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돕는 글을 쓰고 싶은가

by 편은지 피디

나는 책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독서를 즐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학업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상황에서 나고 자랐다.


이유는 단 하나,

어린시절 유독 소심했기 때문이다.


다들 당당해만 보이는 사람들을 피해서 정당하게 숨을 수 있게 해 준 것도 책이었고,

아이러니하게 사람들 앞에 쭈뼛쭈뼛 나설 수 있게 한 것 또한 책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늘 친구도 인기도 없는 건 디폴트 값이었는데, 전교생 앞에서 내 이름 석자가 호명되며 상을 받게 한 것도 ‘책’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춥디 추운 겨울방학에 방에 박혀서 유일하게 책 대여점과 집만 오가며 두 달여를 보낼 때 가슴이 뛰는 첫 경험을 했다.

시답지 않은 연애소설류를 보고 울기도 했더랬다. 그러나 그런 감정들을 발화할 대상도 기회도 깡도 없었다.


그렇게 대학을 갔고, 어마어마한 고려대 도서관의 규모는 이고지고오기 무겁더라도 매일 최대 대출 권수인 5권을 채워서 들고 나르기 바쁘게 만들었다.

특히 한 작가에 꽂히면 전작을 다 보는 성향의 독서를 하는 나에게는 은희경, 요시다 슈이치 등의 전 권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 그 자체였다.


대학교에 오고나서부터는 소심함을 사회성이 조금은 잠식한 이후였으므로, 내가 읽은 것에 대해 짧게나마 리뷰를 온라인에 쓰기 시작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책 표지를 하나 내려받고 아래 주관적으로 별점을 먹이고 가장 베끼고 싶은 구절을 따라서 필사하고 그 아래 내 소회를 적었다.


읽는 책마다 이렇게 했더니 급속도로 그 수가 쌓여갔다.


이 시기에 시샘으로 모아 둔 문장들은 나를 더 좋은 곳으로 데려다주기도 했다.

나의 어휘와 견해로 설명하기 어려운 상황을 내가 읽었던 책의 내용을 빌리거나 인용해서 얘기하곤 했기 때문이다.


마치 나 대신 책들이 각종 면접을 봐준 것과 같기도 했다.

내가 책들을 잘 골랐을까. 양질의 책을 백그라운드로 했던 면접에서는 거의 탈락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나는 사회 초년생때부터 책에 엄청난 빚을 진 셈이다.

이 모든 노고를 다 따지면 책은 민망하리만치 너무도 저렴하다.


특히 좋은 환경의 대학 도서관을 다닌 덕에 그마저도 대부분 대여해서 봤으므로 나는 정말 공으로 수혜를 입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책을 쓰게 된 지금, 그 공덕을 되돌려야 하는 절호의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꽤나 사람에 관심 많은 오지라퍼 성향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 일이 나에게 큰 보람이자 쾌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이번 책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사람과 기획에 쫄아있는 과거와 현재의 나 같은 쫄보들에게 바치고 싶은 책이었다.

매번 짠듯이 사람들은 얼어있는 나에게

“편하게 해”라고 하지만, 도무지 편할 수가 없던 나로서는 이런 책이 꼭 있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예능 피디라고 해서 늘 밝고, 주도적인 성향을 가진 것은 아니다.

나처럼 더 많이 눈치 보고 나보다 더 눈치를 보는 누군가를 감지하는데 유독 안테나가 곤두서있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출판사는 무언가... 어떠한 것을 기획하는 이들에게 가장 도움이 되길 바랐던 것 같지만(...편집자님 죄송합니다ㅠㅠ) 나는 그보다

사람, 인간관계에 시달리며 퀭해져 있는 이들에게 솔직한 말들을 건네고 싶었을 뿐이다. 앞으로 내게 될 방향의 책들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


사실 두 번째 책이라 100% 긴장이 풀린 채 어깨를 털고 쓰진 못했다.

그러나 어설프니 나마 완성했다는 것에 나름의 의의를 두려고 한다.


이어령 선생도 하지 못한 한 가지가 다음과 같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말로만 쓰려는 자에게, 손으로 쓰게 만든 일이다.”


쓸 수 있음에 감사하며 또 읽고 또 쓰기로 했다.

나와 같은 소심한 이들에게 한 줄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9418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