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덜 깬 아침, 전화가 울린다. 졸린 기색을 헛기침으로 다듬은 후 전화를 받는다. 네, 당직의입니다.
“선생님, 여기 2병동인데요. 한 환자분이 아침에 보니까 몸 오른쪽에 마비가 오신 것 같아요. 빨리 와주세요!”
잠이 확 깨는 전화다. 바로 내려가겠다 대답하고 전화를 끊는다. 전자 의무기록지를 켜서 환자 차트를 훑은 후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다. 엘리베이터도 늦을 것 같아서 얼른 2층으로 뛰어 내려간다.
편측 마비. 의사라면 가장 먼저 뇌졸중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뇌출혈이든 뇌경색이든, 뇌의 혈류 이상으로 뇌 손상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 빠르게 감별 진단을 한 후, 뇌경색이라면 골든타임 4.5시간 이내에 혈전 용해제(tPA)를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환자를 최대한 빨리 상급병원으로 이송하여 뇌 영상을 촬영하고 필요한 처치를 시행하는 게 중요하다. 문제는 환자의 증상이 아침에 발견되었다는 점. 자는 도중에 뇌졸중이 발생했다면 일어나서야 증상을 인지할 수 있기에, 정확히 언제 발병했는지를 파악하기 힘들어 최선의 치료가 어려워진다. 복잡해지는 생각을 다잡고 병동 안으로 들어간다.
환자는 70대 초반의 통통한 체형의 남성이다. 반백의 머리칼, 수염은 제대로 면도가 되지 않은 채.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쳐다보며 이불을 덮고 누워있다. 환자분, 제 말 들리세요? 재차 묻자 천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조금 더 말을 걸면서 환자를 파악한다. 의식이 이미 조금 떨어진 것 같으나 간단한 응답은 할 수 있는 것 같다. 한쪽씩 팔에 힘을 주고 버티라고 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환자는 왼팔에 조금 힘을 주면서 버티지만, 오른팔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다리도 마찬가지. 표정을 바꿔보라든가 말을 해보라는 지시에는 응답하지 않으나, 아까 반응만으로 오른쪽 반신에 편측 마비가 왔음을 알 수 있다. 뇌졸중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 다만 뇌졸중이 아닐 가능성 한 가지. 이 환자는 대장암이 뇌까지 전이된 케이스기에, 지금 상황은 뇌로 전이된 암종에 의한 증상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간에, 자그마한 요양병원에서 돌볼 수 없는 환자임은 분명하다.
보호자에게 연락한다. 전화기 너머로 목소리가 들린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는 다급한 어조로 환자 상태를 빠르게 말한다. 환자분 지금 편측 마비가 오셨는데, 뇌졸중이 강하게 의심되는 상황이라고. 최대한 빨리 신경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옮기셔야 한다고. 말하면서 나는 아마도 보호자의 다급한 반응을 예상했던 것 같다. ‘어머, 뇌졸중이요? 어떻게 해, 빨리 전원 보내주세요’ 같은, 뇌졸중이라는 단어에 충격을 받은 전형적인 반응 같은 것. 그러나 보호자의 반응은 내 예상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아버지, 뇌졸중이라고요.”
40대 남성으로 추정되는 목소리를 지닌 보호자는 담담하게 답한다. 그는 푹 한숨을 내쉬곤 말을 잇는다.
“당직 의사 선생님이라고 하셨죠. 혹시 저희 아버지 어떤 병으로 거기 계시는지 아시죠? 아버지 암이 뇌 전이가 되어서 암 말기 판정을 받으신 게 3년 전이에요. 이 상황에서 전원 가셔서 적극적인 치료를 받으신다 한들,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을까요? 지금 어떻게든 응급실로 밀고 들어가서 치료를 받으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요. 전 그냥 아버지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편안한 임종 맞이하셨으면 해요.”
