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나는 요양병원에 남아있는 유일한 의사로서 여러 종류의 전화를 받는다. 환자의 혈당이 높다든가, 섬망이 와서 소리를 질러 다른 환자의 수면을 방해한다던가, 간지럽거나 통증이 있어 약물 처방이 필요하다든가 등등. 그러면 우선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처방을 내거나 처치를 시행한다. 그래도 이런 전화들은 많이 와도 괜찮다. 몇 분 정도 살짝 바빠질 뿐,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력 징후(vital sign)가 이상이 있다는 전화를 받으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체온, 혈압, 맥박수, 호흡수. 이렇게 4가지로 대표되는 활력 징후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선생님, 환자분 혈압이랑 맥박이 떨어져요. 호흡도 체인-스토크스(cheyne-stokes) 양상으로 숨 쉬시고요.”
환자의 과거력을 빠르게 확인했다. 70대 후반 남성, 말기 암 환자. 최근에 기침과 가래가 많았고 청진상으로 수포음이 들렸으며, x-ray 상에서도 좌측 폐가 뿌옇게 보였음. 이에 폐렴으로 진단, 항생제를 쓰다가 호전되어 이틀 전 중단함. 보호자에겐 환자의 나이와 기저질환으로 인해 급사 가능성 있다고 미리 설명했음. DNR (Do Not Resuscitate, 연명치료 포기 표시) 동의 완료.
바로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혈압과 맥박, 산소 포화도가 떨어진다는 점은 심폐 기능이 원활하지 않다는 뜻. 특히 체인-스토크스 호흡이라는 것은 호흡과 무호흡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호흡 이상인데, 임종 호흡이라고 불릴 정도로 폐의 기능이 떨어졌음을 나타낸다. 손에서 땀이 나서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며 병실로 들어섰다. 환자의 상태는 어떻게 봐도 좋다고 보긴 힘들었다. 얼굴에 착용한 산소마스크로 분당 10L의 산소가 들어가고 있었다. 줄 수 있는 최대치에 가까운 양이었지만, 산소포화도가 70퍼센트 정도에서 올라가질 않았다. 낯빛도 연한 연필심처럼 검었고, 손끝에는 청색증이 보였다. 분비물을 처리하는 기능도 떨어졌는지 숨을 쉴 때 그르렁그르렁 가래 끓는 소리가 났다. 의식이 어떤지를 보기 위해 갈비뼈 쪽을 손톱으로 눌러 통증 반응을 유도했다.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간호사가 언급했던 체인-스토크스 호흡. 환자는 가쁘게 숨을 쉬다가도 몇 초간 숨을 참는 듯 아무런 숨소리를 내지 않다가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환자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이 유독 어둡게 느껴졌다.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상태를 봤을 때 임종은 시간문제라 판단했고, 연명의료 포기 의사를 밝히셨기에 적극적인 처치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임종하기 전에 보호자들이 환자와 마지막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도와드리는 것. 그것만이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의무기록지에서 보호자의 연락처를 확인하고 전화를 걸었다. 이번 보호자는 내가 이름을 모르는 어떤 클래식 음악을 컬러링으로 해놓았다. 전화 연결음을 들으며 할 말을 고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톱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러던 중 보호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저는 요양병원 야간당직의입니다. 환자분 보호자 되실까요?”
“네 그런데요?”
“환자분이 현재 혈압 및 심장 박동수 저하로 사망 가능성 높은 상태여서 연락드렸습니다. 현재 연명치료를 받지 않으신다고 확인해서, 저희가 적극적인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내원해 주세요.”
“아….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환자의 생체 징후 모니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환자의 상태를 근본적으로 낫게 할 방법은 없었다. 애초에 대학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분이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보호자가 환자의 마지막을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뿐. 그런 마음이 통했던 걸까? 아니면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자기 아들과 배우자가 오는 걸 알았던 걸까. 보호자들이 내원할 때까지 환자는 혈압이 조금 낮아지긴 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다.
보호자들이 병동으로 들어왔다. 두 보호자 중 아들 쪽은 30대 초반 정도로 보였고, 내가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로 키가 컸다. 전반적으로 선해 보이는 인상에 위아래로 흰색 옷을 맞춰 입고 있었는데, 나를 쳐다보는 눈이 살짝 처진 채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같이 온 환자의 배우자는 인자한 인상의 60대 여성이었고, 아들과 비슷하게 눈가의 주름 사이로 근심이 스며든 표정이었다. 말이 없는 배우자 대신 아들이 나와 이야기하며 병동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괜찮으신가요?”
