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지금 환자분 숨이 멎으신 것 같은데 DNR 되어 있지 않은 분입니다!”
간호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일단 흉부 압박과 에피네프린(승압제) 투여부터 시작하라고 지시한 뒤, 층수를 묻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당직실을 뛰쳐나와 병동으로 향했다. 중환자 병동은 3층이라 계단이 빠를 듯했다. 층계를 올라가며 심폐소생술 지침을 복기했다.
일단 가슴 압박부터 시작하고, 전기 충격이 가능한 리듬인지 확인하기였지? VF(심실세동)거나 pulseless VT(무맥성 심실빈맥)이면 전기 충격이었어. 하지만 PEA(무맥성 전기활동)이거나 Asystole(무수축)이면, 전기 충격이 가능한 심장 리듬이 돌아올 때까지 가슴 압박 그리고 3분마다 에피네프린…. 괜찮아, 모형에다 많이 해봤잖아. 국가고시 실기 준비할 때처럼만 하면 돼. 할 수 있다. 할 수 있어. 스스로 다짐을 되뇌니 어느새 3층에 도착했다.
병동으로 들어서자, 장비를 챙기느라 분주해 보이는 간호사가 따라오라고 말했다. 반쯤 뛰는 발걸음으로 서둘러 병실에 들어섰다. 밤이었지만 병실 불은 켜져 있었고, 간호조무사가 이미 가슴 압박을 시행하고 있었다.
“AED(자동제세동기)는요?”
“가져왔습니다, 선생님.” 옆에 AED가 놓인 카트를 끌며 간호사가 말했다.
가슴 압박을 멈추게 하고 환자의 맥을 짚었다. 맥이 잡히질 않았다. AED를 부착해 환자의 심장 리듬을 파악했다. 어떤 전기 신호도 보이지 않았다. 무수축. 전기 충격을 할 수 없는 리듬이다. 다시 가슴 압박의 시간이다. 내가 올라오기 전에 다른 의료진들이 가슴 압박을 하고 있었으므로, 이번 가슴 압박은 내 차례였다. 환자의 침대에 올라서는 사이 간호사가 옆에서 에피네프린을 정맥 라인에 주사했다.
환자복 앞섬이 헤쳐진 가슴을 바라봤다. 압박을 가해야 하는 부분은 흉골 하부 중앙, 두 젖꼭지를 이은 선의 중앙 부분. 살이 많은 손바닥의 아랫부분을 흉골 하부에 밀착시켜야 힘을 잘 전달할 수 있다. 환자의 침대에 한 쪽 무릎을 대고 올라가 체중을 안정적으로 실을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왼손을 아래, 오른손을 위로 해 겹치고, 체중이 잘 전달되도록 팔을 편 후 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까먹지 않도록 입 밖으로 숫자를 셌다. 분당 100회 정도의 빠르기로, 깊게 압박했다. 몸통 두께의 1/3 정도는 들어가야 기능하지 않는 심장의 역할을 조금이나마 대체할 수 있다.
지식이야 진작 알고 있었지만, 누워있는 환자에게 실제로 하는 것은 아예 다른 느낌이었다. 모형에 하는 것보다 힘들었고, 긴장해서인지 금세 땀이 나기 시작했다. 문득, 심폐소생술을 직접 하면 어떤 느낌이냐고 동기에게 물어봤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경험해 보면 알 거라는 동기의 미묘한 표정. 그땐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어쩐지 이젠 알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가슴을 압박하던 중 어떤 파열음이 들려왔다. 뚝? 뿌득? 으지직? 어떤 의성어로 표현해야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 소리는 환자의 가슴과 맞닿은 내 손바닥을 타고 들어와서 팔을 지나 내 귀까지 들어왔다. 손끝으로 환자의 부러진 흉골이 만져졌다.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흉골이 부러질 수 있다는 것은 이론으론 알고 있었다. 골다공증이 흔한 고령 환자들은 뼈가 부러지기 쉽다는 것도, 그리고 뼈가 부러졌더라도 계속 압박을 이어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것도. 그러나 압박할 때마다 부러진 뼈의 파편이 환자 피부 아래에서 내 손바닥을 찌르는 듯한 감각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뚝, 드득 하는 파열음이 이어졌다. 아마 갈비뼈도 같이 부러지는 중인 듯했다. 정신이 혼미했다. 지금 숫자를 제대로 세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간호조무사가 이제 자신이 압박하겠다며 자리를 바꿀 때까지, 현실 감각이 도무지 없었다. 나와 교대한 간호조무사가 손을 대자마자 으… 하고 탄식했다. 그녀도 부러진 뼈를 느낀 것이리라.
