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면접

by 장 Tony

2023년 5월의 어느 날. 요양병원 야간당직의 자리에 지원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나는 그해 2월에 졸업하고 3월에 군의관으로 훈련소에 입소했는데, 훈련 중 부상으로 인해 퇴소했던 상황이었다. 시간상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시작할 수는 없었기에 남는 시간 동안 어떤 일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중 내 관심을 끌었던 건 비교적 업무 강도가 낮고 개인 시간이 많다고 알려진 요양병원 야간 당직이었다. 나 같이 인턴 수련조차 받지 않은 일반의가 취직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 결과, 나는 막연한 기대와 조잡한 이력서 한 통을 품에 안고 요양병원 앞에 섰다.


요양병원 정문에는 키가 낮은 화분 몇 개가 문 옆을 지키고 있었다. 병원 이름이 적힌 큰 간판 아래에 유리로 된 대문은 조심스레 열려있었다. 햇빛이 유리에 반사되어 눈을 찔렀다. 출입구에 들어서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어르신들은 이곳에 들어올 때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막연한 추측만 떠올랐다. 자식들로부터 내쳐져 버려진 느낌이었을지, 스스로 인생의 마지막을 정리하려 걸어 들어오셨을지. 아니면 그럴 의식조차 희미한 채 보호자들의 뜻에 따라 그대로 입원했을지. 무거운 고민을 하며 들어선 것에 비해 1층 로비의 내부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훨씬 밝고 깨끗해서 놀랐다.


원무과 직원의 안내에 따라 회의실 비슷한 곳에서 병원장님을 기다렸다. 5분이 채 안 되어 30대 후반에서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의사가 들어왔다. 얼굴엔 흰색 마스크, 푸른색 유니폼 위에 흰색 가운을 입은 채였다. 그분의 왼손에 내 이력서가 들려있었다. “안녕하세요~. 장성훈 선생님 맞으시죠?” 생각보다 살가운 인사에 긴장이 풀리는 걸 느끼며 대답했다. 병원장님은 내가 요양병원에 관심 가진 이유와, 군의관 훈련소에서 퇴소한 이력을 간단히 물어보신 이후엔 언제부터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보셨다. 형식적인 면접 후에 바로 채용이 결정되었다. 아마도 사람 구하기 힘든 시기여서 그랬던 게 아닐까. 갓 졸업한 새내기 의사에 불과한 내가 특별한 점이 있어서 바로 채용되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채용이 결정되고 병원장님은 몇 가지를 당부했다. 우선 첫째, 절대 병원 밖에서 30분 이상 있지 말 것. 잠깐 편의점 다녀오는 정도는 괜찮지만, 병동에서 당직의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병원 밖에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었다. 처음엔 당연한 걸 왜 강조하시나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듣자 하니 전임자 중 한 명이 피시방인지 사우나인지 아무튼 2시간 동안 병원을 비웠다가 해고를 당한 적이 있었다고. 나였다면 무슨 일 생길까 두려워서 후다닥 편의점만 다녀오고 말 텐데. 전임자는 책임감에 비해 깡이 참 좋은 사람이었나 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둘째, 콜이 오면 성실히 병동에 가서 환자를 보고 판단할 것. 이것 역시 책임감이 있다면 당연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 같았다. 하긴, 의대생 때 병원 실습 돌 적에도 그런 친구들은 종종 있었다. 환자 케이스 발표를 준비하면서 한 번도 해당 환자를 직접 문진해 보지 않은 채, 전공의 선배들이 쓴 차트만 가지고 발표 준비하던. 그래서 어떤 교수님들은 학생들이 케이스 발표할 때 차트에 드러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질문했고, 이에 대답 못한 학생을 매우 혼내거나 최하점을 부여하기도 했다. 의사의 기본은 환자를 보는 건데, 남이 보고 작성한 기록만 믿는다는 게 의사가 맞냐는 일갈을 하시던 교수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내 능력 밖의 위급상황이 생기면 바로 자신, 혹은 그 환자를 담당하는 주치의에게 연락할 것. 당연한 말이었고, 나 역시도 그런 걱정을 했다. 국가고시를 통과한 후 면허를 딴 의사이니 의료 행위를 하는 것 자체는 가능했지만, 그게 내가 모든 상황을 겪고 숙련된 의사란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운전면허를 땄어도 충분한 도로 주행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도로에 나가기 무서운 것과 같은 이치랄까. 오히려 나는 그런 걱정이 들었다. 아직 실무를 겪지 않은 햇병아리 의사인 내가 별의별 일로 병원장님께 너무 자주 전화하지는 않을까, 하는(다행히 빠르게 적응해서 그럴 일은 많지 않았다).


나는 모든 주의 사항을 다시 읊은 뒤,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고 병원장님과 악수했다. 그렇게 나는 요양병원 야간당직의가 되었다. 그 순간엔 제대로 된 첫 직장을 얻었음에 그저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하나 그때는 몰랐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떤 느낌으로 나에게 다가올지,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어떤 고민을 하면서 어떻게 달라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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