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얘기다. 나는 소위 말하는 'SKY'를 나왔고, 왠지 서른 중반쯤 되면 자연스럽게(?) 극성 엄마가 될 줄 알았다. 또 내가 공부를 나쁘지 않게 했으니 당연히 아이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어련히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어제 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난 뒤, 발신자에 선생님 이름만 떠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6년이 넘었는데도 그렇다. 보통 좋은 일로 전화 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가 아프거나, 다쳤거나 어떤 분야에 부적응 중일 때 '전화'가 온다.
어제도 평화로운 오후에 전화가 왔다.
발신자 : 바다반 김고은 담임 선생님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쌤: "어머니, 이준이가 오늘 블록 특강 시간에..."
-나: "(심쿵) 네네"
-쌤: "모터에 연결하는 전선을 나눠줬는데."
-나: "(심장 요동) 헉, 전선을요??" <-이때부터 어디 다친 건가 조마조마하며 부정적인 상상이 시작됐다.
-쌤: "네, 근데 그 전선을 이준이가 당겨서..."
-나: "(충격+조급) 당겨서요??!! 그래서요?!"
-쌤: "끊어졌는데..."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 재생된 이미지는 아래와 같았다.
'전선이 끊어져서 스파크가 튀어서 덴 걸까? 아니면 뭐지? 어떡하지?'
10초 안에 온갖 부정적인 장면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서 모터를 새로 주문할 건데, 금액이 만 원 이어서 다음 달 고지서에 추가한다고 말씀드리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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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했다. 아니 더없이 다행이었지만 그래서 뭔가 더 허탈했다.
"네네 선생님... 저는 또 어디 다친 줄 알고, 아니 감사합니다ㅜㅜ"하고 어색하게 웃는데 선생님이 덧붙이신다.
"그리고 오늘 이준이가 점심을 빨리 먹어서 친구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박수도 쳐주고 했으니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 집에서 칭찬 많이 해주세요!"라고.
대치동 극성 엄마는 무슨. 워낙 평소에 잘 안 먹는 아이라 그저 '식판 비웠다'는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영재는 언감생심, 밥 만 먹어줘도 고맙다. 엄마는 늘 자발적 약자다. 어쩔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