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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Feb 11. 2023

[증상] 새엄마를 싸잡아서 욕하고 싶을 때 직방

사랑은 떼어내면 작아지는 빵 조각이 아니다『새엄마 육아 일기』

오랜만에 중간에 끊기가 짜증스러울 정도로 좋았던 책을 만났다.

나에게 있어 좋은 책은, 1. 내가 못했던 생각이 보이거나 2. 내가 했던 생각을 다른 문장으로 표현한 책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육아를 경험했지만, 출산은 경험하지 않은

마흔 무렵에 재혼으로 여덟 살 아들을 얻은(*저자는 공짜로 넘겨받았다고 표현한다) 저자의 육아일기다.



“아이 덕분에 행복해 보인다”는 옆사람의 말에 귀가 번쩍! 하면서 내 안에서 행복해지길 기다리던 내가 문을 열고 나왔던 그 체험은 나에게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의미 있는 계기를 만들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게 만든다. 우리 안에서 영글고 있던 어떤 개념이나 감정은 마침 좋은 타이밍에 마침 적절한 ‘남의 말’을 만나면 생각보다 빨리 이끌려 나와서 좋은 결과를 맺기도 한다.     

우리 안에 머물던 감정이 '남의 말'을 통해 결과를 맺는 일.

남녀 사이에 이런 일이 일어나면 텔레파시라고 할지도 모르겠고, 그 외의 관계에서는 소울메이트 정도가 될 것 같다.


살면서 생각보다 그렇게 '남의 말'이 내 마음을 동요하는 일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귀중한 일임을 이 책의 여는 말을 읽으며 새삼 깨달았다.


얼마 후에 아들이 들고 온 흰 수건 천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요”라는 수가 놓여 있었다. 그 수건은 지금도 내 보물 1호로 고이 간직하고 있다. (중략) 친엄마라면 그런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수건에 “엄마 사랑해요” 같은 글씨 수놓는 애교를 떨 필요 없었을 텐데.

새엄마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손에 익숙지 않은 바늘과 실로 천에 글자를 한 땀 한 땀 놓았을 심정이 상상이 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저 카네이션을 처음 받았을 때의 행복감 같은 소소하고 귀여운 에피소드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친엄마가 아니기에 ‘필사적으로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가슴이 아팠다는 저자.


같은 현상에서 다른 의미를 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내가 똑같이 웃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좋냐"라고 말하는 반면, 신랑은 ‘가짜 웃음 그만 짓고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닼


선물을 건네는 기특한 아이의 외면적 모습에서 외부인을 새엄마로 맞아들이며, 맘 졸이며 눈치 봤을 아이의 내면의 그늘을 찾아낸 저자. 그때부터 진정한 사랑이 시작됐고 인생이 바뀐건 아니었을지.





어린아이들에게는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분 좋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다. (중략)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든가 갖고 싶던 장난감이 생겼다든가 하는 작은 일이 생겨 마음껏 행복해하는 느낌을 아이가 활짝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아들이 웃으면 디즈니 영화에 나오는 요정이 마법의 지팡이를 휘두른 듯 온 집 안에 환희로 반짝이는 금가루가 날리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아이가 뭔가 작은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서 힘들어하거나 슬퍼하거나 화를 내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도 덩달아 슬퍼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어서 그 욕구를 빨리 채워줘서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다시 봐야 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어진다.      

"애들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면 버릇 나빠져."

흔히 듣지만 고치기 힘든 부모의 어려운 과업 중 하나다.


아이의 웃는 모습 한 번을 보기 위해 부당할 정도로 몸과 시간을 희생하고,

반대로 아이의 화나고 억울해하는 모습에 억장이 무너져서 1순위로 해결해주고자 하는, 비효율적이고 불합리한 모습. 그런데 부모가 되고 나선 쉬이 고쳐지질 않는다.


아들은 어떻게 그렇게 순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잘 자랐을까. (중략) 남편한테 듣기로 아들의 친엄마는 나와는 달리 성격이 매우 온화하고 마음씨 고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성격인 엄마가 아들이 세 살 될 때까지 사랑을 흠뻑 주며 키웠으니 정서적 안정의 토대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아들에게 두 번째 엄마가 되어준 내 시누이는 지금까지 살면서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천사에 가까운 사람이다. 천사에 가깝다고 말하는 건 마음 밑바닥에 깔린 분노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내 마음에 분노가 많아서 그런지 분노가 많은 사람을 만나면 금방 알아본다. (중략) 온화한 친엄마의 유전자에다가 쉽사리 화를 내지 않는 고모의 육아가 더해져서 순둥순둥하게 빚어진 아이를 나는 공짜로 넘겨받았다는 게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나도 가끔 남편을 보며, 남편을 길러낸 시어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낯설정도로 자애롭고 넓은 그릇을 가진 사람들.

내가 자랄 때는 그런 어른들이 거의 없었다. 내 주변 어른들은 누구보다 이기적이었고, 감정적이었다. 그냥 '나이만 많으면 어른인 거구나.'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결혼을 하고 시간이 지나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들고 있기에, 나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 중 지금이 제일 만족스럽다.


저자 역시 어린 시절 엄마로부터 느꼈던 결핍을 평생 일면식도 없던 아이와 맺은 모자의 연으로 채워나가며 기적을 느꼈다고 한다.


아이와 가족은 그렇게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서운하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건 아들이 친엄마를 생각하는 만큼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줄어들지 않겠냐는 얘기일 것이다. (중략)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은 한 귀퉁이를 떼어 내면 양이 적어지는 빵조각이 아니다. 사랑은 쓸수록 단련되고 능력이 커지는 운동 근육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흔히 나오는 동화 속 못된 계모와 새엄마.

굳이 동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사회면을 차지하는 새엄마의 악행들이 겹쳐지며 '새엄마'라는 단어 자체가 냉랭함을 내포하는 단어로 느껴지지 않았나 싶다.


그런 우려를 저자 주변에서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만 바라보고 살았던 삶을 청산하고 나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작은 인간인 아이의 의식주를 책임지며 사랑은 쓸수록 줄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고 단단해질 뿐임을 깨닫게 된다. 누구라도 가장 부러울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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