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 할리가 없잖아
얼마 전 왜 내 자식 가르칠 때마다 나는 더욱더 악마가 되는 것인가에 대해 미친 듯이 회의를 느끼다,
익숙하다 못해 진부하다고 여겼던 구몬에까지 결국 손을 뻗게 된 나 자신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혹여나 궁금하시다면 아래 링크 참고)
내 아들은 학습지 절대 안 시키려고 했는데 (brunch.co.kr)
남편은 말했다.
네가 그렇게 화만 내고 잘하지 못할 것 같으면 '돈을 써서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하라고. 그게 구몬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오래된 학습지 브랜드는 내가 손을 뻗음과 동시에 바로 나와 아이의 일상으로 들어왔다.
선생님은 동화 속에 나오는 천사처럼 친절했고 불빛 나오는 팽이 등으로 한 번에 아이의 마음도 사로잡았다.
문제는 일주일에 20분만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수십년 째 디자인도 변하지 않은 애매한 크기의 수학과 국어 학습지.
천사선생님이 다녀가시고, 색연필 또한 디자인도 변하지 않은 실을 풀어쓰는 지구과학 색연필로 매 챕터에 '월, 화, 수, 목, 금, 토'라고 써준 두꺼운 학습지 두 묶음은 온전히 내 몫이 됐다.
문제는 컨디션이 매우 행복할 때 나와 아이의 몫이 아니라,
나는 나대로 퇴근하고 와서 지쳐있는 상태고,
그 시각 아이는 목욕도 안 하고 밥만 겨우 먹은 상태로 몹시 졸리지만 자기는 싫고 과제는 더 하기 싫은 상태에 온전히 해내야 할 몫이라는 게 비극의 시작이었다. 학습지가 만들어준 비극.
물론 나 퇴근 전까지 아이를 케어해 주시는 친정엄마한테 매일 해야 할 과제만 봐달라고 부탁도 해봤다.
퇴근하고 애랑 울면서 풀기도 했다는 사연팔이도 해가면서. 나의 엄마도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문제는 내 자식이 말을 안 들어 먹는다는 것이다. 친정엄마라도 어쩔 수 없다. 내 자식이 말을 안 듣는다는데 뭘 어떻게 더 할 말이 없었다.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만만한 이 시대의 귀한 7세 손주는 할머니가 하자고 하면 생떼를 부리다가, 유일하게 이 집에서 본인을 혼내는 악덕 구단주 같은 엄마가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그나마 목욕할 준비와 (꾸역꾸역) 구몬 할 준비를 한다.
나도 학습지 선생님처럼 다정한 종달새처럼 대해주고 싶지만, 사실 울고 싶은 마음을 참거나 화를 최대한으로 참느라 무표정으로 대하게 된다.
애라도 기분 좋았으면 하는(더불어 잠을 깼으면 하는) 마음에 젤리도 동원해 보지만 젤리가 나오는 순간 젤리에만 집중해서 "엄마 이건 체리 같지? 신호등 같지?" 하면서 갑자기 젤리로 온갖 사물을 연상한다.
알고 있다. 이렇게 생활 속 물건들로 상상력을 자극시켜 주는 게 참 교육이라는 걸.
하지만 시계는 밤 9시를 넘어 10시를 향해가고 종이만 보면 애는 졸고, 산만하고 나는 화가 난다.
그럼 애는 묻는다.
"엄마 왜 기분이 없어?" (*기운이 없어의 오류)
"아~ 왜 기운이 없냐고? 기분이 아니라 기운이지 기운."이라고 그 와중에 또 가르치려다가,
그래 '기분이 없는 것'도 아예 틀린 말은 아니다 싶어서 그만둔다.
“엄마가 퇴근해서 와서 같이 놀아야 하는데, 이거 같이 하면 둘 다 너무 불행하잖아. 내일은 할머니랑 엄마 오기 전에 할 수 있지? 약속~” 먹히지도 않고 영양가도 없는 이 말만 반복할 뿐이다.
이 마저 화를 안 낸 나 자신이 대견스럽다면 나는 너무 자격 없는 엄마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