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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Oct 08. 2024

마음을 다한 만큼 상처는 깊다

예능 피디는 어린 시절부터 간절히 해오고 싶은 일이었지만,

심지어 한 번에 붙지도 못했고 수차례 낙방 후에 어렵사리 시작하게 된 소중한 일이지만,


입사 후 10년이 넘어가면서,

어느덧 초심도 흐려지고 적당한 선을 나도 모르게 찾을 때가 많다.


그래서 원치 않는 프로그램에 조연출로 배치됐던 순간에 가장 공허함을 느겼고 겉으로 티가 나지 않았을지라도 내적 방황을 길게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눈 밖에 나고 싶진 않았기에 수험생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조연출 시절에 느꼈던 그런 공허함은 나름 여러 권한들이 생기는 메인 연출이 되면서 조금씩 해소는 되었다.


그러나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메인 연출이라고 해서 매 순간, 모든 출연자에게 애정과 열정이 불타오르지는 않는다.


무심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 이유를 말하자면, 나도 방송국의 피디이기 이전에 사람이기 때문이다.


괜히 마음이 더 가는 출연자가 있는 반면, 경영적인 목적이든 수익이든 분명히 객관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출연자지만 왜인지 관심이 덜 가는 사람도 있다.


마음이 동하는 출연자를 만나는 일은, 입덕의 순간인 덕통사고가 의지를 갖는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것만큼이나 드물고 귀한 일이다. 나에게도 무심히 지나칠 뻔한 직업에 대한 감사함과 사명감을 동시에 불러일으켜주는 값진 모먼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정을 갖게 되면, 누군가 시키지 않아도 소소하고 짤막한 그 무엇이라도 만들고 표현하게 된다. 시키는 이가 있어서도 아니고 그저 내 마음에 우러나와서 하는 행동들이다. 오히려 나의 열정만큼 그것을 구현해내야 하는 후배들이나 스태프들은 지치고 힘들 것이다.


그러나 나의 욕심과 열정에 스태프들이 힘든 것처럼, 나 또한 일한 만큼 월급을 받는 직원이고 그만큼 회사가 원하는 만큼의 노무를 제공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에, 회사의 지시사항에 반하는 일들을 할 순 없다. 쉽게 말해 회사에 끼치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수익을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이 나의 의무인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온전히 100% 나의 사업이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전체적인 상황보다는 그때의 내 주파수대로 행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KBS라는 큰 울타리 안에 내가 남아있는 한 나의 의무이자 책임은 변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시청자의 불만, 스태프의 불만, 나아가서는 후배들의 불만도 마찬가지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어떤 식의 불만과 비난이든 부정적인 말들은 아무리 괜찮은 척 해도 아플 수밖에 없다.

특히나 대가 없이 애정으로만 달렸을 때는 더욱 그렇다. 


애초에 애정을 가진 것부터 과욕이었나, 잘못이었나 하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 또한 나의 선택이었기에 지난 과거의 선택마저 부정하고 싶진 않다.


애정을 갖고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느꼈던 보람과 성취 또한 빛이 바래버린다면 더 속상할 것이기 때문이다. 


애정을 다한 만큼 아프지만, 그렇다고 무 썰 듯 모든 걸 잘라내기엔 아직 난 나의 직업을 좋아한다.

능력 여하를 떠나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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