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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19. 2022

이태곤, 박미선, 장민호와 6개월 일한 썰

피디가 연예인을 입맛대로 고른다고?

(흔히들 생각하는) PD의 권한이자 특권 : 내 프로그램을 어떤 연예인과 할 것인가?


흔히 방송국 놈들을 부러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연예인을 자주 보는 것'일 것 같다. 실제로 가장 많이 듣는 질문도, "유느님은 진짜 착한가요?", "실제로 본 연예인 중에 누가 제일 예쁜가요 or 잘생겼나요?"이고 그다음으론  "싸인씨디 좀...티켓 좀.."이기도 하다. 


심지어 예능 피디가 되면 연예인을 밥먹듯이 보는 걸 넘어서, 내 입맛대로 연예인을 선택할 수 있다고? 듣기만 해도 너무 흥분되는 일이다. 일단 답변부터 말하면,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 이유까지 얘기하자면, 


1.직속 CP(일반 직장으로 생각하면 부장)가 이미 구상해놓은 섭외 라인업이 있을 수 있다.                    

 ->다행히 나의 경우 그런 건 없었다. 손지원 CP님 감사합니다. 


2.회사(KBS)차원에서 내가 원하는 연예인을 꺼려하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 나의 경우, 부정적인 의견이 있는 인물이 있었지만 내 선에서 설득 가능했다. 


3.가장 근본적인 이유=섭외가 안 된다.


ㅋㅋㅋ

섭외가 안 되는 이유는 그 연예인이 너무 비싸거나 일이 많거나, 더 나아가 "이 듣보 피디(=그게 바로 나예요)와 제가 왜 일해야 하죠?"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할 수도 있다.


이 모든 필요충분조건을 다 넘어서 내가 '선택'한 나의 첫 입봉 엠씨들은,

배우 이태곤, 가수 장민호, 개그우먼 박미선 님이었다. 그들과 매주 얼굴을 보며 꼬박 6개월여를 보냈다. 


마지막 녹화 날 대기실에서 MC들과, 스마일 뒤에는 든든한 우리 정인해 작가님이 계시다:)


#1.먼저 태몽부터 백호 꿈이라는 위풍당당 이태곤 MC


첫 만남은 압구정의 한 카페였다. 일단 처음 본 느낌은

헐, 이 사람 진-짜 크다.

아니 앉았는데도 큰데, 일어서면 진짜 목이 아플 정도로 컸다. (티라노사우르스세여?) 근데 목소리도 컸다. 과연 광개토대왕다웠다. 룸이 있는 카페였기에 망정이지 진짜 쩌렁쩌렁한 발성과 "음화화화핫"하고 웃는 호탕한 웃음소리 때문에 소심한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동시에 나중에 편집할 때 호탕하게 웃는 광개토 대왕씬을 마무리 짤로 꼭 활용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이 사람의 강한 이미지를 유하게 중화시켜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짜 자주 씀ㅋ


과연 광개토대왕답게 본론부터 얘기하기 시작했다."설마 이 <주접이 풍년>의 주접이 주접 싼다의 그 주접이냐"에 대해 먼저 물었고, 이게 KBS에서 가능한지 물었다. 그리고 이런(?) 제목으로 기획안을 쓴 피디 얼굴이 궁금해서 나왔다고 했다. 내 얼굴을 보여줬고, 결론적으로 자칭 관상 전문가로서 마음에 들어 하셨다. 아래는 증거자료.


ㅋㅋ후배들이 아직도 이 미다시(=기사제목)으로 가끔 놀림

#2. 여린 듯 최고 강한, 강자 박미선 MC


첫 만남은 KBS 신관 로비의 박이추 커피 미팅룸이었다. 한껏 청순한 자태로 오셔서 시나몬 가득 올린 카푸치노를 주문하셨다. 몇십 년을 방송인으로 살면서 잔뼈, 통뼈 죄다 굵은 사람일 텐데 처음 보는 입봉 피디한테도 

