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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23. 2022

[편피디 주접북#02] 껍데기만 보고 고른 우영우 원작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이긴다 02_조성우 변호사 지음


#1.만남


처음 만난 장소는 우리 회사의 자랑, 사내 도서관이었다. 수년간 책 덕질을 하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나만 꼽자면,


모든 것을 함축하면서 기억되기 되게(*라임주의) 쉬운 제목일 것.


그래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싶어>와 같은 제목은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에 부합하지 않았다. 실제로 제목을 떠올리려 할 때마다 정확히 떠오르지 않아서 가방을 5회는 뒤적인 것 같다.

"천 개의 슬픔...아니 기쁨이던가? 또 그 밑에 소제목이 뭐더라? 저자 이름은 뭐더라" 등등.


그리고 사실, 도서관에 쭉 꽂혀있는 책의 옆테를 보고 꺼내들 만한 제목이 전혀 아니었다. 왠지 뭔가 뾰족하지 않은 '기쁨, 슬픔, 삶의 태도'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평소라면 손이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표지가 충격적이었다.


대학교 영문학 교양 수업을 듣던 시절 단체로 제본을 맡겼을 때 나오는 딱 그 표지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디자인에 민감하지 않다. 사실 감각도 없다. 근데 흔히 볼 수 있는 요즘 책들과 뭔가 다르다는 감 정도는 왔다. 쉬운 이해를 위해 비교샷을 찾아왔다. (참고로, 두 저자 모두에게 아무런 감정이 없음을 밝힙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원작의 다른 책과의 표지 비교

같은 주제라면 주제를 담고 있는 두 책이지만 폰트부터 디자인까지 완전 다르다. 과장이 아니다. 대학시절 추억의 '고려인쇄, 현대문화사' 같은 곳에서 무뚝뚝한 아저씨가 제본해주던 그 표지 디자인이란 말이다. 심지어 만져보면 질감마저 비슷하다. 그래서 이 모든 걸 감행한(?) 서삼독이라는 출판사에까지 관심이 생기기에 이르러서 출간 도서들도 살펴보고, 덤으로 서삼독의 뜻도 확실히 알게 되었다.




#2.니가 먼저 본질이 중요하다면서요.

기획안을 쓰다 보면 제일 어려운 게 세련되게 꾸미는 일이다. 그래서 디자인이 뭐가 중요해, 내용이 중요하지라는 말을 달고 살았던 장본인이 바로 나다. 겸손이라 의심하시는 분들 아래 링크 참고.

(수치 주의) <주접이 풍년> 기획안 초안 공개 (brunch.co.kr)


결론적으로 본질이 껍데기를 뚫고 나왔다.

표지'만' 보고 논문 제본이 어쩌고 떠들던 나를 반성한다. 실제로 오늘 오후에 다녀온 대형서점 매대의 센터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한 저 타는 노을 같은 표지와 정직한 폰트, 제목. 그리고 서삼독이라는 출판사 이름까지. 전부 내눈으로 확인한 순간 뭔가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비주얼에서 살짝 밀리는 멤버에게 투표했는데 끝끝내 당당히 센터를 자리한 내 새끼(?)를 본 느낌이랄까. 내 책도 아닌데 그랬다. 

대형 서점 매대의 맨 앞 줄 센터를 차지한 모습(위풍당당)


#3.본질이 이긴 이유. 

필사와 약간의 첨언으로 대신하려 한다. 길어질까 봐 두렵지만, 남는 게 많을 귀한 문장들이다.(가성비 보장)

세상의 갑질로 인해 우리는 숱한 상처를 받으면 살아간다. 이를 피할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어떻게든 슬기롭게 극복해가는 수밖에 없다. 나는 그 한 가지 지혜로 황금비율을 찾으라고 말한다. 상대를 궁지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완승하는 그 순간은 기쁠지 모르나 그 뒤에 반감은 두고두고 남는 법이다.

'강약약강'을 주의하자는 얘기다. 내가 언제 '약'이 될지, '강'이 될지 모르니 말이다. 비슷한 필사 아래에 추가(합리적인 1+1 구성)

관계란 상대적이다. 어느 관계에서는 내가 우월한 입장이지만 다른 관계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순환의 심리를 깨닫지 못하고 약한 자에게 유독 가혹하게 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언젠가 더 강한 자가 나타나면 호되게 당할 가능성이 크다. 
   ‘응립여수 호행이병(鷹立如睡 虎行以病)’이라는 말이 있다.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라는 뜻이다. 강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언제나 조심하며 낮은 자세로 임하라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진정한 고수는 절대 약자 앞에서 허세나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약자에게 막대하는 것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방송국이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프로그램을 하다 보면 각종 직업군의 사람들이 한 장소에 다 모이기 때문이다. 피디, 작가, 카메라팀, 현장 진행팀, 경호팀, 소품팀부터 녹화날 만약 베지밀 협찬이 있다면 베지밀 음료를 들고와서 카메라에 잘보이게 제대로 놓여졌나 확인하는 직원까지 한 장소에서 일을 하게 된다. 

