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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an 30. 2023

예능피디들이 런닝맨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

누군가 나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꽃이 피더라

얼마 전 우연히 "예능피디들이 런닝맨에 가고 싶어 하는 이유"라는 글을 봤다. 

사실 나와는 관련 없는 타 방송사 이야기였지만, 궁금해서 클릭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왜 런닝맨에 가고 싶어 하지? A, B팀으로 시스템이 잘 잡혀있어서 휴일 보장이 확실한가? 인센티브를 많이 주나? 이런 속물적인 생각을 하면 게시물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답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피디들이 업무 이동 시즌에 <런닝맨> 발령을 선호하는 이유는, '출연자가 내 이름을 알아주기 때문'이었다.

내용을 읽어보면, 타 프로에 비해 출연자들과 스킨십이 많고 친한 것이 이유라는 얘기였지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그들이 '내 이름, 더 나아가 내 존재'를 알아주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연예인이 피디이름 외우는 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우리를 회사원이라 치면 같은 부서에 속한 행정 사원부터 본부장님까지 이름 알고 지내는 건 당연한 거고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이니까.


그러나 방송국의 구조는 조금 다르다. 

나에게는 엠씨가 단 하나의 연예인이지만, 해당 연예인 입장에서는 내가 수십 명의 피디 중 한 명이다. 메인피디는 그나마 좀 낫다. 그러나 메인 피디 아래의 조연출로 들어가 보면 본사 조연출부터 외부 편집 피디까지 더하면 규모가 큰 프로그램은 피디 수가 20명도 넘는다.


예를 들어, 슈퍼 A급 엠씨인 유재석의 경우 피디가 20명인 프로그램 고정 엠씨를 다섯 개만 해도 피디 100명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것이고, 심지어 이 100명은 회사 부서원들과 달리 수시로 바뀐다. 


그래서 녹화장에서 많으면 일주일에 한 번, 혹은 2~3주에 한 번 보는 연예인이, '편은지 피디' 혹은 '은지야~'라고 정확히 부르는 건 쉽지 않은 일인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게 행해졌을 때 나도 그 프로그램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있구나, 쓸모 있는 인력이구나 하는 마음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나로서 인정받는 것 자체가 이렇게 중요한 일이다. 

피디들이 사실상 비교적 한가한 타 예능프로그램에 비해 업무도 고될게 뻔한 야외 버라이어티 <런닝맨>으로의 직행열차를 반기게 까지 될 만큼 말이다. 


 


얼마 전, 뮤지컬 배우 김호영의 책을 읽었다. 위와 비슷한 감상을 느끼게 한 구절이 있었다.

내가 못 한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누군가가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주면 그 자리에 꽃이 피더라.
내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꽃이.
『Hoy(뮤지컬 배우 김호영 스토리)』_김호영 지음
호평이든 혹평이든 그건 상대방이 하는 거고 그걸 걸러서 받아들이는 건 내가 하는 것이다. 말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듣는 내가 처리해야 할 몫이다. 깊이 새기든 내치든 말이다. 내가 어떤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면, 가스라이팅에 가까운 경험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것들을 부정해 보자. 그런 것들로 내가 힘든 거라고 단정 짓지 말아 보자. 우리는 그렇게 나약한 존재가 아님을 상기하자. 그리고 나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떠올려보자. 


나를 다르게 바라봐주는 것만으로 꽃이 핀다는 말. 김호영 씨의 경우 가는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다고 한다. 실제로 '앵앵댄다, 듣기 싫다' 혹평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저런 혹평의 말 대신 "호영씨는 목소리가 굉장히 라이트 하고 매력 있다."라는 말을 해주었다고 한다.


같은 목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듣기 싫다고 하고, 누군가는 라이트 한 너만의 매력이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을 들은 이후 김호영은 무명시절을 딛고 누구나 다 아는 대표 뮤지컬 배우로 거듭났다. 케케묵은 콤플렉스가 덜어내진 자리엔 자신감이 가득 찼다.


나는 오늘 어떤 말로, 누구를 꽃 피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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