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커버사진 참고) 나 2년 전에 영웅님 만났었네. 영광이었네.
"임영웅의 적은 임영웅이다!"
임영웅X영웅시대> 녹화 때 미선언니가 했던 말로 완전 깐 영웅이 더 멋진지 반만 깐 영웅이 더 멋진지에 관한 격렬한 논쟁의 결말이었다. 먼저 원활한 이해를 위해 용어 정리부터 하자면,
완깐웅 : 머리를 완전히 넘긴(깐) 임영웅
반깐웅 : 머리를 반만 넘긴(반깐) 임영웅
덮웅 : 머리를 다 내린 임영웅
영시: 영웅시대 팬카페의 줄임말
건행: 임영웅이 주로 하는 인사말로, "건강하고 행복하세요"의 앞글자를 딴 말이다.
영웅시대를 즐겁게 하기 위해 회의 끝에 야심 차게 준비한 즉석 앙케이트(이 단어 오랜만...)였으나, 녹화 반응은 정반대였다.
이유는, "아니, 대체 덮웅은 왜 없냐"고 덮웅파의 반발이 거셌다. (영시 여러분 덮웅까진 생각 못했어요ㅜㅜ잘못했어요...) 그것 외에도, "블랙웅은 왜 없냐?!" 등등의 예상 못한 소란이 일어나자 영웅님의 절친인 MC 민호님이 "덮웅 없으니까 두 개 중에 일단 고르시라, 사실 최고봉은 네추럴웅이다"라고 센스 있게 정리해줘서 넘어갈 수 있었다.
소위 '트로트 팬덤이라고 하면, 어머니처럼 조건 없는 사랑을 줄 뿐, 10대 팬들처럼 개인적 취향이 확고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헤어스타일부터 사복에 까지 관심이 정말 많다. 실제로 미팅 때, "우리 영웅이는 뭔가 까칠한 차도남상인데 목 올라오는 양말에 슬리퍼를 신는 걸 보면 그렇게 귀엽고 반전 일 수가 없다"고 취향 고백을 하고 가신 분도 있으시다. 미팅 온 어머님의 샤넬백에 내 주먹만 한 임영웅 키링이 달려있는 걸 보면 정말 호쾌하다 못해 힙하기까지 하다. (저도 젝키 뱃지 잔스포츠 가방에 많이 달아봤그등요...)
<주접이 풍년>을 6개월 여간 연출하며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아니, 방송국에서 일하는 냥반이 너무 모르네, 참말로."
다른 팬덤도 그렇지만 오늘은 영시 얘기만 하자면, 영시의 마음속은 정말 1초까지도 영웅님으로 들어차 있어서 영웅님에 대한 정보를 아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그래서 대화를 따라가려면 엄청난 공부가 필요하다. 언시(언론고시)따윈 저리 가라임.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시: "아니 그니까, 우리 영웅이가 오징어찌개를 좋아하잖아유?"
나: "네?...아 그러시구나..."
영시: "내일이 MMA 하는 날인데 지금 방탄이랑 엎치락 뒤치락 하잖아유."
나: "아...그러시구나222."
영시: (뭬야??!!!!) "오메, 방송국 피디가 그런 것도 모른대유?? 환장하겄네"
잘못해쯤미다...
그런데 내가 혼나도 싼 이유가 있다.(아래 영상 참고)
일단 이분들은 우리 부모님보다 윗세대시고, 스마트폰조차 처음에는 못 다루셨다고 한다. 근데 임영웅이라는 가수를 좋아하면서 스마트폰도 배우고, 앱도 깔아보고 심지어 본인이 했던 고생을 다른 팬은 하지 않게 해 주려고 <영웅이를 위한 참된 덕후교실(아래 영상 참고22)>을 무상으로 열어서 서로 배우고 알려준다. (실제로 홍대에 위치해있음. 제가 가봤음. 심지어 이 에피소드는 꽤 오랜 기간 무명의 더쿠나 다음 카페 인기글에 꽤 많이 등재되고 있음. 지금까지도!)
https://youtu.be/TdAhIVzXAx4
서울대를 나와 해외에서 은행 지점장을 하시고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부부의 임영웅 덕질. 피터분당님과 판나안교님이었다. (이렇게 서로 "누구 엄마"말고, 팬카페 이름을 서로 부르는 것도 너무 귀엽고 재밌죠?)