저는 무조건 피디님 시키는 대로 다해야죠. 호호호

라고 괜히 농을 칠 정도로 성숙+능숙하셨고, 저 농담은 녹화 중간에 내가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을 때 관객 앞에서도 해서 관객들을 빵 터트렸다. "네에~ 편은지 피디님 저는 피디님이 시키는 대로 하겠슴미당^^" 지금 생각해보면 한껏 긴장했을 초보 메인 피디의 기도 세워주고 녹화 분위기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고수 언니만의 센스였던 것 같다. 그 뒤로도 대기실에서 심상치 않은 내 눈빛만 보고도 "매니저 나가 있으라고 할까?"하고 커피를 건네주며 문 꽉 닫고 고민상담을 해주었다. 돈 주고도 못 사는 연륜. 그리고 언니가 나한테 제일 많이 해준 말, "뭘 그런 일로 울어. 울지 마."(실제로 언니 절친인 양희은 쌤한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라고 하심)



#3.굳이 착할 필요 없을 정도로 잘생겼는데 착해, 장민호 MC


사실 섭외 이전에 만난 적이 있는 유일한 MC였다. <불후의 명곡> 조연출 할 때였는데, 당시 출연한 미스터 트롯 6인 중에 장민호 편집을 맡겠다고 손들었었다. 지금 <편스토랑> 연출 중인 당시 메인이었던 이유민 선배도 "그래, 네가 왠지 좋아할 것 같았어."라고 하며 내 맘대로 하게 해 주었다. 


당시 이 사람을 눈 여겨보게 된 계기는 녹화 준비 중에 피아노 조율을 하느라 "띵-"하고 소리를 냈는데, 그다지 크지도 않은 소리에 진짜 귀신 본 듯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었다. 아니. 너무 멀쩡하게 생겨서 진짜 기겁하는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어서 이건 시사* 시간에 가져가도 빵 터지겠다 싶었다. (사실 불후 특성상 무대 전 백스테이지를 길게 가져가면 거의 백 프로의 확률로 통편+지적을 받는다.)

*여기서 깨알 방송 용어 사전 '시사'란?

방송 전에 1차 편집본을 PD, 작가가 모여서 보면서 '이건 빼라, 저건 빼라'하며 모니터링하는 것. 목적은 방송시간에 맞게 불필요한 장면을 잘라내 시간을 맞추고, 혹시 모를 위험 요소들(실언, 비방용 장면)을 걷어내는 것이다. 

선배도 실제로 첫 그림으로 백스테이지를 붙여온 거 보고, "잘 걸렸다. 편은지 오늘 한 번 혼내야지."라고 속으로 생각했다가 장민들짝(심지어 확대해서 두 번 붙임)을 보고 육성으로 크게 터짐과 동시에 "그래 너 인정."이라고 하셨다. 암튼 그때 내가 느낀 느낌은, 뭔가 '잘생긴 김종민' (물론 종민오빠도 잘 생겼지만!)이라고 느낄 정도로 순박하고 구멍 많은 사람이었고 그 구멍이 답답하거나 밉지 않을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섭외 때는 KBS 신관 로비 박이추 미팅 룸에서 만났는데, 내가 이상한 방을 예약해서 뭔가 '졸부의 응접실' 같은 곳ㅋㅋ에서 만났다. 일단 응접실 토크로 다 같이 웃으며 대화를 시작했고, 그때가 스케줄이 정말 많아 번아웃될 정도였음에도 '입봉작이 꼭 잘 됐으면 좋겠다. 잘 될 것 같다'라는 응원을 해주었고, 실제로 종영될 때도 아쉬워했지만 거기에 앞서 "입봉작 성공시킨 걸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축하를 먼저 건네준 그릇 큰 사람이다. 오늘 결혼식장에서도 만날 예정ㅋ 이따 봐유.


<주접이 풍년> 1회 송가인X어게인 방송분 캡쳐


나의 선택이라면 선택으로 각기 만난 인연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모습. 

내가 배 아파 낳은 사람들도 아닌데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선보이는 게 엄청 떨렸다. 애 돌잔치는 뭐 저리 가라임.


어떤가요? 좋아 보이나요?

잊지 못할 편은지 피디 인생 첫 번째 MC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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