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상 사고

by 장 Tony

벨소리가 선잠을 깨운다. 그러면 우선 심호흡을 내쉬고, 눈을 조금 비비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전화벨이 서너 번 울릴 동안 잠시 나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는다. 네, 당직의입니다. “선생님, 여기 4병동인데요, 환자 한 분이 낙상하셨는데, 이마로 떨어지셨나 봐요. 피가 엄청 많이 나서, 빨리 와 보셔야 할 것 같아요.”


낙상 사고에, 혼비백산한 목소리의 간호사라. 느낌이 안 좋다. 바로 가겠노라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시간을 확인하니 새벽 1시 10분. 잠든 지 1시간이 채 안 되었는데 콜이라니. 몸이 찌뿌둥하다. 벗어놨던 가운과 마스크를 대충 챙겨서 당직실을 나선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도 눈을 최대한 감았다 뜨기를 반복한다. 최대한 빨리 잠에서 깨려는 노력이다. 머리가 돌아가게 아무런 생각이나 해 본다. 가령 새벽의 장점은, 탈 사람이 나밖에 없기에 엘리베이터가 빠르게 온다는 것이다. 참 대단하신 장점이네, 그거. 자신의 헛소리에 혀를 차면서 엘리베이터를 탄다.


잠이 좀 깨자, 현실적인 고민이 고개를 치켜든다. 이마로 낙상이라고 하면, 뇌진탕이나 뇌출혈 가능성도 있는 거 아닌가. 이 병원에 CT나 MRI 찍을 장비는 없는데. 빠르게 전원 보내야겠는걸. 게다가 지금 환자 피 많이 난다면서. 전원이고 자시고 수처(suture, 피부 봉합)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수처는 졸업한 이후에 연습한 적 없는데. 의대 시절 연습한 것도 다 모형에다 한 거였고. 아, 집 가고 싶다. 하필 또 새벽에 이런 일이 터지네.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천장을 쳐다보며 스트레칭을 한다. 들숨, 그리고 날숨. 생각이 많을 때는 일단 긴장부터 풀고 봐야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병동으로 향한다. 정신없어 보이는 간호사가 나를 병실로 안내한다. 불 꺼진 다른 병실들을 지나 유일하게 불이 켜진 병실로 들어가자 우선 바닥에 깔린 붉은 선혈이 나를 맞이한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 환자는 자기 침대와 다른 환자의 침대 사이에 깔린 피웅덩이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또 다른 간호사는 거즈로 환자의 상처를 누르고 있고, 간병사가 환자를 진정시키는 중이다. 다가가서 상처를 살펴본다. 환자의 앞머리에 대략 4~5cm 정도 되는 열상, 거기서 계속 피가 흐르고 있다. 주변 가구 배치를 봤을 때 침대에서 내려오다가 침대 옆에 놓인 서랍장에 머리를 찧어서 생긴 상처로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환자 정수리에 머리가 많이 빠진 상태라, 이따가 상처를 소독할 때 편하겠단 점일까.


어떻게 된 거예요? 혼잣말하듯이 묻자, 간호사가 먼저 답한다. “저희도 방금 알았는데, 간병사가 쿵하는 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알려 줬어요. 아마도 화장실 가려고 하시다가 넘어지신 것 같은데….” 뒤이어 간병사가 뭐라고 말하나, 겨우 몇 마디만 알아들을 수 있다.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건지, 아니면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건지. 간병사들이 거의 다 재외 동포 출신이라 말을 알아듣기가 쉽지 않다. 대충 들으니 자기가 계속 기저귀 갈아주는데 왜 혼자 화장실 가려다가 일을 키우냐는, 짜증이 섞인 말인 듯하다. 속으로 어느 정도 동의하며 환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이 환자는 후두암으로 수술했었기에 목에 구멍이 뚫려 있어서 말을 못 한다. 말하려고는 노력하나 희미한 공기 소리만 날 뿐, 그의 의지는 우리에게 닿지 않는다. 그의 두 눈이 어디에 초점을 뒀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허공 어딘가를 쳐다보며 그를 향해 팔을 휘젓고 있는 듯한데, 그게 간병사의 행동을 방해하고 있다. 일단 환자를 다시 침대에 올려놓기로 한다.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함께 환자를 들어서 침대로 올려놓는다.


