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독서 권태기지 매주 최소 2권 이상은 책을 빌리고 읽는다.
영락없는 책 덕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유석 작가님 표현으로 '호르몬이 왕성하던 시절'의 그것과 달리
극성을 떨며 감동이 여간해선 잘 오지 않았다.
한 줄이라도 작가의 문장을 외우고 싶고 훔치고 싶어 안달 나던 그런 마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두 권 책을 내봤답시고, '이건 금방 썼겠는데?', '이런 책이 벌써 10쇄라고?' 하는 엄청나게 뜨겁지만 그만큼 부질없고 발전에 아무 도움 되지 않는 시샘이나 내고 앉아있었다.
책에 대한 순정을 잃을 느낌이랄까.
그때 눈앞에 다시 나타난 문유석 판사님.
판사 시절 출간한 책을 처음 읽고 팬이 되었기 때문에, 아직 판사라는 직함이 나에겐 익숙하다.
위트 있고 시원한 판사님의 글이 오랜만에 내 눈을 초롱초롱 빛나게 해 주셨다.
아래는 훔치고 싶은 필사구간.
*신임 법관 연수 때 강의를 맡게 되면 꼭 이 얘기를 했다.
앞으로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 대다수는 여러분에게 잘해줄 겁니다. 그건 여러분이 훌륭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유사시에 쓸모 있는 보험이기 때문입니다. 고깃집 사장이든 재벌 회장이든 대통령이든 본인 또는 일가친척 중 누구 하나라도 살면서 한 번쯤(때로는 여러 번) 법정에 서고 구속당할 처지에 놓일 위험이 있기에 판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러분보다 훨씬 고단수인 그들은 여러분의 심적부담까지 고려해서 '아무 조건 없이' '인간적으로' 친분을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심어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쉽게 그런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것은 순진해서라기보다, 그렇게 믿는 것이 여러분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 제작이란 100억이 넘는 돈이 투자되고 100명도 넘는 사람들의 노력이 들어가는 큰 비즈니스다. 그 많은 사람이 오로지 내가 쓰는 대본 하나를 보고 뛰어드는 것이다. 더구나 재미에는 정답이 없고 취향만 있다.
맞다.
재미에는 정답이 없고 취향만 있다.
그럼에도 매주 연출을 하며 하게 되는 수많은 판단과 잔소리들.
얼마나 지겹고 힘들까 하는 반성을 또 해본다.
*내가 만약 국문과나 연극영화과로 진학했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처럼 평생 온갖 이야기를 상상만 했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소설가로서도 극작가로서도 비범한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이야기꾼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적인 이유로 택한 법관의 삶이 작가의 길을 열어주었다.
최악이 최악이 아닐 수 있다는.
*관심은 양날의 검이다. '관심 경제'의 시대에 대중은 관심을 줌으로써 자신이 상대에게 대가를 지불했다고 생각한다.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아이돌 산업의 논리다. 대중이 관심을 줘서 뜬 이상 대중의 비위를 거스르면 안 된다. 일거수일투족이 관찰 대상이 된다. 말 한마디, 사진 한 장에도 불편한 구석이 없는지 검열하는 인터넷 자경단들이 늘어난다. 이 가혹한 테스트를 끝까지 견뎌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관심을 받아서 뜬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관심 때문에 몰락한다. 한 명 한 명씩 죽어나가는 <배틀로얄>이나 <헝거게임>을 보는 느낌이다. 사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군가를 화려하게 띄웠다가 비참하게 몰락시키는 일 아닐까. 그 과정에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지도.
= 내 생각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간이라 쾌감을 느꼈다. 물론 필력이나 통찰력은 훨씬 월등하시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