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 삼 형제

by 장 Tony

1년 반 정도 여러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 어떤 일에는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고, 어떤 날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여러 환자가 맞이하는 생의 마지막을 옆에서 지켜보며 생각이 많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떤 경험으로부터 가장 많이 배웠느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각각의 경험으로부터 다른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충격적인 경험이 뭐였냐고 하면 난 바로 한 가지를 꼽을 수 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근무복만 입은 채 병원 앞 편의점에 들르기가 점차 춥게 느껴질 때였으니 말이다. 그날도 중환자실에서 환자 한 분이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의무기록지를 확인했다. DNR 동의 완료된, 월수금으로 혈액 투석하는 말기 신장병 환자였다. 특이 사항이라면 며칠 전부터 폐렴 증상이 있어 항생제가 들어가고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폐렴 증상과 피검사 결과 모두 호전되어 항생제를 끊었다고 적혀있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투석하는 환자들은 괜찮은 듯하다가도 갑자기 급사하는 경우가 있다. 아마 이분도 그런 경우가 아닐는지. 중환자 병동으로 올라가서 환자의 상태를 보았으나 간호사의 말대로 호흡과 맥박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죽음의 기색이 완연한 낯빛. 언제 돌아가실지 확실하게 말할 순 없으나, 얼마 버티시지 못할 것이란 건 명백했다.


의무기록지에서 보호자의 연락처를 찾았다. 보호자로 환자의 아들 세 명의 연락처가 적혀있었는데, 주보호자는 삼남, 막내아들이었다. 통화 연결음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남이 전화를 받았다. 지금 요양병원인데, 환자분 위독하시다고, 얼른 병원으로 오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삼남은 당황한 듯 말을 더듬다가, 형들에게 연락 돌리고 얼른 가겠다고, 30분이면 간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모니터를 보며 환자의 상태를 확인했다. 점차 환자의 호흡도, 심장박동도 느려졌다. 심전도 그래프가 점점 직선으로 수렴했다. 간헐적이고 발작적인 박동만 몇 번, 그러다 어느 순간 박동이 멈췄다. 코에 손을 대보았으나 숨이 느껴지지 않았다. 삼남에게 연락한 지 5분이 채 안 된 시점이었다.


약 15분 뒤에 도착한 삼남은 비닐 가운을 걸치고 마스크를 착용한 채 병동에 올라왔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고, 왠지 유약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병실로 들어오며 삼남의 손이 떨리는 게 언뜻 보였다. 이제 고인이 된 환자의 침대 옆에 쳐진 가림막을 보고 불길함을 느낀 것이리라. 나는 보호자께서 오시기 얼마 전에 환자분의 심장이 멈췄다고 말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멈칫거리면서 몇 발짝을 떼다가 환자 침대의 발치에 엎어진 채 오열했다. 난 그런 순간마다 힘들었다. 아직 떠나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이들의 울음소리만큼 날 흔들리게 하는 게 없었다. 삼남이 진정할 때까지 조금 기다리다가 사망 선언을 하고 당직실로 돌아왔다. 이제 사망 진단서를 쓰고 퇴원 오더를 내면, 이 환자와 관련된 일은 끝날 것이라고,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10분 정도 있다가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았다. 내게 자주 전화를 해서 목소리가 익숙한 중환자 병동 간호사였다. 한데 이상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렇게 어색하게 떨리는 건 처음 들었다. “선생님…. 아까 돌아가신 환자분의 다른 보호자가 오셨는데…. 이분이 지금 욕하시면서 소란을 피우시고 그러셔서…. 죄송하지만 올라와 주실 수 있을까요…?” 아연한 기분으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병동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병동 안쪽으로부터 화를 내는 남자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걸어서 병동으로 들어가자, 50대 초중반 정도의 꽤 키가 큰 남성이 화를 내고 있었다. 표정은 일그러져 있었고, 목소리의 톤은 높았으며, 무엇보다 자신의 분노를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씩씩거리다가 벽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고, 이 병원을 다 불태워버려야 한다느니, 여긴 죄 사기꾼밖에 없다느니 같은 폭언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 보호자가 장남인지 차남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상태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 보호자에 대한 간호사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한 간호사는 체념한 것 같은 느낌으로, 소란을 피우는 보호자를 무감정한 눈빛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간호사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느낌으로, 보호자를 봤다가 동료 간호사를 쳐다보는 등 시선을 한데 두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병동에 들어서는 나를 발견하자 퍽 안도한 듯한 느낌으로 눈가의 모양이 변했다. 의료진 모두가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눈가만 보이는 상황이었는데도, 그녀의 표정 변화는 마스크를 뚫고 나에게 전달될 정도로 극적이었다. 내가 병동에 다가서자, 간호사는 후다닥 달려와 내게 속삭였다. “보호자 중 차남이신데, 저희가 말씀드려도 진정을 못 하셔요….” 난 차남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보호자 분, 일단 진정하시고….”

“당신이 의사요?”

“네, 다른 보호자께 연락드린 야간 당직의입니다. 일단….”

“됐고,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 봐요. 아까 분명 우리 아버지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안심해도 된다고 했잖아!!”