한 장소에 모였지만 각자의 목적은 다르다. 물론 이론상으로 한 목표는 '프로그램의 성공'이지만, 이건 방송국을 소재로한 청춘 드라마에나 있는 일이다. 현실적으로는 가령 진행팀의 경우 무대 바닥 걸레질을 제 타이밍에 잘해서 (나보다 어린) 조연출에게 구박받지 않기가 될 수도 있고, 막내 작가의 경우 연예인 스탠바이를 적절한 타이밍에 해서 중견 연예인에게 혹은 선배 작가 언니에게 "쟤(후배 연예인)보다 왜 나를 먼저 불렀냐"고 눈총 받지 않기 등.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타박을 받는 건 굉장히 모욕적인 일이기에 조심해야 한다. 선배들은 너는 모르지만 방송 환경이 엄청 좋아졌다고 한다. 요즘 애들 무서워서 예전처럼 막 할 수 도 없다고 한다. 쭉 그랬으면 좋겠다. 




한 번 창공을 날아본 사람은 진흙탕에 빠져서도 시선은 창공을 향한다는 말이 있다. 대협이 그랬다. 작은 일부터 성공시켜서 차근차근 재기의 발판을 다져가면 좋으련만, 100억 원이 안 되는 거래는 작다면서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처음 저 문장을 읽고는 긍정적으로 해석을 했다. 성공을 해 본 사람은 그만큼 안목이 높아진다는 식의 해석. 그런데 반대였다. 바뀐 현실을 인지 못하고 현실 부정하며 패배를 거듭하는 내용이었다. 

나 역시 온전히 내가 쓴 기획안으로 프로그램을 런칭 해봤기에 다음 순서도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흔치 않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이려 한다. 그게 설령 내 자존심이 상할지라도 말이다. 




궁핍한 사람의 계산은 치밀하고 정확하다. 정교한 톱니바퀴 같은 계획에서 아귀가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아주 난감해지는 위험이 있다. 

이 문장이 굉장히 슬프고도 공감됐다. 몸과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의 우발적인 변수만큼 개인에게 폭력적인 상황은 없다. 나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느꼈던 그 심장 조임이 떠올라서 읽는데 마음이 저려왔다. 이 얘기도 나중에 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이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누군가를 설득할 때는 세 가지 요소, 즉 로고스(Logos), 파토스(Pathos), 에토스(Ethos)가 필요하다고 했다.
  로고스는 말하는 사람의 논리적인 화법, 파토스는 듣는 사람의 심리상태, 에토스는 말하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을 의미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위 세 가지 설득 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은 ‘에토스’라고 말하면서 성공적인 설득은 다음과 같은 순환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우선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뒤(에토스),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한다(파토스). 그리고 행동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논리적 근거를 제공한다(로고스).

안다. 언뜻 보고도 스크롤 내리고 싶다는 걸. 그런데 엄청 써먹기 좋은 내용이다. 일단 전제 상황부터 설명하면,  아파트를 건설해야 하는데 꼿꼿한 아재 한 명이 조망권을 포기할 수 없다며 배 째라고 버티는 상황.


이미 물색없는 A대리가 가서 "아재요, 조망권은 어차피 법적으로 인정 안되니 걍 민원 취하하쇼"라고(대사 과장주의)해서 안 그래도 화나 있는 아저씨의 화만 더 돋우고 핵까인 상황이다. 이때 바람처럼 등장한 에이스 박 부장의 동선을 따라가 보자.

    

(여러분, 적으세요) **에이스 박 부장의 행동 3단계**


행동1.냅다 큰 절부터 함-> 예의 바른 자세로 호감을 사고(에토스)

다소 상투적일지라도 "저 역시 어른들께 큰 절부터 하라고 배웠습니다.' 또는 '저는 할머니 손에 자라서 어른들이 또래보다 훨씬 더 편하고 좋습니다."같은 류의 말을 어른들은 엄청 좋아한다. 당신이 존중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 부장은 큰절에 이 멘트까지 추가하여 본투비 동방예의지국 출신임을 가장 먼저 어필했다.


행동2. 박 부장이 아재의 상황을 알아보니 홀로 힘들게 키운 아들이 몇 년째 취업에 실패중이었다. 이에 박 부장은 따뜻한 위로와 함께 아들의 인턴십 자리를 제안했다. -> 상대의 가장 아픈 부분인 아들의 문제에 신경을 써주면서(파토스)


행동3.선 호감을 사고 아픔을 달래준 뒤에서야 "어르신 그런데 말입니다."하고 조망권이 법적으로는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결과는 당연히 성공. (로고스)


   

미국의 유명한 교육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듀이의 말처럼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때문에 화가 난 사람을 논리로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이보다는 오히려 상대방과 유대감을 가지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마음속에 있는 욕구를 잘 파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법 논리만을 앞세우는 것이 결코 능사가 아닌 것이다.           




“말하는 것은 지식의 영역이고, 듣는 것은 지혜의 영역이다.”
올리버 웬델 홈즈의 말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다.

오늘 아침 산행시간에 늘 그렇듯 남편이 내게 조언을 해주었는데, 본능적으로 듣기 싫었는지(ㅋㅋ) 딴짓을 했다. 그리고는 찔려서 이 책의 내용을 인용해 "내가 경청을 잘 못하는 거 보니 아직 내 지혜가 부족한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몸으로 거부하려던 남편의 조언은,


 너의 브런치의 글 길이가 길지 않느냐는 얘기였는데... (아놔, 혹시 제 미래까지 내다보세요?)



(맹세) 다음 화부터는 한층 더 간략하고 명료한 주접북으로 돌아오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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