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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Jul 26. 2023

행정 직원과 제일 친한 예능피디

10여 년 전 <1박 2일> 김민석 선배의 가르침

2014년 입사를 하고 거의 바로 <1박 2일 시즌3>의 막내 조연출로 배정되었다.

메인피디였던 유호진 선배를 필두로 그 밑으로는 쭉 남자 피디들이었고 나만 유일한 여자 피디였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쌩 신입이었다.

첫 촬영 때 산속 밤샘 촬영의 무서움을 모르고 야상 재킷을 입고 갔다가 덜덜 떨며 호되게 혼난 쌩 신입


그런 나에게 선배들은 100명이 넘는 스태프들의 이름 외우기부터 편집, 행정처리까지 자상하게 알려주었다.

특히 막내 조연출에게 중요한 일인 전도금 정산.


전도금은 <1박 2일>처럼 오지를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에서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경우를 대비 현금을 미리 인출해 가는 것을 말한다.


워낙 대규모 촬영이라 몇 백만 원일 때도 있고, 그것들을 때에 맞게 쓰고 수십 장의 영수증과 남은 잔액을 모아서 원금액과 맞춰서 행정팀과 정산하는 것이다.


그러면 나도 막내지만 행정팀에서도 20대인 막내급이 나와 정산을 하게 된다.

선배 이름이 나와서 반가워서 찍어봤던 사진


그날도 잔뜩 긴장하며 잔액을 맞추고 있는데 지금은 유퀴즈로 더 많이 알려진 김민석 선배가 다가왔다.

"행정 직원 은지 씨(당시 행정 직원이름이 나랑 같았다)랑은 좀 친해졌어?


나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촬영 스탭도 아닌데 굳이 친해져야 하는 관계였던 건지 헷갈렸다.

그런 나에게 선배가 알려주길, 사실상 막내 조연출은 정산 등의 업무가 크기 때문에 행정직원과 편한 사이가 되면 내가 한결 더 수월하게 일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본인의 경우 커피 쿠폰 같은 것도 다 모이면 정산 영수증 낼 때 같이 클립에 껴서 주기도 하고 그렇다고 했다. 피디들은 다 법인카드가 있어서 그래도 커피 같은 식음료는 자유롭게 먹는 편이어도, 사회 초년생인 행정직원들에게는 그런 커피 쿠폰들도 출근길에 쓰면 꽤 쏠쏠할 거라고 팁도 주었다.


그러고 보니 20대 중반에 2백만 원도 안 되는 월급 받으며 인턴하고 그럴 때 멋모르고 택시 타고, 남들 따라 커피 사 마시고 그러다가 월급이 오히려 마이너스였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 이후로 선배 말대로 커피 쿠폰도 모아서 주고, 꼭 영수증을 낼 때마다 포스트잇에 내 이름을 쓰고 비타민이나 간식이라도 같이 주는 버릇이 근 10년 동안 생겼다. 행정직원은 계속 바뀌었지만 이 패턴은 늘 유지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계약직이어서 근무기간이 짧은 행정직원들이 어딘가로 가거나 할 때 미리 꼭 인사해 주고 가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오늘도 <살림남>의 행정을 맡아주는 한나 씨가 편집실로 결제를 받으러 왔기에 한바탕 웃으며 얘기를 나눴다. 실제로 20대고 아이돌에도 관심이 많아서 요즘 <살림돌>을 제작하면서 내가 도움을 받을 때가 많다.

한나 씨가 주고 간 간식

"피디님이 프로그램 젊게 만들고 싶다고 해서, 지난주에 제가 네이버에 '살림남 엑소'라고 엄청 쳐봤어요. 엑소 팬 친구들은 이미 선공개까지 다 봤더라고요."라고 말하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다.




사실 10년 전 선배의 말이 아니었다면 굳이 가까워질 노력을 안 했을 수도 있었을 관계.

가끔 행정직원에게 점심을 사거나 하면 팀, 부장급 선배들은 '굳이 왜 친하지?' 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덕에 내 회사 생활은 한층 더 풍요로워졌다.

새삼스럽게 선배에게 더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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