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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Mar 14. 2023

아이가 유치원보다 학교를 좋아하는 이유

『안녕, 열여덟 어른』_김성식

아들이 초등학교생이 된 지 10여 일이 지났다.

그동안 실내화를 집으로 신고 오는 등의 해프닝은 있었지만 난항을 예상했던 것치곤 적응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엄마입장에서 개인적으로 느끼는 유치원과 학교와의 가장 큰 차이는 '여벌옷을 보내냐 안 보내냐의 차이'인 것 같다.

작년까진 유치원에 여벌옷을 원에 맡겨두었다. 혹시 소변 실수라도 하면 선생님이 여벌옷으로 갈아입히고 집으로 젖은 옷을 보내주곤 하셨다.


그런데 학교에선 여벌옷을 요구하지도 않으며, 원한다고 해서 보낼 수도 없다. 

다시 말하면 학교에서는 소변실수를 해도 그대로 찝찝함을 알아서 독립적으로(?) 견디고 해결해야 하는 곳인 것이다. 이렇게 아이입장에서 생각하니 학교라는 곳이 한없이 부담스러운 정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늦되고 손 끝도 둔한 우리 아들에게는 더더욱 가시 많은 정글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학교가 유치원보다 좋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친구 때문도 선생님 때문도 아닌, '먹기 싫은 반찬을 남겨도 되기 때문'이다.


편식도 심하고 매운 것은 아예 못 먹는 아이는 늘 급식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유치원은 정 못 먹으면 선생님이 먹여주거나,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곳이었기 때문에 아이에겐 그게 부담이었나 보다. 본인만 점심을 늦게 먹어서 장난감을 못 가지고 놀았다고 집에 와서 울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학교에선 선생님이 아이에게 "남겨도 돼~"라고 했단다. 그러니 한결 학교 가는 마음이 편한가 보다.

편식지도를 원하는 학부모도 있겠지만, 당장 아이 마음이 편하다니 나는 그걸로 만족한다.


남들에겐 별 거 아닐지라도, 나만 아는 혹은 극복이 어려운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집단안에서 살아가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급식도 그렇고 아이는 대변처리가 아직 미숙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이나 원에서는 단 한 번도 대변을 본 적이 없다.

그냥 죽을힘으로 참는다고 한다. 이건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 혹시라도 대변 신호가 와도 제대로 처리를 못할 텐데 그럼 그게 너무 창피할 것 같아서 초반에는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었다. 아마 편식도 이것과 직관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자신만의 치명적 약점을 안고 사는 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일이다. 이런 아이를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최근에 읽었던 '자립준비청년'들에 관한 책이 떠올랐다. 이들은 같은 '고아'라 할지라도 '부모의 유무'가 인생의 약점을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비록 같이 살지 못하더라도 원가족이 있다는 것은 부러움을 사는 일이다. 원가족 유무에 따라 아이들은 '진짜 고아'냐 아니냐를 따지며 싸운다. 원가족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세상에서도 약점이고 결핍이 된다. 이럴 때면 얼굴도 모르는 부모님이 더욱 그립고 원망스러워진다.

-p.20


매번 자신의 과거를 숨기냐 밝히냐를 고민해야 하는 것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제한한다. 비밀을 갖고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갈 수 있을까. 사람들이나 그룹으로부터 배제당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고서는,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다. 동호회, 학부모 모임, 동창회 등 어느 모임에 가든 어느새 학벌과 직업으로 상대방을 평가한다. 학벌과 직업도 이럴진대, 보육원 출신이라는 비밀을 안고서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만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p.87


숨겨야 하는 과거를 안고 사는 것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제한한다는 말에 너무 공감이 되어서 더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아이에게 "남겨도 돼~"라는 말 한마디에 아이에겐 해결불가였던 그 응어리가 해결되었을 때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듯, 이들에게 얹어진 무거운 돌덩이를 다만 몇 개라도 덜어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더 많은 공부를 해봐야 알겠지만, 이 책에서는 그 방법 중 하나가 '유난 떨며 다른 종인냥 이들을 대하고 프레임 씌우지 않을 것'을 말한다. 굉장히 쉬운 일 같아 보이지만, 말하고 규정짓기 좋아하는 인간의 특성상 달성하기 어려운 일이라고도 보인다. 당장 나부터 의식적으로라도 해봐야겠다. 수준 높은 인격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노력해서 되는 일이라면 모두가 가능한 일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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