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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Dec 07. 2022

제 죽음에 동행해주시겠습니까?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_신아연 지음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_신아연 지음


당신이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말기암 환자의 죽음 동행 제안을 받는다면?


이 책은 조력사 동행 승낙 이후의 고통스럽지만 유의미한 과정에 관한 기록이다.


본인이 죽는 시점을 직접 지정한 주인공이자 조력사 동행을 제안한 이는 본인의 인생을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고 한다.


그분은 당신의 인생을 '아무리 재미있어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비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듯 여기서 그만 끝내겠다며 평생 문학을 사랑해 온 분 다운 작별을 고하셨지요.  -P.9


본인의 인생을 '다시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고 정의 내린 주인공. 이와 더불어 본인의 가정사가 평탄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본인의 인생의 책장을 직접 덮겠다는 선택을 한 사람과 그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동행에 응하는 것에도 오랜 기간이 소요됐지만, 사실 이들의 동행 목적은 '죽기로 한 결심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십 년 만에 만난 아들도 함께 노력했지만 그토록 완고한 결심을 흔들 수는 없었다.


그는 결국 본인이 세운 계획대로 눈을 감게 되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은 소름 끼칠 정도로 평소와 똑같이 먹고, 마시는 일상을 지내게 되었다. 물론 이 책을 쓴 화자는 주인공이 떠난 이후 긴 시간 무력감에 시달리고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여러 번이었다고 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의 식사와 안위를 챙겨주던 이가, 직접 본인 손으로 밸브를 돌려 영원히 눈을 감는 것을 지켜본 마음이 어떨지는 우리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의 마음이 어떨지도 아무도 모른다.


돌아가신 분 아내와 얼마 전 통화를 했는데, 안락사는 좋다면 본인한테만 좋은 거라는 말로 남은 사람들의 아픔과 상처를 표현하셨습니다. 사망 신고서를 제출하면서 사망 사유를 밝히기에 매우 난감했으며, 호주 뉴 사우스 웨일스주 현행법을 어겼으니 누구를 만나든 남편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를 숨기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유족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슬픔조차 오롯할 수 없다며 말끝을 흐렸습니다. -P.172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 '본인에게만 좋은 것'이라고 표현하는 마음이 오죽했을지도 아무도 모른다. 쉽게 알려고 해서도, 아는 척해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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