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은지 피디 Sep 26. 2022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아니잖아

회사에선 무조건 인정받고 봐야 하는 비생산적 똥고집

흔히 피디들은 일반 직장인들과 다르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산다고 생각한다. 물론 슈퍼 네임드 피디가 되면 그럴 수도 있겠으나, 나머지 피디들은 사실 일반 직장인과 똑같다. 직장인들이 때 되면 부서를 이동하고 프로젝트에 팔려 다니듯 피디도 그렇다. 문득, <주접이 풍년>이 종영했을 때, MC였던 이태곤 오빠가 진짜 내 미래가 걱정이 된다는 눈빛으로, "그럼 이제 우리 편 피디는 어디로 가는 거야, 내근을 하게 되는 거야?"라고 몇 번이나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정 많은 사람.


어쨌든, 나도 나의 첫 프로그램을 마무리하고 공연을 준비하는 부서에 와있다. 종종 큰 프로젝트들이 들어오는데 그것들은 나의 기획이나 관심사와 사실 무관한 것들이다. 하긴, 나의 관심사라는 것 자체가 워낙 편협하고 대중 픽과 다르기 때문에 내 관심사를 일로 녹이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새로 들어올 큰 프로젝트의 메인 연출을 누구로 세울지 며칠 째 고민하는 선배를 봤다. 선뜻하겠다고 단박에 나서지 못했다. 아직 일말의 취향과 성취욕이 남아 있었나 보다. 


그러다 며칠 뒤 나도 피디이기 이전에 부서의 일원이라는 새삼스런 깨달음을 다시 한번 얻고, "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걸로 끝인 줄 알았으나, 오히려 선배는 며칠 째 "다른 사람 없나? 음악 방송을 해본 사람이 좋을 것 같은데, 생각나는 사람 없나?"라며 제2의 인물을 계속 찾는 것이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하겠다고 했는데, 굳이?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더니 듣던 신랑이 말한다.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것도 아니었으면서 뭘. 너의 그런 기운을 느끼고 배려를 한 거겠지. 진짜 하고 싶은 거였으면, 네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어필을 하던가.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난 왜 내가 정말 원하고, 바라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논의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것만으로 분개했을까. 정말 배고픈 것도 아닌데, 씹지도 못할 만큼 입안 가득 음식을 욱여넣는 동물과 다를 게 없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아니어도 내가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오만은 회사생활 말고 인간관계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정말 그 사람과의 관계를 가져가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일단 무조건 날 좋아해야 하고 날 선택해야 한다는 강박. 자기애와는 좀 다른 지독한 인정 욕구다.


여기서만 벗어나도 좀 숨통 트인 삶을 살 수 있는데. 진짜 원하는 걸 생각하면서 살기에도 모자란데, 모든 분야에서 or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이상한 똥고집. 오늘도 다시금 되뇐다.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 '나만큼' 전혀 관심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