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로서의 의사

by 장 Tony

근무 중 간혹, 평소와 결이 살짝 다른 호출이 올 때가 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여기 6층 병동인데요, 환자분 이러이러한 기저질환 있으신 분인데, 지금 약 드시기를 거부하셔서요. 혹시 오셔서 설득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약을 거부한다? 일단 거부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명료한 사람이다. 또 중환자들이 가득한 3층이 아닌, 재활 혹은 요양하러 온 환자들이 대부분인 6층에서 온 전화. 즉 위급한 상황은 아니다.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병동으로 올라간다.


의무기록지를 확인한 후 병동에 올라가 환자를 본다. 낯빛이 그리 좋지 않은 50대 남자 환자. 정맥에 혈전이 생겨서 혈전 제거술을 받았었고, 그 이후로 와파린을 먹고 있는 사람이다. 코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콧줄이 끼워져 있다. 인상은 전체적으로 유순한 편이나 눈가에 서린 어떤 고집 같은 게 엿보인다. 간호사와 가볍게 실랑이하던 환자는 날 보자 하소연하듯이 말한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아까 혈압이 높다 그래서 고혈압 약 처방 주셨잖아요. 그런데 복약지도서에 보니까 와파린과 고혈압약을 같이 먹으면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대요. 그래서 오늘 먹어야 할 와파린은 안 먹으면 안 될까요?”


와파린은 혈전 생성을 억제하는, 말하자면 피를 묽게 해주는 약이다. 피는 묽어졌다가 진해지며 평형을 이루는데, 너무 묽어지면 출혈이 발생하고 너무 진해지면 굳어서 혈전을 만든다고 할 수 있다. 피가 굳어서 생긴 피딱지를 혈전이라 하며, 혈전이 여기저기로 날아가서 폐동맥을 막으면 폐색전증을 일으키고 뇌혈관을 막으면 뇌경색을 일으킨다. 그렇기에 이 환자처럼 과거력이 있는 경우 혈전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와파린 같은 항혈전제를 꾸준히 먹어야 한다. 다만 와파린은 다른 약과의 상호작용이 많아서 사용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 상호작용하는 약 중 하나가 고혈압약. 복약지도서를 읽은 환자가 불안해할 법하다.


하지만 의사는 항상 득과 실을 계산하여 환자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안내해야 한다. 이 환자의 경우 부작용이 두려워 와파린을 안 먹는 건 득보다 실이 큰 행위다. 부작용을 감안해도 혈전 발생 가능성을 낮추는 게 훨씬 큰 이득이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혈전 과거력을 가진 환자가 와파린을 끊는 건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말이다. 나는 간호사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아 설득을 시작한다.


“환자분, 그래도 와파린은 드시는 게 좋아요.”

“아니 나는 부작용이 생길까 봐….”

“환자분께서 걱정하시는 점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부작용을 생각해도 약을 안 먹는 건 위험해서 그래요.”

간호사가 옆에서 지원 사격을 해준다. “오죽하면 의사 선생님이 병동 올라오셔서 그렇게 말씀하시겠어요~.”


환자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나는 그런 환자의 눈을 마주 본다. 그의 꺼림칙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의사는 의학 지식의 전문가인 만큼, 전문가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난 그렇게 배웠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도 있지만, 과연 그게 옳을까? 환자의 바람과 의학적 판단은 때론 상충한다. 그런 갈등 상황에서 의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상적인 방법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설득하는 것이지만, 세상만사가 이론대로 쉽게 풀릴 리가 있나. 동기나 선배들에게 들었던 여러 괴담이 떠오른다. 인터넷에서 본 정보를 맹신하며 의사가 틀렸다는 듯이 몰아가는 환자, 진료실에 녹음기를 몰래 지참하고 들어와서 의사가 혹시라도 틀린 말을 하지는 않는지 확인하는 환자, 의학적 상태와 무관한 서류를 요구하며 안 해주면 맘카페에 올릴 거라고 하던 진상….


잠깐 상념에 빠졌다가 돌아왔다. 환자는 여전히 불안을 토로하고 있다. 간호사가 뭐라고 말해도 ‘하지만’과 ‘그래도’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계속 대답한다. 어쩔 수 없이 단호한 표정을 짓고 강한 어조로 말한다.


“환자분, 이전에도 혈전 제거하셨잖아요. 그게 얼마나 위험한 건데요. 다행히 별 후유증 없이 치료 되셨지만, 운이 좋으셨던 거라니까요? 운 없어서 그게 뇌로 갔으면, 뇌경색 생겼으면 어떻게 됐게요. 그랬으면 지금 거동도 제대로 못 하실 수도 있어요. 근데 지금 와파린을 안 드신다는 말씀은, 아무래도 환자분이 그 위험성을 아직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반쯤은 협박에 가까운 말에 환자는 약간 기가 죽은 듯, 하지만 일말의 불만이 스민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까지 말하시면, 알겠어요….”


가벼운 생각으로 올라갔던 것과 다르게, 심란해진 채로 당직실에 복귀한다. 반강제적으로 설득에는 성공했으나 마음이 편치는 않다. 환자에게 안 좋은 소리를 했기 때문은 아니다. 위험성을 무시한 채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방치했다가 안 좋은 결과가 생기는 것보다야, 환자의 기분이 조금 상하더라도 약을 먹게 하는 게 훨씬 낫다. 심란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의대에서 배웠던 건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하며, 전문가적인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선 그런 말씀을 하시며 개원한 의사들을 욕했다. 의학적인 관점에서 불필요한 검사와 처방을 내는 개원의들. 돈벌이에만 미쳐 전문가로서 역할을 제대로 안 하는 의사들. 의대생 시절엔 교수님 말씀에 막연히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뉴스에 가끔 나오듯, 일부 비도덕적인 의사가 있는 건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졸업한 후 주변 얘기를 들어볼수록, 일반적인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다. 아무나 병원에 평점을 매길 수 있는 시대, 자영업자나 다름없는 개원가 의사들은 환자이자 고객을 상대하게 된다. 과열된 경쟁 역시 의사들로 하여금 전문가적 태도를 지키는 것보다 환자 편의를 봐주는 쪽으로 행동을 유도한다. 악화되는 환자-의사 신뢰 관계도 의사가 방어적 진료를 하게 되는 원인이다.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의학적 소신을 지키기란 점점 어려워진다.


오늘 내가 환자 설득에 성공한 요인은 명확했다. 환자의 기분을 덜 고려해도 괜찮은 상황이었고, 내세울 근거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조금 달랐으면 어땠을까. 내가 만약 요양병원의 당직의가 아니라, 몇 년 뒤 내가 개원한 병원의 진료실에 앉아있었다면. 그리고 환자의 질환이 비교적 덜 심각한 것이라 내가 강하게 얘기하기엔 애매한 질환이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오늘 말했던 것처럼 환자에게 강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글쎄. 아마 그러지 못했을 수도.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온라인 리뷰를 걱정할 필요 없는 지금이나, 나중에 대학병원에서 수련받을 때를 제외한다면. 미래에 내가 의학적 소신대로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있을까? 장차 나는 어떤 의사가 될까? 도무지 그 모습이 그려지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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