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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은지 피디 Aug 31. 2022

[편피디 주접북#03] 이렇게까지 취약한 '인간'

김영하 작가 9년만의 장편소설 <작별인사> 리뷰

대학교 때 더운 날 길을 걷다가 인간은 왜 이렇게 취약할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때 되면 밥 넣어줘야 하고, 물 넣어줘야 하고, 몇 시간씩 잠까지 자줘야 한다. 정말 너무도 불완전하고 손 많이 가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김영하 작가도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을까. 취약하지만 고유한 인간에 대한 생각을 담은 <작별인사>라는 장편소설로 9년 만에 돌아왔다. 사실 열렬한 팬이라곤 할 수 없는데 김영하 작가 책은 웬만하면 읽으려고 해서(이게 팬인가..?) 이번에도 구매신청을 해서 봤다.


지금까지 내가 본 김영하 작가 책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소설류
『살인자의 기억법』, 『너의 목소리가 들려』, 『퀴즈쇼』, 『빛의 제국』, 『검은 꽃』, 『아랑은 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오빠가 돌아왔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 『호출』

-산문류
『여행의 이유』,『랄랄라 하우스』

 중에선 가장 처음 읽은 『엘리베이터에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가 가장 좋았고, 『퀴즈쇼』랑 『오빠가 돌아왔다』는 나로드물게 소리 나게 웃으면서 봤다.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꼭 좋았던 무언가를 향한 것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저 익숙한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마음일 수 있다.

-112p 탈출 중

끔찍했던 수용소를 떠나면서 주인공이 느꼈던 감정이다. 다신 오고 싶지 않은 곳임에도 자꾸 뒤돌아보는 자신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됐는데 그 이유를 깨달을 것이다. 아쉽고 그리워서가 아니라, 단지 그곳에서 들인 노력을 두고 떠나는 게 서운했고, 다시  낯선 환경에 놓이고 보니 익숙한 것이 더 나아 보였을 뿐이라는 것.


그리움의 대상이 꼭 긍정일 필요는 없으며 그리움의 이유 또한 아련하고 애틋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김영하 작가 특유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달마는 의식을 백업하지 않고 멀리 떠나려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또한 그는 오래전에 잠깐 알았던 누군가를 다시 만난다는 것의 효용에 의문을 품었다. 하지만 내가 하려는 이 미친 짓은 내가 얼마나 ‘인간적’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증거였기에 그는 내 행동의 결과를 보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나는 몸이 죽으면 의식도 함께 소멸할 수 있는 상태, 인간들이 오랜 세월 함께했던 그 취약함을 그대로 가진 채로 선이 앞에 나타나고 싶었다.      

-274p 마지막 인간 중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효용을 느끼는 것 자체가 '인간'만이 느끼는 고유성이다. 달마는 굳이 먼곳까지 '인간'을 만나러 가는 '인간다운' 주인공(휴머노이드)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인공은 정작 찌질하고 별 거 없더라도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행동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곰에 온 몸이 찢겨 피가 나도 리셋 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대로 서서히 최대한 '인간답게' 죽어간다. 본인도 그런 자신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지만 그렇게 한다. 인간이 대체 무엇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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