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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20. 2022

남들이 욕할 때 나만 안 하는 쾌감

술을 마시든 커피를 마시는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자리에 없는 사람 얘기'다. 그리고 그 얘기는 99퍼센트의 확률로 험담이다. 이런 자리에서의 험담은 '사람 사는 얘기, 세상 돌아가는 얘기'라는 표현으로 미화됨과 동시에 같이 험담을 나누는 사람들의 소속감이 두터워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별 특별할 것 없었던 며칠 전 술자리에서도 익숙한 상황이 연출됐다.


걔는 진짜 안 되겠더라. 처음부터 비호감이더니 !@#$%


한 후배에 대한 험담이었고, 그 후배는 당연히 자리에 없었다. 평소라면 무언의 동조를 하거나, 진짜 그러냐며 대충 맞장구치고 넘어갈 수도 있었지만 이번엔 내 생각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요? 아닌데, 귀엽고 일도 엄청 잘하는데.
저는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는 후배거든요."

흥이 고조될 뻔했던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고, 결국은 누군가의 "알겠으니까 그만해라."라는 한 마디로 물색없는 내 칭찬은 그렇게 휘발됐다. 그럼에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일단, 내가 아는 한에서 할 말을 함으로써 왜곡된 후배에 대한 인식을 바로 잡으려고 시도해 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대다수가 그 후배를 싫어할지 몰라도 나는 남이 보지 못한 그 사람만의 장점과 진가를 알고 있다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찝찝한 뒤끝'이 없었다는 점이다. (물론 나와 같이 있었던 분들의 술맛이 살짝 떨어졌을 수는 있다.) 보통 술자리가 끝나면 늘 뭔가 개운치 않은 게 그 자리에서 나누는 얘기들이 대부분 험담이기 때문이다. 남을 깎아내리는 얘기는 하는 것 자체로도 부정적인 기억을 꺼내게 되고, 모두에게도 부정적 기운을 전파하는 일이다. 듣기만 해도 말이다. 여기에 나도 필사적으로 그 흐름에 끼고자 한 두 마디라도 보탰을 경우에는 죄책감과 '나도 혹시 저 험담의 대상 되진 않을까?' 하는 심려까지 추가된다.


내가 도덕적으로 완벽해서 하는 얘기가 절대 아니다. 나도 눈치 없다는 얘기 듣기 싫어서 혹은 그 모임의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맞장구를 친 적이 굉장히 많다. 그래서 몇 년 전에는 사실 그 정도로 싫은 사람도 아니었는데, 제3자와 친해지기 위해서 험담에 동참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말실수를 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실수고 내 진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불쾌한 기억이다. 


그래서 험담은 해서 남는 것이 전혀 없다. 매일 모여서 험담하며 쌓은 친목은 결국 머지않아 나를 험담하는 모임으로 변질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험담은 매일매일 노력해서라도 하지 않는 게 맞다. 독이 서린 말을 담거나 가까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내가 잘나고 고고해서가 아니라 내가 건강하게 살기 위한 생존 방식 측면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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