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망선고와 지금

by 장 Tony

가끔 나는 첫 사망선고를 내렸던 날을 되새기곤 한다.




새벽 3시 10분, 전화가 선잠을 깨운 어느 날.


"선생님, 환자분 심박수가 떨어지고 있어요. 혈압도 많이 내려갔고요."


잠이 확 달아났다. 의무기록지를 빠르게 확인했다. 80대 남성, 말기 암 환자, DNR 동의 완료, 다시 말해 연명의료결정법상 심폐소생술이나 승압제 사용을 할 수 없는 환자. 이분 돌아가실 듯한데. 나 사망선고 해본 적은 없지만, 잘할 수 있겠지.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바로 병동으로 올라갔다. 환자의 상태는 예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호흡이 매우 얕아졌고, 맥박도 희미하게 만져질 정도였다. 혈압은 측정되지 않았다. 간호사가 옆에서 말했다. "아까보다 더 안 좋아지신 것 같아요."


환자의 얼굴을 봤다. 임종이 가까워진 듯한, 거무죽죽한 낯빛의 얼굴. 당직 프로토콜을 떠올렸다. 일단 보호자에게 연락해야 했다. 몇 번의 신호음 후 목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깬 듯 어색한 음성이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요양병원 야간당직의입니다. 환자분이 현재 위독한 상태여서 연락드렸어요.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10분이면 갈 수 있어요."


전화를 끊고 환자 옆에 서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다. DNR 환자에게 적극적인 처치는 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 거라곤 당직실로 돌아가서 보호자가 올 때까지 기다리거나, 환자의 옆에서 보호자를 기다리며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는 것뿐. 간호사는 옆에서 말없이 환자의 활력징후를 확인했고, 조용한 병실에서 무기질적인 경보음만 공간을 채웠다.


보호자는 말한 것처럼 10분 만에 도착했다. 40대 후반 정도의 남성으로, 서둘러 온 듯 숨이 약간 찬 상태였다. 아들이었다. 병실로 안내하며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환자분 상태가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심장이 거의 멈추셨습니다."

"그러면…."

"언제든 임종하실 수 있는 상황입니다."


보호자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환자의 손을 잡고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지만, 환자는 이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미 환자의 심전도 그래프가 직선이 되었다. 심장이 더는 뛰지 않는단 뜻. 잠깐 보호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환자의 코에 손을 갖다 대었다. 호흡이 느껴지지 않았다. 목의 경동맥과 손목의 요골동맥을 촉지했다. 맥박도 더 이상 만져지지 않았다. 눈에 불빛을 비춰봐도 동공반사는 보이지 않았다.


"환자분 03시 40분에 돌아가셨습니다."


보호자가 환자의 손을 잡고 소리 없이 우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목이 메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수능을 일주일 앞둔 상황이었다. 당연히 임종은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에만 참석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났어도,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행렬의 앞에서 걸었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할아버지께선 언제고 뒷짐을 지신 채 오른손에서 호두 두 알을 굴리고 계시다가, 날 보고 반갑게 웃어주실 줄만 알았었는데.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유예된 슬픔이 보호자의 뒷모습을 보고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의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 걸까. 의대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다. 끝까지 전문적인 태도를 유지해야 할까, 인간적인 감정을 드러내도 되는 걸까. 나는 등을 돌리고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시간이 지나 어느 정도 진정된 보호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연락을 드렸던 시점에서 이미 환자분 상태가 위중하셨고, 도착하시기 직전에 심정지가 오셨어요."

"그랬군요. 요양병원에 모실 때부터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갑작스레 가실 줄은 몰랐어요. 마지막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남 일 같지 않더라고요. 주무시다 편히 가셨을 겁니다.”


이후 장례식 절차를 알려줄 원무과 직원에게 보호자를 안내했다. 당직실로 돌아오는 길에 보호자의 말이 계속 맴돌았다. '갑작스레 가실 줄 몰랐다'는 말. 보호자는 말기 암 환자인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모셔놓고도 갑자기 돌아가실 거란 생각을 하지는 못했던 걸까?