하지만 할 일은 계속되어야 했다. 정해진 시간이 지났으니, 에피네프린을 투여하라고 간호사에게 지시했다. 흉부 압박이 지속되는 사이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환자의 심장이 멈췄고,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으며, 최대한 빨리 오셔야 한다고 말하고 끊었다. 보호자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흉부 압박을 멈춘 후 다시 심장 리듬을 확인했지만,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채였다. 다시 내 차례다. 아까와 동일한 자세로 압박을 재개했다. 아까보다 흉골이 더 잘게 부서진 게 손바닥으로 느껴졌다. 뼛조각이 연부조직에 덮인 우툴두툴한 감촉이 뇌리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흉골이 부서진 환자는, 설령 심장 리듬이 돌아와 소생한다 한들 괜찮을까? 심폐소생술 이후에 동반될 수 있는 여러 합병증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이 환자는 이미 요양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희미한 채 누워있던 사람이다. 어쩌면 이 환자는 소생하면 더 큰 고통을 마주할 수도 있… 아니, 지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흔들리는 정신을 붙잡았다. 이후에 합병증은 나중의 문제고, 지금 닥친 문제를 우선해야 했다. 무의식중에 들었던 불경한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나는 더 CPR에 몰두했다.
하지만 심폐소생술 시간이 5분, 10분을 넘어 20분이 다 되어가자, 그 방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지치기 시작했다. 여전히 심장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고, 이제 환자의 흉골 부위에서 느껴지는 뼈의 저항감은 거의 없었다. 의무감으로 심폐소생술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 환자는 소생하기 힘들 것이라는 걸 난 진작에 깨달았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도 땀으로 젖은 채 지친 기색이 역력했으며, 슬쩍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아마도 소생이 어려울 것 같다는 의사의 판단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판단해야만 이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을 테니. 그 순간 나는 졸업 후 처음으로 의사 면허의 책임감을 실감했다. 실제 이 환자의 소생 가능성이 얼마나 되든, 나의 결정에 따라 이 사람은 살 수도 있는 가능성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죽음으로 향하게 된다. 그 무게를 피하고 싶었던 걸까. 나는 책임을 타인에게 미뤘다.
“보호자들 올 때까지만 해봐요.”
5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병실로 새로운 사람이 등장했다. 방문자용 비닐 가운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나타난 보호자, 환자의 딸이었다. 그녀는 환자의 모습을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리더니, 의료진에게 요청했다. 차마 DNR 동의는 할 수 없었는데, 그 결과가 이런 모습일 줄 몰랐다고. 이렇게 가시는 길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으니 제발 그만해 달라고, 편하게 가시게 해달라고. 간호조무사는 기다렸다는 듯 환자의 가슴으로부터 손을 뗐다. 그 모습에 나는 불편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만약 보호자가 도착할 때 내가 압박할 차례였다면, 나는 저러지 않을 수 있었을까? 착잡함을 느끼며 말했다.
“환자분 x월 x일, 02시 43분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날 이후로 2년이 넘었지만, 난 가끔 그날이 떠오른다. 의사 면허의 책임감을 깊이 통감한 날이자, 나의 비겁함을 엿본 날. 손바닥을 찔러오는 흉골 파편의 뾰족함과 파열음 같은 것들은 이제 흐릿한 감각으로만 남았지만, 그날 느꼈던 것들은 좀처럼 잊히지 않는다. 환자의 부러진 뼛조각이 기억 어딘가에 억세게 박힌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