담담한 말투에 당황하며 다시금 질문한다. 그러니까, 전원은 원치 않으신단 말씀이죠? 보호자의 태도는 여전히 확고하다. 그의 태도가 이렇게 견고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체념이 있었을까. 당황스럽지만 할 일은 해야 한다. 치료를 받지 않을 시 생길 수 있는 환자의 신경학적 손상에 대해 경고하고 보호자가 이를 숙지했는지 다시금 확인한다. 그는 여전히 태도 변화가 없다. 전화를 끊고 잠깐 침묵하는 동안 간호사가 옆에서 묻는다.
“보호자가 뭐라고 하셔요?”
“보호자는 여기서 임종 원하신다고 하시네요. 전원도 원치 않으신다고...”
“별일이네요. 뇌졸중이라 하면 그래도 다들 전원 가시던데.”
잠깐 골똘히 생각하던 간호사는 말을 잇는다. “뭐, 보호자가 저렇게 말하면 별일 없겠죠.”
그 말대로, 아마도 괜찮을 것이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는 의료진으로서, 환자를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마친 보호자가 제일 다행스러운 고객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환자의 임종을 바라며 DNR(연명치료포기) 동의서까지 작성한 보호자가 많을수록 의료진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므로. 요양병원까지 도달한, 여명이 얼마 안 남은 환자임에도 보호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는 경우에는 신경 써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찌 보면 다행인 셈이다. 보호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원치 않는 상황이며, 나는 보호자에게 경고도 했고 의무기록지에 동일한 내용을 기록으로도 남겼다. 이제 이대로 몸을 돌려 병동 밖으로 나가면, 더 이상 나는 이 환자와 관련해 무언갈 책임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구의 잘못도, 책임도 아닌 그저 불운한 사태의 발생. 그걸로 아침의 소동은 끝나는 것이며,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괜찮은 것일까.
나는 병실로 다시 들어와 환자의 얼굴을 바라본다. 환자는 초점 없이 허공을 보던 중 내가 들어오니 고개를 조금 틀어 나를 응시한다. 환자의 이름을 불러보았으나 그는 대답 없이 그저 나를 쳐다볼 뿐이다. 이 환자는 거동이 어려운 말기 암 환자이지만 그래도 스스로 밥을 떠먹을 수 있는 정도로는 움직일 수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나 갑작스레 찾아온 편측 마비에 적극적으로 조치하지 않기로 한 이상, 이제 이 환자는 더는 그런 생활을 영위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 앞으로는 높은 확률로 콧줄을 끼고 액체 형태의 식사를 위장으로 밀어 넣게 되리라. 스스로 하던 많은 일들을 더는 혼자서 하지 못하리라.
그나마 환자의 지남력이 온전치 못해, 그 어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한다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어려운 이야기다. 병마에 침식되어 본래의 인지 능력을 잃어버린 걸 다행으로 여길 수 있을까. 자신에게 벌어진 일에 대해 어떠한 의사 결정도 하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있기만 한 채, 상황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걸 좋게 생각할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온전한 의식을 지닌 채 거동 불능의 상태로 요양병원의 한 병상에서 누워있는 것보단 나은 게 아닐지. 물론 그 상황에 직접 닥치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일이나, 이런 환자들을 계속 보다 보면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 누구에게나 공평히 찾아오는 죽음이라지만, 그 과정이 이렇게까지 지난할 필요가 있는가. 적어도 인간으로서 자신의 마지막을 정할 수는 있어야 하지 않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존엄사에 관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존엄사가 허용될 경우, 경제적 사정에 따라 개인의 선택이 아닌 노인에 대한 강요가 될 수도 있기에 다양한 의견을 다루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요양병원에서 만나는 일부 환자들을 보다 보면, 존엄사가 진지하게 논의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매번 든다. 환자의 얼굴을 쳐다본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길을 잃은 듯하다.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주고는 병실을 나온다. 복도를 걸으며 생각한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과 인간으로서 느끼는 것들 사이에서, 오늘 나는 어디쯤 서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