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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02. 2022

나는 SKY 나와서 극성 엄마 될 줄 알았는데

내 얘기다. 나는 소위 말하는 'SKY'를 나왔고, 왠지 서른 중반쯤 되면 자연스럽게(?) 극성 엄마가 될 줄 알았다. 또 내가 공부를 나쁘지 않게 했으니 당연히 아이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어련히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개뿔. 현실은 달랐다.


어제 아이 유치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이를 기관에 보내고 난 뒤, 발신자에 선생님 이름만 떠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6년이 넘었는데도 그렇다. 보통 좋은 일로 전화 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아이가 아프거나, 다쳤거나 어떤 분야에 부적응 중일 때 '전화'가 온다.


어제도 평화로운 오후에 전화가 왔다.

발신자 : 바다반 김고은 담임 선생님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듯 친절하게 전화를 받았다.


-쌤: "어머니, 이준이가 오늘 블록 특강 시간에..."

-나: "(심쿵) 네네"

-쌤: "모터에 연결하는 전선을 나눠줬는데."

-나: "(심장 요동) 헉, 전선을요??" <-이때부터 어디 다친 건가 조마조마하며 부정적인 상상이 시작됐다.

-쌤: "네, 근데 그 전선을 이준이가 당겨서..."

-나: "(충격+조급) 당겨서요??!! 그래서요?!"

-쌤: "끊어졌는데..."


??!!!


전선이 끊. 어. 졌. 다. 고??!!

이 말을 듣자마자 내 머릿속에 재생된 이미지는 아래와 같았다.

'전선이 끊어져서 스파크가 튀어서 덴 걸까? 아니면 뭐지? 어떡하지?'
10초 안에 온갖 부정적인 장면이 다 지나가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그래서 모터를 새로 주문할 건데, 금액이 만 원 이어서 다음 달 고지서에 추가한다고 말씀드리려고요."

.

.

.

허무했다. 아니 더없이 다행이었지만 그래서 뭔가 더 허탈했다.

"네네 선생님... 저는 또 어디 다친 줄 알고, 아니 감사합니다ㅜㅜ"하고 어색하게 웃는데 선생님이 덧붙이신다.


"그리고 오늘 이준이가 점심을 빨리 먹어서 친구들이 다 같이 일어나서 박수도 쳐주고 했으니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도록 집에서 칭찬 많이 해주세요!"라고.


대치동 극성 엄마는 무슨. 워낙 평소에 잘 안 먹는 아이라 그저 '식판 비웠다'는 한 마디에 그 자리에서 큰 절이라도 올리고 싶었다. 영재는 언감생심, 밥 만 먹어줘도 고맙다. 엄마는 늘 자발적 약자다.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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