“아까 말씀드렸던 위독한 상태에서 변화가 없으신 상태입니다. 아까 연락드렸을 때보다 상태가 더 나빠지지는 않으셨지만, 언제 더 안 좋아지실지는 알 수 없어요.”
병실에 도착해 불을 켜자, 옆 침대의 다른 환자가 웅얼거리며 돌아누웠다. 두 보호자는 환자의 침대 발치로 가서 섰다. 환자는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고, 여전히 의식은 없었다. 모니터의 경보음이 삑삑 소리를 내며 정적을 깨고 있었다. 아들이 모니터에 적힌 내용들을 보다가 질문했다.
“여기 적혀있는 게 혈압인가요?”
“네, 72/37로 적혀있는 것이 혈압 수치인데, 정상 수치보다 꽤 낮아요. 호흡수도 35로 정상보다 매우 빠른 상태입니다. 열도 나시고, 산소 포화도가 여기, 65%로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입니다. 심박수도 정상보다 많이 낮습니다.”
“그러면 그게, 위독하시단 뜻인 거죠?”
“그쵸. 생체 징후가 불안정하단 의미이지만,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밝히셨기에 저희가 뭘 더 해드릴 수가 없어요. 오늘 밤을 넘기시지 못하실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렇군요….”
나와 아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침대맡으로 걸어간 배우자는 환자의 이마에 장갑을 낀 손을 올렸다. 그녀는 반대편 손으로 성호를 그리고 작게 속삭이다가 입을 맞췄다. 난 아들과의 대화를 멈추고 반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마도 부부의 마지막 교감이 될 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아들도 침대 옆으로 가서 환자의 손을 잡고 나직하게 말을 걸었다.
“아버지.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겠네요. 듣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많이 존경하고 사랑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생애 마지막 면회. 그 앞에서 아내와 아들은 울지 않았다. 각오를 눈물 없이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상심이 있었을까. 상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건 체념에 적응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단순한 체념이라고는 할 수 없을 테다. 말하지 않아도 드러나는 것들이 있다. 표정과 말투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과 애도. 남편과의 이별까지 가슴에 품으려는 담담함, 그리고 사랑. 나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임종 면회나 사망선고 경험이 꽤 쌓였어도, 보호자들이 가끔 보여주는 이런 광경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촉촉해진 눈에 병실 조명의 불빛이 번져 보였다.
짧은 면회 시간이 끝나고 두 보호자는 병동 밖으로 나갔다. 임종이 가까워질 때 다시 전화를 드리겠다고 말하고는 다시 병동으로 돌아왔다. 환자분의 생체 징후 모니터 앞에 가만히 서 있는 나를 본 간호사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선생님. 이분 상태 안 좋아지시면 저희가 전화드릴게요. 당직실 가셔도 되셔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발길을 옮기려다, 문득 시선이 환자의 얼굴로 향했다. 생체 징후 모니터는 여전히 수치가 안 좋다며 삑삑거리는 경보음을 내고 있었지만, 어쩐지 면회 이후 환자의 얼굴에 일말의 편안함이 깃든 것처럼 보였다. 환자의 희미해진 의식 사이로 아들의 각오가 전해진 걸까. 의사가 하기엔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병원 1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바깥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문가를 나서 비가 오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장마가 아직 그치지 않았기에, 사방이 빗소리와 물로 가득했다. 난 생각했다. 방금 임종 면회를 진행했던 한 환자에 대해서, 그의 보호자들에 대해서, 그리고 흐르는 빗물에 대해서.
빗방울은 어디에 떨어져도 계속 흐를 것이다. 아래로 흐르다가 바다에 도착하면, 해류를 타고 심해로도 갔다가, 극지방에 가서 빙하로 얼어있다가, 증발해선 구름으로, 그리고 언젠가 다시금 비로 내려와 흐를 것이다. 우리네 삶 역시도 그럴 것이다. 실패를 겪더라도, 소중한 이가 떠나가도. 굴곡질지언정 삶은 흘러갈 것이고, 흘러가야 할 테다.
흘러가는 것들 사이에서, 나는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