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월요일. 나의 한 주는 옷가지와 노트북, 책 등이 담긴 책가방과 단백질 쉐이크 통 여러 개가 담긴 쇼핑백을 챙기는 걸로 시작된다. 출근. 평일 내내 당직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하기 때문이다. 근무시간은 평일 오후 5시 반부터 다음 날 아침 8시 반까지, 월화수목금. 5일 동안 야간 근무. 출퇴근 시간을 따지자면 월요일 오후 4시 반쯤 병원에 출근하여 짐을 풀며 근무를 시작하고, 토요일 아침 9시쯤 짐을 챙겨 집으로 향한다.
6평 남짓한 당직실에는 웬만한 건 다 있다. 문을 열자마자 왼쪽에 침대가 있고, 침대 건너편에는 컴퓨터가 놓인 책상이 있다. 책상 옆에는 의사 가운과 병원 유니폼이 들어있는 옷장이 있다. 벽 쪽에는 탕비장이 있어, 밤을 지새우며 먹을 수 있는 과자나 컵라면 같은 부식이 있다. 냉장고도 있어 음료수를 넣어 놓고 마시곤 한다. 이렇듯 어지간한 건 다 갖춰져 있기에, 5일 동안 당직실에서 체류하며 숙식을 해결한다. 굳이 왕복 2시간 반의 출퇴근을 매일 반복하기보다는 그게 낫다는 계산이다.
근무시간 동안 야간당직의의 일과는 간단하다. 계속 대기하다가 병동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면 필요한 처방을 내거나 병동에 올라가 환자를 본다. 그외 남는 시간은 자유롭게 보낸다. 책을 읽어도 되고, USMLE(미국 의사 면허 시험)나 전공의 시험 준비를 해도 되며,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으로 시간을 보내도 된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는 당직의의 선택이다. 나는 주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면서 시간을 보낸다. 책은 시집이나 소설, 혹은 의학 서적을 읽는 편이고, 글을 쓸 땐 주로 에세이나 소설을 쓴다. 물론 항상 생산적으로 보내는 건 아니다. 영화를 보기도, 게임을 하기도, 혹은 그냥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하릴없이 보내기도 한다. 자유시간이 많다는 것은 확실히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병동에서 전화가 온다. 대부분은 그렇게 까다로운 내용은 아니다. 환자의 혈당이 너무 높거나 낮다거나, 열이 있다던가, 통증이 있다거나, 속이 메스껍다거나, 콧줄이나 소변줄을 교체해 달라던가 등등. 각각의 상황마다 알맞은 약을 처방하고, 필요한 처치를 하면 그만이다. 가끔 응급상황이나 사망선고를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런 순간들은 대개 주에 1~2번 정도이다. 물론 운이 안 좋으면 일주일 내내 그런 상황이 터지기도 한다.
오늘은 다행히 좀 조용하다. 여태 전화기는 두 시간에 한 번 빈도로 울렸다. 한 번은 저녁 시간에 식사 후 혈당 높아진 환자에게 인슐린을 처방해 달란 전화였고, 한 번은 가려움증이 있단 환자에게 페니라민 주사를 처방해 달라는 전화였다. 일단 환자를 보고, 이전 처방 기록과 의무기록을 참조해 별 다른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처방하면 끝. 의사라면 모두 할 수 있는 정도의 간단하고 가벼운 일. 그러나 동시에, 어떤 지식적인 성장도 바랄 수 없는 일. 이런 환경에서 정체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늘어지려는 관성을 이겨내며 억지로 몇 자 공부해 본다. 활자가 머릿속에서 뱅뱅 돈다. 그저 부유할 뿐, 이해되거나 외워지지는 않는다. 결국 잠깐 병원 둘레를 산책하다가 자리에 돌아온다.
