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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Feb 15. 2024

천 원 한 장으로 축제가 될 수 있다면

맞벌이 부모덕에 남들 방학일 때 방학 없이 매일 이른 아침에 함께 나서는 아침 등굣길. (나에겐 출근길)


평소라면 "옷 입어라." "세수해라." "신발 신어라. 늦는다."로 시작해, 

"안 나오면 엄마 혼자 회사 가버린다."는 협박으로 끝나는 시간이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이준아, 오늘 편의점 들렀다 학교 갈까?"라고 말하자, 

"어! 그래!!" 하는 칼답과 함께 늦장 피우던 아이의 손길이 좋아하는 슈퍼 소닉만큼 빨라진다.


편의점은 너무 지천에 널려서 어른인 나에겐 별 의미 없는 곳인데,

아이한테는 출발부터 도착 전까지 내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인가 보다.


뭘 살지 궁금해서 가서 뭐 살 거냐고 물어봐도, 활짝 웃으며 "음... 아직 생각 중이야."라고 말한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둘러보며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아들. 누가 보면 편의점도 안 데리고 다니는 줄 알겠다.


한참 둘러보더니 본인표현으로 라이터모양의 초코볼을 하나 골랐다.

라이터 모양이라고 흔들며 더 신났다. 


그러다 문득 밸런타인데이였던 게 떠올라.


"이준아 오늘 밸런타인데이야. 무슨 날인지 알아?"하고 물으니,

"나 알아! 하트 그거..."하고 말끝을 흐린다. 아는 척을 엄청 하고 싶어 하는 요즘인데, 대충만 알아서 자신이 없었나 보다.


그게 귀여워서, "맞아, 사랑하는 사람한테 초콜릿 주는 날이라서 엄마가 이준이한테 1번으로 초콜릿 준거야."라고 말해줬다. 사실 초콜릿은 본인이 고른 거였지만;;ㅎ


한참 내 말을 듣더니, "아 그래?" 하더니 바로 초코볼을 하나 꺼내서 내 손에 올려줬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초콜릿 주는 날이라니까 냉큼 두 알도 아닌 딱 한 알을 내 손에 올려주고 얼른 먹으라고 난리다. 못 이기는 척 초콜릿 받아서 너무 좋다고 먹어줬다.


초콜릿 하나에 콩콩대며 신나 하는 아이와 어느새 교문에 도착해서 "반에 가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나눠 먹어~" 하고 아이를 들여보내고 나는 출근했다.


2천5백 원짜리 초콜릿 하나로 등굣길 내내 축제 같았다. 아니, 그렇게 만드는 건 너의 능력이겠지.

2학년을 앞둔 맑고 밝은 아들, 고마워.


아래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 맞게 각각 메시지를 적어서 붙여주신 간식 꾸러미.

선물을 우리가 드려야 마땅한데 죄송하고 감사하다. 선생님이 좋아서 2학년이 되기 싫다고 보이콧하는 아들을 보며 좋은 분과 1년을 보냈음에 더욱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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