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민 없이 소금빵을 고르는 이유
뭘 좋아하면 적당히, 우아하게가 되질 않는다. 일단 꽂히면 '파야' 직성이 풀린다. 기질적으로 그렇다. 그래서 이런 나 자신을 담는 최적의 단어인 <주접이 풍년>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입봉을 했다. 자발적으로 '주접 피디'가 된 것이다. 프로그램 종영 후 요즘 내가 몸소 느끼는 덕질의 효능은 이러하다.
뭘 먹을지, 무슨 노래를 들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내 최애가 하는 대로 하면 된다. 브이앱을 보다가 최애가 성시경의 <태양계>를 자주 듣는다 하면 바로 출근길에 듣는 거다. 수능 영어 듣기 평가 때보다 가사에 집중이 더 잘 된다. 최애가 소금 빵을 먹는다고? 뭘 고민해, 오늘은 소금빵이다. 가끔 내 취향을 고민하는 것조차 에너지 소모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오히려 에너지를 충전하며 취향을 찾아가는 기분이랄까.
이게 왜 이득이냐고? 미팅을 하는데 상대가 늦으면 보통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본인 시간만 중요한가?'하는 생각에 심술이 난다. 이런 불쾌한 기분은 미팅의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입덕을 하고 나니 볼 콘텐츠가 넘쳐난다. 오히려 대기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입꼬리 단속하며 보다가 지각자(?)를 맞이하니 오히려 성인군자처럼 너그러워진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시작한 회의는 결과물도 좋다. 결론은, 최애가 돈 벌어 준다.
자기 전에 아이 책을 읽어주는데 족제비가 나왔다. "오! 이건 찍어야 해!!" 애는 '엄마 왜 저러지' 하는 표정이지만, 내 최애와 닮은 동물이나 뭐 한 글자라도 연관된 게 나오면 그 시간 자체가 신비롭고 행복해진다. 지독한 과대망상일 수도 있겠으나, 덕질을 하면 이런 사소한 우연들에 매우 호들갑을 떨게 된다. 물론 이런 내 모습에 수치심을 느끼기도 하지만, 행복감이 그것을 상쇄한다.
희한하게도 <주접이 풍년>이라는 프로그램을 막상 연출할 당시에는 덕질하는 대상이 없었다. 만약에 있었으면 더 신명 나게 임할 수 있었을까. 시즌2 시켜주면 더 잘할 수 있는데요. 아, 아직도 헤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