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바디스 K
‘어느날 문득’이란 노래에 ‘어디로 갈까요 어떻게 할까요... 이제는 다 비워야는데’란 가사가 있다. 방향을 잃은 우리나라, 우리나라 산업을 가리키는 가사 같기도 하다. K-팝, K-반도체, K-조선, K-자동차를 외치고 있는 동안 하나 둘 잠식되어 온 한국의 주력 산업이 바닥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철강, 조선, LCD, 스마트폰... 주력산업의 선두 자리를 차례차례 중국에 내어 주고 경쟁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산업은 메모리와 배터리 두 개가 남아 있다. 노무라 증권은 D램 시장은 얼마 안 가 삼성전자 30% 후반, SK하이닉스 20% 후반, 마이크론 10% 후반, 창신메모리(CXMT) 10% 후반 대의 4강 체제로 바뀔 것이라고 했다. 배터리도 이미 중국으로 대세가 기울고 있다. 화재에 강하고 에너지 밀도도 높은 전고체 배터리 양산은 중국 기업들이 2-3년 앞설 것이라는 외신 평가다. 중국도 잘 모르지만 한국 스스로에 대해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메모리와 두 번째 버팀목인 배터리 산업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 중국의 국가 보조금 때문이라고 쉽게 치부하는 중국의 산업 경쟁력 평가는 객관적인가?
배터리 1등 CATL의 성장은 놀랍다. 벨 연구소에서 사 온 배터리 기술이 제대로 작동이 안되자 혼자 2주일 동안 사무실에 칩거하며 문제를 해결했다고 전해지는 쩡위친 회장 이야기. 볼보 인수를 위해 무려 10년 간 준비를 한 지리 자동차의 리수푸 회장, 드론 성능 테스트를 위해 담당 교수랑 에베레스트 산에 올랐던 프랭크 왕 DJI 창업자, 불량품 냉장고 76대를 직원들 눈 앞에서 부수고 혁신에 시동을 건 하이얼의 장루이민 회장, 업계에 인기 없던 북유럽 오지 통신망 프로젝트 공사를 맡아 헬리콥터, 스노 모빌까지 동원해 공사를 완성했던 화웨이의 런정페이 회장 등 이야기는 중국 산업 굴기의 또 다른 비결들일 것이다.
니케이는 최근 이런 기사를 썼다. ‘머신러닝의 자세한 것은 잘 모를지라도 중국 지도자는 중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잘 알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Deep understanding of what they need). 세계 제조업의 30% 점유율을 달성한 중국의 성장에는 숙고 끝에 만든 정책과 차질 없이 이를 실천해온 실행력이 있다.‘중국제조 2025’는 30년 산업계획이다. 10가지 산업을 정해 자립을 추진하는 것이 그 내용이고 반도체 하나 빼고는 소정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반도체도 한국 메모리의 턱 밑까지, 또 미세회로 기술은 5나노 까지 성공했으니 실패라고 볼 수도 없다. 범용 반도체 시장은 1/3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GDP와 생산성을 25% 수준까지 높여준다는 AI 기술은 어떤가(맥킨지, PWC). 시각 분야 등 일부 응용 분야는 이미 미국을 추월했고 부족한 AI 인력 400만을 양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칭화대학 AI반은 이공계 학과 중 인재를 다시 선발해 만든 특화반이다. 전국 35개 대학에 유사한 AI 특화 학과가 설치되어 있다. 최고의 AI 전문가를 초빙 해 750명의 전문교사, 7500명의 AI 학생을 양성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웃 일본은 어떤가. 유럽과 미국 대학과 협력해 AI 인재양성 프로그램을 만든 일본은 최근 200명의 AI칩 인재 후보를 미국 기업에 보냈다. 제2의 반도체 산업 지역으로 각광을 받는 동남아 지역도 분주하다. 말레지아는 6만 명의 칩 엔지니어 양성을 추진하고 있다.
네덜란드 ASML 기계의 핵심 부품인 레이저와 렌즈를 만드는 독일 히든 기업들이 있다(트룸프, 자이스). 우리가 메모리를 시작할 때 일본 메모리 강자 5개 사를 제치고 선두에 오른 비결은 삼성의 히든 기술자들이었다고 한다. (양향자, 히든 히어로스). 이제 다시 모두가 히든 모드로 돌아가 본질을 바라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영국은 AI 박사 2천 명을 선발해 AI 인재 양성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의대 증원 2천 명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35년 식민지 과거에 매몰되어 헤어나지 못하는 사이에 350년 새로운 예속의 시간이 다가 오고 있다. 한국, 한국 산업 어디로 가고 있는가. 쿼바디스 K!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