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 삐빅- 꼰대입니다.
최근에 맘 카페에 진지하게 올라온 고민 글이다. 답글은 순식간에 달렸다.
-그럼 저도 꼰대 하렵니다. 정말, 너무 싫습니다 부터
-뉴진스의 막내가 중3인 마당에 어떻게 말리겠습니까, 차라리 성분 좋은 화장품 사주세요 까지 다양했다.
나는 사춘기가 친구들보다 빨리 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던 것 같은데, 학교 친구들이 고분고분 엄마가 입혀준 대로 입고 다닌 반면 나는 꼭 밀리오레에 가서 옷을 사야 했다. 유독 까만 얼굴이 어렸을 때부터 불만이었던 터라 당연히 화장에도 일찌감치 관심이 갔다.
"엄마, 나 화장품 사줘. 친구들도 다 있다니까!"
엄마가 안 된다고 하지도 않았는데 거절당할까 봐 지레 먼저 화를 버럭 냈다.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이 빤히 보더니, "참-나"한마디 하더니 바로 그걸 사줬다. 그렇게 생각보다 쉽게(?) 얻어 낸 나의 인생 첫 화장품은 클린앤클리어의 콘트롤(컨트롤 아님.) 파우더였다. 아래 그림 참조.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뉴스에서 '돼지기름'으로 만든다고 떠들썩했던, 오렌지향 나는 돼지기름 립글로즈까지 풀장착한채 나는 어설프고 어린 사춘기를 보냈다. 검색하다 아래 사진이 남아있는 거 보고 너무 반가웠다. 정확히 내가 고른 건 딱 왼쪽에서 두 번째 오렌지 향이었다. 한 번만 롤링해도 기름이 줄줄 새어 나와 튀김 오만 접시는 먹은 듯한 글로시함을 선사해주는 천 원짜리 싸구려 of 싸구려(그 때는 최고 좋은 줄 알았지만) 립글로즈 였다. 그 인공적인 질감과 오렌지 향이 그리울 때가 있다. 동아 미피펜 향기가 그리운 것처럼!
부모님은 내가 일곱 살 때부터 맞벌이를 해왔는데, 특히 엄마는 쉴 새 없이 부업에 공장에 식당일까지 하며 살림하고 우리 남매를 키웠다. 그리고 당시 형편상 저 화장품이 절대 쉽게 사줄만한 가격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아무 말도 없이 바로 가게에 들어가서
"그거 이름 뭐라고? 예 그거. 그거 주세요."라고 했다.
그때 엄마의 표정은 어둡지도 밝지도 않았다. 오히려 뭔가 웃음을 참는 표정이었다. 당장 화장품 사내라고 길거리에서 악 쓰는 딸을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법도 한데, 그것조차 그냥 귀엽다는 표정이었고 그걸 "참-나"라는 말로 대신했다. 예나 지금이나 지독한 딸 바보 우리 엄마.
그때 나는 "오호라, 내 말이 먹히네? 안 혼나네?"라는 기분에 으쓱했고, 새 파우더를 손에 쥘 생각에 설레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사실 그 당시 동대문 밀리오레 앞에서 춤추는 댄스팀 오빠들을 엄청 좋아했는데, 그걸 바르고 오빠들을 보러 갈 생각에 더 신났었다.
콘트롤 파우더+돼지기름 립글로즈의 효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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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도 없었다.ㅋㅋ(진짜임. 진지함)
그냥 어른 흉내 내며 '신나게 분필 지우개 털듯' 퍼프질(?)을 해대고 마무리로 돼지기름 립글로즈를 발랐다. 메이크업 기술이라는 게 있었을 리가 없다. 뭔가 찹쌀떡에 딱풀로 쭉 그은 느낌이었을까?ㅋㅋ지금 생각하니 아찔하다. 그럼에도 엄마가 사준 내 인생 첫 화장품을 받아 든 기분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나를 '여자 사람'으로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들떴던 내 착각일 수도 있다.
당시 사는 게 많이 고단했을 엄마가 느낀 감정은 '에휴, 어린 줄만 알았는데 이제 너도 여자의 세상으로 들어오는구나. 이게 뭐 좋다고.'였을 것도 같다. 그래도 나의 수줍은 첫 의사 표현이 좌절되지 않았던 덕에 나에겐 클린앤클리어라는 브랜드까지 여전히 긍정적으로 남아있다.(클린앤클리어 PPL 아님)
그래서 내가 딸이 없다고 쉽게 얘기하는 것일 수 있지만,
"화장할 정성으로 책을 한자 더봐라, 네 성적 꼬라지보고도 아이라이너 그리겠다는 말이나오냐, (좋은) 대학 가면 다 할 수 있다." 라는 날 선 말 대신에 백화점까진 아니더라도 올리브영이나 시코르에 가서 같이 한 번 화장품을 골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PL 아님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