 용맹성과 함께 아르미니우스라는 지도자가 있어서였다.  아르미니우스는 푸른 눈이라는 뜻이다. 독일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푸른 눈의 투명함에서 묘한 힘을 느낀다. 함부르크의 선박검사 회사 게르마니셔 로이드 (GL)사를 방문해서 회장과 면담한 적이 있다. 회장의 직선적 화법, 해박한 지식이 인상적이었는데  면담하는 동안 대화 상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던 그  투명한 눈빛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국제 투명성 기구(TI)는 베를린에 있다. 해마다 부패지수를 발표하는데 항상 상위권에 랭킹 되는 국가들이 정해져 있다. 덴마크, 핀란드, 스웨덴 등 북구 국가들, 어쩌다 대양주의 뉴질랜드, 아시아권에서는 싱가포르가 상위 10위권에 자리를 차지한다.

        

국제투명성 지수 순위 (CPI, 2021)


   프랑크푸르트 근무 시절 집에 목욕탕이 고장 난 적이 있었다. 욕조 배수가 잘 안 되어 밸브를 만졌는데 그 후로 바닥에 물이 고이고 급기야는 지하 주차장까지 누수가 발생했다. 집주인에게 통보를 했고 집주인은 혹시 욕조 밸브를 만졌냐고 물었다. 지하 주차장 누수로 인한 공사비 규모를 언뜻 들은 후인지라 집주인의 질문을 받고 엉뚱한 답변을 했다. 만지지 않았다고 둘러대었다.  집주인은 다음날 서약서를 가져왔다. 밸브를 만지지 않았다는 서약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장 사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서류를 맡겨두고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혜로운 조치였다. 그날 밤 서약서를 쥐고 당했던 양심의 가책을 생각하면 그보다 더 사람의 마음을 찌르는 조치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전화를 해서 사실은 만졌다고 고백을 했고 그날 밤 누렸던 편안한 수면은 금은보화로 바꿀 수 없었다.

      

   투명함의 가치

   중국에 따라 잡혀 몇 개 남지 않은 한국의 경쟁력 보유 제품 중에 반도체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반도체 시장규모의 70-80% 되는 시장으로 국제 인증 시장이 있다. 조선 1등 한국이지만 선박 건조를 해놓고 마지막 중요한 검사는 프랑스나 독일 인증 업체를 초빙해 검사를 받는다. 배를 만드느라 들인 공력에 비해 너무 쉽게 돈을 벌어가는 것 같아 언짢아지는 순간이다.  건강, 위생, 안전, 환경 인증에 있어 가장 까다로운 시장이 유럽시장이다. 품질이 아무리 좋아도 CE마크 없이는 수출이 어렵다. 간단한 장난감류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자체 테스트는 안되고 대부분 제삼자 검사기관의 인증을 받아야 한다. 독일 튜브(TUEV), 스위스 SGS 같은 인증기관이 그 역할을 한다. 풍력은 최근 독일의 GL에 합병되긴 했지만 노르웨이의 DNV가 유명하다. 소비자 피부 트러블 등 안전을 고려하여 화장품 수출 시 인증제도도 있지만 CE와는 달리 신고제다. 이 경우에도 독성 검사, 나노물질 검사 등 전문 검사를 거친 후에 현지 대리인을 통해 신고를 한다. 세계 3위로 올라선 한국의 화장품 수출실적이 늘어날수록 국내에 들어와 있는 화장품 인증 컨설팅 회사들의 수익도 더불어 올라간다. 인증업체 선정은 실력 있는 업체들 중에 선택한다. 유럽 인증업체들의 유구한 브랜드 인지도 이면에는 켜켜이 쌓인 신뢰도가 있다. 실력과 투명성이 바탕이 된 신뢰도일 것이다.

               

Warentest 결과를 이용한 제품광고 


   Warentest

   독일 소비자들이 누구보다 신뢰하는 품질 평가기관이 있다. Warentest (제품 테스트)라는 품질 테스트 기관이다. 소비자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경외의 대상이다. 이 기관에서 ‘매우 좋음’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판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독일 소비자들의 신뢰도 90% 이상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년간 2천 개 정도의 제품을 테스트하고 있는 이곳의 주 수입원은 테스트 결과를 인쇄물 혹은 온라인으로 월 단위로 발간하여 판매하는 것이다. 권당 우리 돈으로 약 8천 원, 온라인 다운로드의 경우 약간 더 낮은 가격인 이 발간물의 판매부수는 매 회당 40-50만 권이다. 유료광고는 받지 않는다. 그 대신 정부로부터 매출의 10% 정도에 해당하는 운영 지원금을 받는다. 테스트용 제품은 직접 직원이 시장에서 구입한다. 자동차 같은 비싼 제품도 마찬가지다. 기증을 받지 않는 것은 공정성을 유지하는 방법 중의 하나다.  메이드 인 저머니 하면 국제 소비자들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우수한 품질의 대명사일 것이다. 아스피린, 벤츠, 밀레 같은 100년 이상의 브랜드들 뿐 아니라 애견용 목줄(Flexi) 하나, 금붕어 사료(TetraMin) 하나도 독일 기업이 만들면 믿음이 간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 50여 개국 중 투명성 지수도 권역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남부에 비해 북부가 높다. 동부보다는 서부가 높다. 투명성과 문화와의 관련성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자본주의 이해에 중요한 자료로 알려진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는 개신교의 근면 검소가 자본의 축적에 도움이 되었다는 대목이 나온다. 미국 자본주의 확립에 기여한 벤자민 프랭클린은 정직한 부의 축적은 신의 축복이라고 했다. 투명도가 높은 나라는 국민소득도 상위 랭킹을 기록한다. 환경지수도 높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조사 지수에서도 톱 10개 국 중 9개가 유럽이고 그중 1-3위는 핀란드, 덴마크 스위스가 차지한다 (Happiest Countries in the World 2022). 투명성은 행복한 나라가 되는 비결이기도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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