보호자의 말을 듣고 사건의 전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까 의무기록지에 적혀있던, 폐렴 증상 소실과 검사 결과로 항생제 사용을 중단했다는 기록을 떠올렸다. 아마 주치의는 아까 낮에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폐렴과 동반된 패혈증 때문에 항생제를 쓰고 있었는데, 이제 폐렴은 지나간 것 같아서 안심하셔도 될 것 같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전에 보호자들에게 기저질환이 있으신 만큼 폐렴 때문에 돌아가실 수 있다고 말했을 테니, 걱정하고 있었을 보호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의도였을 테다. 그러나 이 환자의 경우 공교롭게도 주치의가 안심하라고 말한 이후 12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것이다.


폐렴을 앓기 이전의 환자 상태도 사실, 언제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몸의 필터 역할을 하는 신장이 완전히 망가졌으니, 인공적으로 피를 걸러주는 혈액 투석은 유지 요법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치료는 신장 이식 외엔 불가능하다. 그러나 신장 이식을 받는 것도 어느 정도 기대 여명이 남아있는, 비교적 젊은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돌아가니. 사실상 이 환자의 상태가 개선되는 걸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었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을 조금이나마 지연시키는 상태라고 봐야 했다. 즉, 오늘의 일은 예상치 못한 급사지만 동시에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 다만 보호자들 입장에선 주치의가 안심하라고 한지 얼마 안 되어 병원에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고 하니, 화가 나거나 충격을 받을 법했다.


차남에게 천천히 설명했다. 주치의가 안심하라고 말한 의도는 아마 이럴 것이라고. 투석하시는 분들의 경우 급사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이런 일이 발생하여 공교롭고 유감이라고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나 역시 당시에 긴장한 상태였으며, 매끄럽게 말하지는 못했던 것도 같다.


그래서였을까? 차남은 내 설명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여전히 소란을 피우며 나에게 욕을 했고, 벽에 발길질했고, 분을 이기지 못해 소리를 질렀다.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한편으론 억울했다. 의사는 신이 아니고, 누구의 잘못도 아닌 상황인데. 왜 내가 욕받이가 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의료진이 환자가 잘못되길 바란 것도 아니고, 구비된 약품이나 의료 설비의 현실적인 한계도 있는 건데. 이곳에서 대학병원 수준의 케어는 기대할 수 없는 건데. 약간의 무력감과 허탈함을 곱씹으며, 나는 설명을 멈춘 채 차남이 계속 소란을 피우는 걸 바라보았다.


그때 병동 엘리베이터 쪽에서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 들어왔다. 차남보다는 키가 작았으나 어깨가 넓고 단단해 보였다. 장남인 듯했다. 강퍅해 보이는 그의 얼굴에서 여태 살아온 완강한 태도 같은 게 엿보였다. 그는 상황을 파악하자마자 소리를 지르고 있는 차남에게 다가갔다.


"그만해. 병원이잖아."

"형! 형도 들었지? 아까 괜찮다고 했잖아! 그런데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알아, 알고 있어. 그런데 이렇게 한다고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냐?"

차남은 여전히 흥분한 채였다. "그러면 가만히 있으라고? 병원에서 사람 죽여놓고?"

장남이 차남의 어깨를 붙잡으며 목소리를 낮췄다. “따질 거면 제대로 따져야지. 애꿎은 당직의한테 화낼 게 아니라, 주치의한테.”


그 순간 장남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그의 눈빛은 차남의 분노와는 달랐지만, 어떤 면에서는 더 섬뜩했다. 차가우면서 날카로운, 적대적인 시선이었다. 마치 지금 상황의 책임소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듯한, 그리고 나를 그 책임으로부터 배제하면서도 동시에 의료진의 일부로는 보고 있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시선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차남의 직접적인 분노보다 장남의 절제되고 응축된 적대감이 더 무서웠다. 그는 나를 개인적으로 원망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호적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걸 그 한 번의 시선으로 명확히 전달했다. 장남의 적대감이 나를 직접적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말의 안도감을 느꼈다가도, 그런 내 생각이 비겁하게도 느껴져 자괴감이 들었다.


장남의 카리스마는 순식간에 자기 형제들을 장악했다. 고인이 된 환자의 옆에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삼남도, 분을 이기지 못해 소란을 피우던 차남도, 장남이 상황을 통제함에 따라 조용해졌다. 장남은 주치의가 언제 출근하는지를 물어본 후,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는 짧은 말을 남긴 뒤 원무과로 이동했다. 아마 이후에 진행할 장례 절차와 병원비 수납을 위해 내려간 것이리라. 긴장이 풀리자 다리에 힘이 빠진 듯했다. 그날 밤에 있었던 일을 주치의에게 전달하자 주치의는 고생했다며 격려해 주었지만, 이후에 그 보호자 3형제와 주치의 사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더 이상 알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보호자와 갈등을 겪은 일은 없었다. 그러나 가끔 나는 아직도 그날 밤, 장남이 차갑게 노려보던 눈빛을 기억한다. 그 눈빛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의료진으로서의 현실에 대해 고민한다. 환자의 죽음 앞에서 의료진은 때로 분노의 대상이 되고, 무력한 방관자가 되기도 하며, 무엇보다도 책임자가 된다. 의학적으로 옳은, 혹은 주어진 여건상에서 최선을 다해도, 감정적으로는 누군가의 원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 원망이 정당하든 그렇지 않든, 우린 그걸 받아내야만 한다는 것. 그게 요즘 의사들이 짊어진 숙명 같은 게 아닐까.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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