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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n 23. 2023

반복을 즐긴다면 예능 피디를 추천합니다

저는 아닙니다만...

흔히 예능 피디하면 꽤 재미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도 어릴 때부터 그렇게 믿는 1인이었기에 악착같이 공부했고 예능 피디가 되었다.


물론 재밌다.

그리고 나는 내 직업이 좋다. 일단 누군가를 기쁘고 재밌게 만드는 직업이라는 점이 가장 좋다.

실제로 만들면서 혹은 상상하면서 웃을 일이 많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장점 외에

피디로서 내가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일은 똑같은 장면을 계속 보고 또 보는 일이다.


계산해 본 적은 없지만 이번 기회에 직접 헤아려 보자면,


1. 촬영할 때 보고

2. 촬영본을 가편 온 걸 한 번 보고(*1차 가편 시사라고 함)

3.2차 가편한 걸 엠씨들과 더빙하면서 한 번 더 보고(*스튜디오 녹화라고 함)

4. 엠씨(박준형/김지혜)들이 더빙 한 오디오/비디오를 껴넣은 버전을 또 보고(*2차 가편 시사라고 함)

5. 자막을 넣은 버전을 보고(*인서트라고 함)

6. 음향 효과를 넣은 버전을 보고(*smr, 사운드 마스터링 혹은 믹싱이라고 하며 배경음악을 넣는 것부터 자막이 나올 때 '띠용', '뿅', '샤라락~' 이런 효과들도 다 포함된다)

7. 본방 송출 전에 이 모든 걸 합친 버전을 보고(*종편이라고 함)

8. 본방송 모니터링을 하면서 집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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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VCR 촬영을 나가진 않으니 그걸 빼도 최소 7~8번을 똑같은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행위가 매주 반복된다.


오늘은 7번 단계인 최종 종편 전의 합본을 하는 날이었다. (*합본이란 본방 직전의 최종 방송 길이를 늘이거나 줄여서 맞추고, 자막이나 컷 오류 등을 확인하고, vcr 순서나 좌상단 등을 어떻게 쓸 것 인지 최종으로 정하는 단계로, 메인피디가 뭔가를 수정하고 오류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보면 된다.)


최종 수정을 하면 이렇게 프로젝트로 저장해둔다.



일단 나는 반복해서 같은 행동을 하는 걸 싫어하고, 반복해서 뭘 보는 건 더더욱 싫어한다.

아무리 좋았던 공연, 영화도 똑같은 장면을 다시 보고 싶진 않다.


아티스트들은 보통 시키지 않아도 같은 구간을 수천 번, 수만 번 반복해서 본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만났던 실력파 가수들도 수백 번 모니터링을 질리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아티스트나 예능 피디로서는 부적격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아무리 웃긴 장면도 7번 보면 정말 재미없고 한숨만 나온다.


한숨 쉬는 게 나쁜 버릇인걸 알지만, 합본할 때 "에휴~"하며 한숨을 가장 많이 쉬게 되는 것 같다.

오늘도 합본을 마치고 밤늦게 오면서 '한숨 좀 덜 쉴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천부적인 재능이나 감각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어쩌면 나는 반복해서 더 많이 봐야 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반복해서 보고 또 보는 것 마저 타고난 재능이자 능력이라는 생각이 드는 밤이다.


#살림돌첫방파이팅

#강다니엘컴백많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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