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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Apr 18. 2023

룸메가 집을 나갔다

원룸 옥탑방의 현실(3)

"언니, 나는 휴일이 보장된 일을 해야겠어"


새벽 2시가 다 되어가던 시각, 내가 막 잠에 들려할 때쯤 퇴근한 아윤은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만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를 내뱉었다. 그 말인 즉, 더 이상 이 일을 하지 못하겠다는 아니 못 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바닥 1년 선배로서 설득의 기술을 사용해볼까 싶었지만, 그 누구보다 아윤의 상황과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이유를 묻지 않았다.  


"허리는 괜찮아?"


선천적으로 부실한(?) 허리를 가지고 있었던 아윤에게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거나, 핸드폰을 붙잡고 입 씨름을 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던 그 시간은 '디스크'라는 질병이 더욱 악화시켰다. 어찌 보면 이 상황은 이미 예견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중고딩 시절부터 막연하게 꾸었던 꿈을 건강과 바꿔가며 버텨온 그녀에게 한계점이 온 것이다. 하루는 출근을 하지 못할 정도로 찌릿하게 느껴지는 허리 통증 때문에 회사 대신 병원 신세를 지어야 했던 아윤. 선배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했지만, 그 누구도 그녀의 안부보다 프로젝트 진행 상황만을 궁금해하였고 이런 일들이 주기적으로 벌어지자 서로 간의 오해가 쌓이기 시작했다.


물론, 아윤이 그 상황 하나 때문에 일을 그만두겠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나 또한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없고, 나라가 지정한 공휴일-설날-추석 등 일반적인 회사는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에도 퇴근 시간이 정해지지 않는 출근을 해야 하는 일의 특성 또한 적응하기 무척 힘들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나아졌다...고 할 수 있나?)  




"일단 이 근처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려고"


서울에서 다닐 직장이 없어진 아윤은 사실상 이 원룸에서 살아야 할 이유 또한 사라졌지만, 나를 혼자 이곳에 남겨둘 수 없다며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집을 나가지 않기로 했다. 사실 아윤이 일을 그만두었을 때 그녀의 꿈이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는 사실도 씁쓸했지만, 혼자서 감당해 내야 할지도 모를 월세 또한 걱정의 씨앗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그녀는 하루 만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고, 빠르게 적응해 나갔다. 그와 동시에 그동안의 스트레스들을 보상받으려는 듯 미친 듯이(?) 친구들을 만나러 다녔고, 분명 같이 사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열쇠 잃어버리면 새로 만들어야 함


"나 며칠 집 안 갈 듯. 문 잠그고 자~"


레트로 감성이 남달랐던 그 집은 전자 도어락이 아닌 열쇠 키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맨 윗부분에 위치한 은색 장치까지 걸어놔야 확실하게 잠금이, '안전한 집'으로 변신이 가능했다. 물론, 엘베 없는 5층 꼭대기 층까지 어떤 누가 올라올까 싶기도 했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흉흉하지 않은가. 때문에 우리는 각자가 집에 오지 않는 날이면 상황을 공유하곤 했는데, 일을 그만둔 뒤로 아윤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여기서 탈출을 해야 하는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의외로 혼자서 집을 사용한다는 건 꽤나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고, 룸메이트를 의식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다 마른빨래를 굳이 걷지 않아도 되는 일들은 나를 게으르게 만들었지만 잠시나마 집안일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물론, 아윤이 집에 오는 날이면 며칠간 집 나갔던 부모님이 돌아오시는 날마냥 집 청소를 하느라 배로 더 바빠지긴 했지만.




"교육은 서울에서 받고 발령은 본가 근처로 신청하려고"

당연한 선택이었다. 결단력이 좋은 아윤은 새 직장을 구했고, 다시 본가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녀가 나와 다른 길을 걷기로 결정한 날부터 우리가 내년도 함께 살 인연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확인 사살은 또 다른 문제였다. 방 계약이 약 한 달 정도 남았을 무렵 아윤은 자신의 짐들을 하나둘씩 빼기 시작했고, 마지막으로 화장대가 빠져나갔을 때 나는 한참 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아윤이 그 일을 그만두었기에 그나마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냈고, 마지막 배웅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안다. 일에 치여 살 때만 해도 남처럼 지냈던 우리. 좁은 원룸에서 일어났던 수 많았던 일들 대해 그 어떤 감정을 꺼내 보이지 않았던 우리. 분명한 건 각자의 마음속에 서운함 어쩌면 불편함 또 어쩌면 실망감이 자리 잡아 있었을 것이라는 거다. 때문에 나는 아윤이 떠난 뒤, 다시는 우리가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선배들의 이야기처럼 같이 화를 내며 다투고 싸우는 룸메이트가 있는가 하면, 우리처럼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놓아버리는 룸메이트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언니 뭐 해. 여행 갈래?"


서로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생긴 뒤, 각자의 자리에서 여유를 갖게 되었을 쯤부터, 우리는 다시 연락했고 자주 만나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살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언젠가 '같이 살 때,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 할 순간이 우리에게도 찾아왔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각자의 생활이 있었고 둘 다 일 때문에 힘들었잖아. 나름 괜찮았어"

"만약에 우리 다시 같이 살게 되면 투룸으로 구하자. 아니면 그냥 옆집이 더 나을지도!?"


그렇게 아윤은 서울을 떠났고, 나는 새로운 룸메이트를 구하게 되었다. (투비컨티뉴...)

그 해 가장 웃겼던 카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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