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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 첫 날, 펑펑 울어버린 못난 사연

그릇 작은 엄마라서 미안해

by 편은지 피디

뭐든 처음은 소중하다.

아이의 인생 첫여름 방학도 소중하다.


“아싸!! 내일부터 학교 안 가도 된다!”하고 신나야 마땅할 것 같은 방학이지만,

맞벌이 부모를 둔 죄 아닌 죄로 오전 9시까지 학교 내 돌봄 교실로 매일 가야 하는 아이의 일상은 사실상 달라진 게 없다.




초등학교 때 나의 방학을 생각해 보면 초반 며칠은 학교를 안 가서 그 해방감에 너무 짜릿했고,

중반부터는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심심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 경험을 했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는 방학 때 신청해서 한 달 내내 먹을 수 있었던 핑키라는 이름의 딸기 우유 한 박스가 집에 배달되는 게 그렇게 설렜다.


그렇게 소소했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의 그것과 너무나 대비되는 평소와 똑같은 아이의 첫 방학 날이 괜스레 미안했다.


그 와중에 오전 9시까지 드론 수업을 가야 하는 걸 정작 내가 잊었다.

방학과 동시에 방과 후 수업이 어떤 것은 오전으로 옮겨지고 어떤 것은 그대로인데 미처 체크를 못한 것이다.


뒤늦게 깨닫고 예민해져서 안 그래도 걷기 힘든 더운 날 빨리 걸으라고 아이를 채근하고,

동시에 강사님이 계시는 단톡방에 ”이준이 가는 중입니다. 3분이면 도착합니다. 죄송합니다. “를 급히 쳐서 보낸다.


꼭 이럴 때면 아이가 안 그래도 무거운 가방을 들고 있는 땀 흘리며 걷고 있는 내 팔을 매달리듯 잡는다.


그러면 정말 인내심 없는 별로인 엄마인 나는,

“엄마 더워! 왜 매달리니!”하고 쏘아붙이면,

아이는 눈치를 보며 “엄마가 좋아서...”라고 말해서 심장이 철렁할 정도의 엄청난 죄책감을 들게 하지만, 선생님한테 보내는 메시지를 멈출 수는 없다.


이런 죄책감으로 하루를 시작해서인지, 회사에서도 마치 내가 민원처리반이 된 냥 모두가 나에게 힘든 점을 얘기한다.


일정이 버거워서 그만두고 싶을 정도이다.

출연자 섭외가 안 된다.

동시간대 강력한 드라마가 들어온다.

누군가와 안 맞는다는 등의 제작진들의 민원으로도 모자라

일과 무관하게 예전 과외를 했던 친구가 회사를 안 맞아서 이직하고 싶은데 상담을 해달라는 등등 나열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모두가 하나 같이 어떤 것과 혹은 누군가와 안 맞는다는 내용이라 들으면서도 유쾌하지 못하고 찝찝한 감정이 남는다.

그것들은 해소하지 못하고 집에 오면 가족들도 각자 힘겨워하고 있다.


그중 숙제도 못 끝내고 샤워도 하지 못해서 “망했다”며 풀 죽어 있는 어린 아들도 있다.


할 일이 산재한 이 와중에 태권도에서 하는 특별활동과 방과 후 수업 시간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서 또 한 번 난처해졌다.

사실 이 마저 정확히 모르고 있다가 사범님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정리해 보겠다며 사범님과의 통화를 급히 끊고 내내 딴짓하는 아들의 독후감 숙제를 봐주다 화가 버럭 났고, 그렇게 화내며 아이를 잡는 내 모습이 더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즐거워야 할 여름 방학 첫날에 아이 앞에서 결국 나약하게 울고 말았다.

오늘 하루 제일 고생했을 아이를 재우고 나서 쓰는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죄책감이 가시지 않는다.


듣기로는 글에는 치유의 효능이 있다고 하는데,

사실 그런 치유를 느껴본 적은 없지만 오늘만큼은 치유의 힘에 기대보고 싶다.


치유 기능이 부디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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