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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24. 2022

회사에선 누가 먼저 인사해야 할까?

사무실 내 눈치싸움에서 자발적으로(?) 이겼습니다.

좌측 신관과 우측 누리동

2014년 이 회사에 입사한 후, 쭉 신관에서만 지냈다. 그러다가 <주접이 풍년>이라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면서 우측에 보이는 누리동이라는 새 건물로 이사 와서 6개월여를 지냈다.

그리고 현재는 이 누리끼리한 연구동이라는 건물에서 지내고 있다. 입사 이후 회의 말고는 처음 와본 공간이다. 그래도 부장님이 나를 배려해주신 덕에 사무실 정중앙에 부장급(?) 상석을 얻었다. 그리고 내 오른쪽 옆자리엔 최소 나보다 20년 이상 선배인 분이 행정 업무를 보고 계신다.




첫날 딱히 소개 없이 사무실에 들어왔고 자유롭게 출퇴근 중이다. 그런데 옆 자리의 선배님이 내가 출근할 때마다 유난히 일에 열중하시는 것 같았다. 평소 같으면 먼저 인사를 했을 텐데, 낯선 곳이기도 하고 매번 뭔가 타이핑도 막 하시고 정수리 끝만 보여서 그걸 뚫고 인사하기가 망설여졌다. 


'혹시 내가 불편하신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인사 없이 지내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그 선배님도 내가 없는 듯 점심도 드시러 가시고 출퇴근도 하셨고, 며칠 지내보니 다른 직원과도 업무 외 대화를 크게 하지 않으셨다. '그래, 나랑만 그런 게 아니네.'하고 안도해버렸다.


서로 투명인간처럼 지내기가 일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남편으로부터 회사 직원이 너무 인사를 하지 않아서 따로 불러놓고 오해를 살 수 있으니 되도록 인사를 하고 지내라고 조언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그 얘기를 들으며 "악의는 없을 텐데, 시력이 나쁜가?, 타이밍을 놓쳐서 어색한가?"라고 맞장구치며 "그래도 그러면 안 될 텐데."라고 거들었다.


근데 정작 나도 '여기서 그러고'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거긴 같은 팀이고 여긴 업무상 나와 무관하고 접점이 전혀 없는 선배였지만, 사실 KBS라는 큰 틀로 보면 선배는 선배였다. 나름 반성도 했으니 오늘 처음으로 먼저 인사를 건넸다.


"(쩌렁쩌렁) 선배님, 안녕하세요~"

"??? 아...예..에..."


꽤 당황하신 것 같았다. 괜히 했나. 그래도 내 마음이 전해 졌겠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오전을 보내고, 사무실 모든 직원이 자리를 비우고 나와 옆자리 선배님만 있는 시간이 생겼다. 갑자기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내 쪽으로 차마 오시지는 않고 나를 쳐다보고 말씀을 건네셨다.


"그...저기... 심수봉 때 (조연출)하셨던 피디죠? 그때 제가...$%%$(얼버무리셔서 잘 못 들음ㅠㅠ)"

"네, 저 맞아요!"


최대한 예의 바르고 밝게 대답했더니, 

"쭉 신관에만 계셨죠? 여기가 공간이 넓고 꽤 좋아요. 2년째 생활하고 있는데 그래요."라고 하시며, 보도본부에서도 지내봤지만 통창이라서 햇볕이 뜨겁고 창문도 열 수 없지만 여긴 창문도 열 수 있고 좋은 점이 많다고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몇 초간의 정적 후 덧붙이시기를, "제가 보기보다 수줍음이 많아요. 그래서 그러니 이해해주세요."라고 말씀하셨다. 선배님도 서로 인사 없이 지냈던 게 마음에 걸리셨었나 보다. 뭔가 더 민망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엄청 얼굴 화끈거려하시며 "어이구~ 아닙니다" 하고 호다닥 다시 파티션 아래로 얼굴을 숨기셨다. 




매일 출근할 때마다 이곳은 그저 낡디 낡은 건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좋은 점을 듣고 보니 내 연차에 비해 높은 파티션과 분리된 공간, 그리고 직원들 사이의 공간도 꽤 넓었다. 선배님한테 오늘 먼저 인사를 안 했다면 깨닫지 못했을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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