하긴, 죽음은 누구에게든 갑작스럽다. 이론적으로는 말기 환자의 임종을 예상할 수 있지만, 정작 마지막이 닥쳐온 순간엔 누구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호자도 그랬고, 어쩌면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어도 인간의 생로병사, 특히 죽음 앞에서는 당혹스럽고 무력했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1년도 채 안 되어 같은 반이었던 고등학교 친구의 오토바이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영정사진을 보면서도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사람이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못 했었다. 물론 뉴스에서 가끔 젊은 사람들의 안타까운 죽음을 전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통계이자 뉴스에 불과하니깐. 그런 일이 내 주변에 일어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건 그런 것이다. 절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언제 불시에 찾아올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나만큼은 그 예외가 될 거란 믿음, 어떻게든 되겠지 싶은 막연한 긍정적인 태도로 죽음을 대한다. 어쩌면 그건 너무나도 확실히 보이는 내 끝을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 하는 몸부림 같은 게 아닐지.





전화 한 통이 회상에 잠긴 나를 깨운다.


“선생님, 한 DNR 환자분 바이탈이 흔들려서요.”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 생각한다. 예전이었다면 엘리베이터 안에서 긴장으로 몸이 굳은 채였을 것이다. 이번 환자는 어떤 상태일까, 무슨 상황을 마주칠까,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요즘은 딱히 그런 생각이 들진 않는다. 어차피 DNR 환자라면 상태가 안 좋아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보호자가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길 바랄 뿐.


병실에 도착해 환자를 보는데, 이미 숨을 쉬지 않는다. 동맥을 짚어도 맥이 뛰지 않는다. 동공반사까지 기계적으로 확인한다. 아무런 미동도 없다. 환자의 피부와 맞닿는 손끝에 아직은 따뜻함이 돌지만, 곧 서늘함이 느껴질 것이다. 올라오는 사이에 돌아가신 걸까. 어쩌면 이미 돌아가신 상태에서 간호사가 늦게 확인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랜 기간 혈액투석하시는 환자분들 중에는 급사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 이분도 아마 그런 경우 아닐지.


보호자에게 전화를 건다. 컬러링은 예전에 유행하던 90년대 가요. 환자의 나이와 컬러링으로 볼 때 보호자의 나이는 아마 50대일 듯하다. 잠시 기다리니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계적인 자기소개와 환자의 상태 설명, 병원으로 내원하라는 안내를 익숙하게 말한다. 당황하는 듯, 혹은 슬퍼하는 듯한 보호자의 목소리에 떨림이 느껴지지만, 그런 걸 들어도 더 이상 마음에 파란이 일지 않는다.


당직실로 내려가 보호자를 기다린다. 또 한 번의 사망선고를 경험하게 되겠지만, 예전처럼 무섭다거나 부담스럽진 않다. 그저 기계적으로 정해진 행동과 말들을 하고 나오면 되는 일이다. 환자의 마지막을 보내며 울거나 공감하는, 그런 감정적 반응들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할 뿐이다. 처음 사망선고한 날과 분명하게 달라진 나를 느끼지만, 이게 적응의 결과라고 생각하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사망한 환자의 사망진단서를 쓰기 위해 미리 양식을 불러온다.


하지만 이럴 때마다 나를 덜컥, 하고 멈추는 질문이 있다. 나는 어디쯤 서서, 어디로 가는 중일까? 지금의 변화가 요양병원의 야간당직의로서 일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그저 마모되고 있는 건지. 과정 중에 있는 나는 그 둘을 좀처럼 분간할 수 없다. 사망진단서 양식에 놓여있는 커서가 깜박거린다. 그 점등을 망연히 바라본다. 좀처럼 집중하기 힘든 밤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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