밤 12시. 내 정신이 최고조로 맑은 시간대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고요한 시간대이기도 하다. 이 시간은 갑자기 터지는 응급상황이 아니면 전화는 거의 오지 않는다. 환자들도 다 자고 있을 테니 당연하다. 병동에 깨어있는 사람들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과 간병사들뿐일 터. 아마 병실은 환자들이 내는 미미한 소음만 날 뿐, 조용할 것이다. 불이 꺼져 어두운 병실의 분위기를 기억한다. 지난주쯤인가, 밤에 낙상사고가 일어나 병동에 올라간 적이 있었다. 환자를 진찰한 후 돌아오며 병동의 복도를 걸었다. 코 고는 소리, 뒤척이는 소리, 산소마스크 소리, 잠꼬대 소리. 그런 소음을 듣고 있으면 내가 혼자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 뭔가 안정이 되는 기분이다.
상념을 멈추고 핸드폰 화면을 본다. 카카오톡을 훑는다. 모든 카톡방이 알림 없이 고요하다. 다들 내일의 출근을 위해, 혹은 등교를 위해 잠자리에 들 시간이니 그럴 법도 하다. 가만히 앉아 나의 생활에 대해 생각한다. 남들이 잘 때 난 깨어있다. 남들이 활동할 때 나는 잔다. 타인과 나의 생활이 교차하는 시간대가 적다. 공간적으로도 그렇다. 잠깐 나가서 편의점을 가거나 산책하는 정도 이상으로 당직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할 동료 의사도 없다. 병동에 올라갈 땐 간호사들과 잠깐 얘기할 순 있지만, 업무 외적으로 오래 있으면 간호사들이 불편해한다.
물론 당직실 따로 없는, 교대로 휴게실에서 2시간 남짓을 휴식하는 간호사들의 처지와 비교한다면, 개인 당직실까지 딸린 내가 하는 소리는 그저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6평의 흰 벽지로 둘러싸인 작은 당직실 안에서 철저히 혼자라는 감각을 곱씹다 보면, 종종 그런 생각이 든다. 만약 내가 좀 더 내향적인 성격을 가졌다면, 혼자 있는 걸 잘 버티는 성격이었다면. 이런 고독이 덜 느껴졌을까? 무의미한 가정을 의식의 저편으로 눌러 담는다. 이럴 땐 잡생각이 안 나게 유튜브 영상을 튼다. 남들이 웃고 떠드는 영상을 보며 나도 조금 실소를 짓는다. 그러나 곧바로 무표정해지는 걸 스스로 느낀다. 흰 벽지로 사방이 도배된 당직실 벽이 나에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다.
새벽 1시 이후에 걸려 오는 전화 한두 통을 – 이 시간대에 걸려 오는 전화의 용건은 보통 치매나 섬망 있는 환자들이 소리를 지르니 진정제를 처방해달라는 것이다 - 마저 해결하면 잠들 시간이 찾아온다. 난 보통 새벽 2시 이후에 자서 아침 6시쯤 일어난다. 어지간한 응급상황 아니면 그 시간엔 거의 전화가 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든 전화가 오면 일어나야 하므로 깊이 잠들지 못한다. 그마저도 아침 6시부터는 환자들이 아침 식사하다가 토한다든지 혈당이 높거나 낮다든지 등의 호출이 올 수 있기에 깨어있는 편이다.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잠은 근무시간 끝나고 낮잠으로 보충한다. 불 꺼진 당직실, 침대에 누워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잠에 든다.
얼마나 잤지. 전화를 받고 일어나 비몽사몽인 상태에서 처방을 낸다. 업무가 마치는 8시 반까지는 깨어있어야 한다. 8시 10분쯤엔 인계장을 작성한다. 어제 오후부터 오늘 아침까지 나에게 걸려 온 모든 전화에 대해, 그래서 내가 당직을 서는 동안 환자들에게 어떤 조치를 했는지 모두 적는다. 601호 환자에게는 인슐린을, 405호 환자에게는 페니라민 주사를 줬었지. 콧줄을 끼우거나 소변줄을 교체한 사소한 것도 다 적는다. 8시 30분, 주치의들 단톡방에 인계장을 올리고 침대로 쓰러진다. 당직실 문밖에선 일과가 시작되어 활기찬 병원 직원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마 오전에 종교 활동, 그리고 재활운동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있을 거다. 잠을 청하며 소망한다. 오전만이라도 밖의 소리에 깨지 않기를. 자고 일어난 후 오늘은 좀 더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길. 그리고 일어나선, 조금이나마 더 생산적인 밤을 보낼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