아까보다 가까이서 상처를 보니, 생각보다 길고 깊게 찢어진 것 같다. 혈관까지 찢어진 듯, 피가 맥박에 맞춰 퐁, 퐁, 상처에서 솟아난다. 일단 간호사에겐 거즈로 환자 상처를 압박하라고 지시한 후, 보호자에게 연락한다. 잠에서 막 깬 듯 어물거리는 보호자에게 환자의 낙상, 특히 이마에 상처가 난 만큼 뇌진탕이나 뇌출혈에 대한 우려를 전한다. 그러나 보호자는 그냥 거기서 치료해달라 말한다. 요즘 응급실 가는 게 너무 어렵고 본인부담금도 많이 나온다며. 본인부담금에 대해선 잘 모르겠지만 응급실 가는 게 어려운 건 맞다. 지난주에도 폐렴으로 상태 안 좋아진 환자도 전원 보내려고 했었는데, 몇 군데였더라. 아마 20곳 이상에서 거절당했었지. 이 환자도 여기서 봐야 하는 건가.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보호자에게 다시금 환자의 상태와 추후 생길 수도 있는 신경학적 손상에 대해 경고하고 전화를 끊는다. 일단 봉합부터 해야겠네.


간호사가 봉합을 위한 준비물을 가지고 온다. 소독을 마친 작은 구멍이 뚫린 포, 리도카인(마취제), 주사기, 바늘과 실, 니들 홀더, 멸균 장갑 등등. 긴장감이 차오르지만, 손을 쥐었다 피었다 하면서 푼다. 너 수도 없이 연습했잖아, 인마. 그냥 조금 더 실감 나는 모형에다가 수처할 뿐이라고 생각해. 일단 장갑부터 무균적으로 착용하고…. 중간중간 환자에게 지금 뭘 하는 중인지 얘기도 한다. 환자분, 포 좀 덮을게요~, 마취할게요, 바늘 들어가요, 따끔~. 생각보다 손과 입이 잘 움직여서 신기하다. 문득 의사 국가고시 실기 준비할 때가 기억난다. 피부 모형에다 대고 환자분 어쩌고저쩌고 말하면서 연습할 때, 이게 다 무슨 짓거리인가 싶었는데. 막상 실전이 닥치자 지난 경험들이 도움이 되는 게 당연하지만서도 놀랍다.


마취도 다 끝났고, 이제 꿰매기만 하면 된다. 출혈량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상처 틈새로 피가 퐁, 퐁, 솟는다. 봉합하지 않으면 계속 피가 날 기세다. 떨리는 손을 최대한 붙들면서 상처 옆에 바늘을 댄다. 잠깐의 정지 후, 바늘이 피부를 뚫는다. 실제 사람 피부는 모형보다 탄력이 있고 바늘이 지나가는데 저항감이 든다. 이게 결합조직의 감촉이구나, 6년 전 해부학 실습의 감각이 어렴풋이 스쳐 지나가는 것도 같다. 한 땀 꿰매고 나서 매듭을 묶는다. 정방향, 정방향, 그리고 역방향. 매듭에 적당한 장력이 걸려있는지 확인한다. 한 땀 꿰매고 나니 피가 조금은 멈췄지만 여전히 조금씩 스며 나오는 듯한 출혈이 있다. 다시 한 땀 더…. 바늘을 다시금 상처의 오른쪽에 대고 바늘로 피부를 뚫는데,


움,

찔!


환자가 크게 움직인다. 환자분 움직이지 마세요! 나도 모르게 높은 톤의 목소리로 경고를 날린다. 마취가 제대로 안 되었나, 어쩔 수 없다. 빠르게 마무리 지어야 한다. 다행히 환자가 다시 움직이진 않는다. 두 땀 잘 꿰매고 나니 피도 거의 안 난다. 늦은 밤의 소동이 얼추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피를 닦고 상처에 드레싱을 한다. 포를 제거하자 환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는 여전히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지만 목에 뚫린 구멍에서는 희미한 바람 소리만 난다. 그에게 묻는다. 환자분, 말하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뒤에서 간병사가 중얼거린다. 또 화장실 가고 싶다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이 상황에서 그러려고. 근데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약간은 기 빨리는 느낌이 든다. 애초에 이 상황도 화장실 가려다 생긴 거였지. 환자는 입 모양과 손짓으로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자 표정이 일그러진다. 아마도 답답하다는 의미리라 지레짐작한다. 침대 옆에 놓인 환자의 개인 물품을 보자 미니 화이트보드와 마커가 보인다. 그걸 환자에게 건네자, 무언가 천천히 쓰기 시작한다. 과연 그는 무엇을 전하고 싶어서 저럴까. 가만히 서서 조용한 분투를 바라본다. 그가 완성한 문장은,


시 워 해 요

고 생 해 습 니 다


고생하셨습니다, 말하는 간호사를 뒤로한 채 당직실로 향한다. 흰 가운을 옷걸이에 걸고 세면대에서 손을 씻는다. 물기를 털고 컴퓨터 앞에 앉아 차트를 연다. 머리를 부딪힌 환자라서 불안하긴 하지만, 지금 당장 응급이라고 판단할 만한 소견은 보이지 않으며, 보호자도 원치 않으니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다 주치의에게 인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간단한 지시 오더만 내리고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창문을 바라본다. 피로에 찌든 추레한 모습의 내가 비친다.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한동안 환자가 썼던 문장이 머릿속에서 맴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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