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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13. 2022

먼저 떠난 나의 절친에게

《먼 길로 돌아갈까?》_ 게일 캘드웰 지음

처음 보고 눈물이 쏟아졌던 문장


2008년 5월 친구가 떠난 달이다.

내 생일 며칠 전이었으니 10일 언저리였을텐데

매년 헷갈린다.


비교적 소소한 기억력이 좋은 편인데,

이건 떠올리기 싫은 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냥 내 머리가 좋지 않은 건지 암기가 잘 되질 않는다.


10년이 넘게 흘렀고,

같이 대학교 방송국 동아리를 하며

PD 지망생이었던 두 살 많은 내 친구,


나는 그때도 예능 PD 지망이었고

친구는 드라마 PD 지망이었는데

그때도 샘 많은 나였던 터라 내심 우리가

같은 분야 지망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정작 친구는 어떤 면접에서 나만 혼자 붙었을 때도

나보다 더 좋아하고 오히려 삼수해서 나이까지 두 살 많은

본인 때문에 내가 대놓고 좋아하질 못하는 것 같다며

늘 미안하고 축하한다고 싸이월드 우리다이어리에 써주곤 했었다.


패션이며 유머며 미모며 인성이며

모든 게 나보다 앞서가더니만

가는 것도 먼저 휙 가버렸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아직 덤덤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이름도 부르고 써볼 수 있게 되었다.


그냥 다만 문득문득

엄청 즐거운 일이 있거나 혼자 있을 때

같이 있으면 얼마나 재밌었을까.

얼마나 더 찰지게 수다 떨었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괜히 입을 다물게 된다.


그런 친구가 더 많이 생각났던 책.

《먼 길로 돌아갈까?》_ 게일 캘드웰 지음



개인적으로 2020년에 처음 알게 된 캐럴라인냅의 글이 너무 좋아서 페이스북에도 글을 썼었는데, 바로 그 캐럴라인의 죽음에 관해서 절친이 쓴 책이었다. 별생각 없이 집어 든 건데 그 우연이 참 신기했다. 아래는 당시 내가 썼던 캐럴라인 냅의《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의 리뷰.



그리고 아래는 《먼 길로 돌아갈까?》에서 발췌한 문장들이다.





캐럴라인을 만난 것은 마치 가상의 친구를 찾는 구인광고를 냈는데 상상한 것보다 더 재미있고 멋진 사람이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난 상황과 비슷했다.   - 《먼 길로 돌아갈까?》중에서

스무 살에 백은을 만났을 때 내가 딱 그랬던 것 같다. 내 마음을 표현한 적은 없지만, 세상에 이렇게 재밌고 뛰어난 친구가 있구나. 같이 천장만 보고 누워있어도 재밌는 친구가 있구나.






그녀는 죽었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 죽음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상투적이다. 나는 적막감으로 미칠 것 같았고, 적막감은 종종 노여움으로 둔갑했다.

난데없이 엄습하는 원초적인 분노에 대해 말해주는 책은 없다. 죽은 사람과의 동거를 대신할 그나마 견딜 만한 대안은 이런 분노뿐이다.

죽음은 아무도 청하지 않은 이혼이며, 이것을 견디고 산다는 건 잃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줄 알았던 존재와 절연할 길을 찾는 것이다.

 -《먼 길로 돌아갈까?》중에서

 

실제로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어디에서도 위로를 구할 수가 없어서 미친 듯이 '상실'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해서 걸리는 모든 책을 다 읽었다. 활자 속에 갇혀야 그나마 숨이 쉬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심할 때는 하루에 다섯 권 정도씩은 거뜬하게 읽어댔다. 그 결과 요즘도 속독은 그리 어렵지 않은 습관 아닌 습관으로 남아있다.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나무의 색마저 바꿔놓은 이 슬픔의 스펙트럼에 들어서긴 전까지, 멋모르고 세월을 보낼 수 있는 우리의 배후에는 필시 무모하리만큼 맹목적이고 엇나간 가정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의 현재의 삶이 언제까지고 지속될 방법이 있으리라 생각한다―혹시 상실의 순간이 오더라도 길의 중간이 아니라 끄트머리쯤일 거라고. - 《먼 길로 돌아갈까?》중에서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줘. " 축구장의 그 스산한 날로부터 한참 시간이 흐르고, 캐럴라인의 영혼이 우리를 집까지 인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다니지 않은 지도 이미 오래인 어느 날, 저녁을 먹으며 앤드리아에게 내가 한 말이다. 무슨 뜻인지 나조차도 긴가민가하고 입 밖에 내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는지 의식조차 못했는데, 내 잎에서 튀어나온 말은 기도서의 문구처럼 확신에 차 있었다. 죽은 이들이 우리를 지켜준다. 이제 나는 이 말을 실감하며 강한 안도감을 얻는다. - 《먼 길로 돌아갈까?》중에서

친구가 신처럼 나를 지켜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멋모르던 20대 초반에는 이런 낭만적인 생각도 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까지 대책 없이 낭만적일 순 없는 나이가 됐다. 다만,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백은이라면 좋아했겠다 혹은 한심해했겠다.'이런 가정을 세워 판단 기준으로 삼아보곤 한다. 만약 내 옆에 그녀가 있었다면, 나의 행복을 가장 우선해줬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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