프로그램에 꼭 살리고 싶은 포인트기도 했다. 그래서 실제로 촬영할 때 팬카페 이름으로 명찰도 만들어드리고, 달아드리고 했다. 실제로 즐거워하셨다.
"우리 하연할멈님~ 우리 벼리님~"
이 분들이 <참된 덕후 교실>을 찾는 단 하나의 이유, "임영웅을 사랑하니까." 유일한 남자팬이었던 피터분당 님의 한 마디는 정말 진심이었다. 자식들을 엄하게 키워서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상상도 못 할 것 같아서 자식이 집에라도 온다고 하면 굿즈를 전부 치우기 바쁘다고 하셨는데, 우리 프로를 통해 '덕밍아웃'하시고 자유를 얻으셨단다.
우리 출연자 중 한 분이셨던, '벼리'님이 신관 7층 회의실에서 열변을 토하며 알려준 '3초의 기적'. 미스터트롯에서 영웅님이 불렀던 <바램>의 첫마디, "내 손엔~" 이거 하나면 혼절+입덕가능하다는 얘기인데, 더 말하면 입 아프고 우리 영시님들 화나시니 영상을 3초만이라도 보시길.
덧붙여, 벼리님이 이 3초를 들었을 때 정말 거실에서 엉엉 오열하셨다고 한다. 예전에 벼리님의 아들이 네, 다섯 살쯤 되었을 때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 그 후로 삶의 의욕을 잃은 채 누워서만 지내셨다고 한다. 그런데 임영웅 님의 노랫말을 듣는 순간,
고됐던 지난 삶을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정말 정신 차릴 틈도 없이 한참을 목놓아 우셨다고.
(방송 전, 미팅 때 이 말씀을 하시면서도 우셨다. 듣던 우리 작가들도 엉엉 울었다. )
https://youtu.be/HscWr4H4jZI
대학교 때 김동률 님을 좋아했었는데, 누군가 김동률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누군가의 팬이 기꺼이 되는 게 멋있어서." 라고 대답했었다.
누군가의 팬을 자처하고 눈을 빛내며 사랑을 얘기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 용기만 낸다면 적극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덕질'을 내 또래가 아닌, 자식까지 다 키워놓으시고 고생하신 우리 어머님, 아버님들이 하는 모습이 나에겐 가장 큰 울림이었다.
'영웅님 덕질하다 암이 나았다'고 말씀하신 수학의 정석님. 30년 먹던 우울증 약을 송가인 덕질하며 끊었다는 '서울 산토끼님' 등 셀 수 없이 많고, 그분들에 대한 못다 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내가 궁극적으로 <주접이 풍년>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게 투박할지라도 이런 이야기들이었기 때문이다.
방송 끝나고 몇달이 지나 소식을 전해온 임영웅 편 출연자 진이맘님의 댓글로 이 글을 마무리 하려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함께 한 집에 살며 덕질하고 시아버지가 반대하는 케이스였는데, 레전드 장면을 많이 남기셔서 개인적으로 지금까지도 내가 만들고 내가 재밌게 보는 클립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진이맘님, 하연할머님, 우리 아버님 그리고 촬영 갈 때 수줍어했던 우리 어린 조카분들까지.
나의 왼쪽에서 어여쁜 꽃분홍 옷을 입은 민호오빠가 나의 입봉 MC가 되고, 나의 오른쪽에서 건행 포즈를 알려주던 임영웅 님이 <주접이 풍년>이야기의 주제가 되어주었다. 이 때는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내가 <주접이 풍년>의 연출을 맡으며 함께 일할 줄 몰랐을 텐데. 그러니 존버하며 살아볼 일이다. (건행건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