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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Sep 28. 2022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_ 임세원 지음

출처 : TTimes


몇 년 전 뉴스 보도로 다들 들어봤을 테지만, 정신과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의해 안타깝게 돌아가신 임세원 교수님의 책이다. 사건이 일어나기 약 3년 전쯤 발행된 책이다.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느낀 건, 몇 달 전 새벽에 퇴근하면서 탔던 택시에서 라디오 방송을 듣고 나서였다. 패널들이 ‘우울증’에 관해 얘기하던 중 임세원 교수님 얘기가 나왔다. 대화 자체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내용이었다.





아빠 냄새로 꽉 찼던 택시


그냥 평범했던 새벽 택시. 그런데 이상하게 택시에 탈 때부터 ‘아빠 냄새’가 났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그냥' 아빠 냄새. 사실 그렇게 아빠와 살갑게 지내지 않아서 ‘아빠 냄새’란 걸 모르고 살았는데, 돌아가시기 직전에 아빠의 체취를 확 느꼈고 그게 내 뇌리에 박혀버렸다. 그걸 난데없이 택시에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아빠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깔끔한 사람이었다. 옷이 각 맞춰 접혀있지 않은 것도 싫어하고, 다 큰 아들이 면도라도 안 하면 잔소리를 하다못해 직접 해주시기도 하고 그랬다. 본인 스스로에게는 뭐 말할 것도 없었다. 10년 넘게 키우던 푸들을 매일 아빠가 씻기면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나이 들면 냄새가 나서 매일 씻겨줘야 한다’고 푸념하시면서도 꼭꼭 씻겨주는 건 아빠였다.


그런 아빠는 암 수술로 입원했을 때도 세면도구를 늘 1순위로 챙기고, 주렁주렁 링거를 달고 낑낑대면서도 청결 유지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의식이 없어지면서, 세수는커녕 수염도 깍지 못했다. 수염이 거뭇거뭇 난 아빠 얼굴이 낯설었다. 마지막으로 아빠를 보러 온 사람들은 다 같이 짜기라도 한 듯 ‘저 깔끔한 사람이 면도도 못해서 얼마나 답답할까’라면서 울거나 속상해했다.


흔히 사람이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 반농담으로 ‘죽을 때가 됐나, 왜 저러지?’라는 반응을 보인다. 그만큼 평소의 나 자신과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깔끔한 아빠가 그것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깔끔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속상하고 신경 쓰였을까 싶다.





이 책을 보면 정신과 전문의인 임세원 교수님도, 평소 원인모를 통증으로 인해 죽음을 고민할 만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힘겨웠던 사람이 수많은 심적 고통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해주는 일을 기꺼이 해 왔다는 자체로도 경이롭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오히려 늘 하던 일이기에, 환자들이 있는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본인에게 오히려 큰 위로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일상은 지겹더라도 그 자체로 선물인 것이다.


사실 차 안에서는 아빠 냄새(아마도 아빠 또래 기사님에게서 나는 체취였겠지만)가 가득해서 차오르는 눈물을 다스리느라, 별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택시에서 멍하니 있다가 집에 다 와서 내리려는데 기사님이 “잠깐만” 하시더니 바나나랑 과자를 한 움큼 쥐어주시며 


“이건 내가 주는 선물. 이거 진짜 맛있는 거야. 먹고 힘내요"라고 하셨다.


눈물이 안 날 수 없었다. (사실 우는 와중에도 직업병인지 ‘이거 몰카야 뭐야’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꼭 읽어봐야지 싶었는데 3개월이나 흘러버렸다. 


세원 교수님이 상상하는 남은 인생 최고의 순간은 사랑하는 두 아들이 낳은 자식들, 즉 손자들과의 산책이라고 한다. 나중에 꽃나무 아래서 손자들과 함께 거니는 모습만 상상해도 마음이 편해진다고 책에 적혀있다. 비록 이 생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그곳에서는 부디 편안하셨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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