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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Jul 10. 2023

황금 같은 주말, 물난리가 났다

내 계획은 어디로 갔는지요

"바닥에 왜 물이 있냐?"


평화로웠던 주말 토요일 오후,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겨우 몸을 일으켜 나온 거실. 나의 발에 '찰랑'하니 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물 웅덩이가 하나 생겨나 있었다. 정확히 말해서 그것은 작은 웅덩이가 아닌, 점점 몸집을 불려 나가는, 어디선가 물이 새는 듯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기에 나는 돌아가고 있던 세탁기의 문을 확인하였고, 그것은 세탁기가 아닌 싱크대 밑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단숨에 알아챘다.  


"지유야! 잠깐만 나와 봐 봐!"

"아니, 2년 만에 또 이러네"

"빨리 건물 관리인한테 연락해야 할 듯"


집주인은 외국에서 일을 하는 사람이었기에, 모든 걸 위임해 놓은 부동산과 건물 관리인에게 즉시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을 하는 사이에도 물은 쉬지 않고 불어났다. 악취를 동반한 물의 생성지는 공동배관 하수구였고, 기름이라던지, 물티슈라던지 버려서는 안 될 것들을 하수구를 통해 쏟아낸 몰상식한 세대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건물주는 바로 거주자들에게 물 사용을 중지해 달라는 연락을 돌렸지만, 한번 역류하기 시작한 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게 눈앞에


2년 전 그날, 나는 엄마 집에서 휴양 중이었고 (일이 없으면 엄마집으로 도망가는 편) 지유는 재택으로 근무 중이었더랬다. 오늘과 똑같이 흥건해진 거실 바닥을 지유는 혼자 닦아 냈다. 지유가 큰 유난을 떨지 않았기에 나는 '역류'라는 일이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천조각 몇 개를 버림으로써 마무리된 줄만 알고 있었다. 그 일 덕분에(?) 우리는 관리비 6개월 면제를 받았고, 그날의 악몽이 2년 만에 다시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기에, 우리는 이곳에서의 2년 살이를 연장했던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이사를 갔지! 

<VS>

다른 집으로 이사했으면 이보다 더한 일을 겪었을지도 몰라!


두 가지 마음이 충돌하기도 전에 방 안으로 들어가려는 물을 막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는 급한 대로 수건으로 물의 흐름을 막기 시작했다. 수건에서 걸레로 탈바꿈한 그 친구들을 수도 없이 짜냈고, 내가 상체 운동을 오늘을 위해 했구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물을 퍼 날랐다.

빨래 하는 중 아님


"안녕하세요. 근데 이거 어떻게 해요?"


한 시간쯤 흘렀을까. 건물 관리인과 하수구를 뚫어 줄 기사님이 도착했고 2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관리인의 양손에는 흡입력이 대단한 걸레가 대량으로 들려있었다. 싱크대 하부와 화장실 하수구를 둘러보던 기사님은 2년 전과 같이(집 구조를 왜 이렇게 지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으나) 우리가 거주하는 2층, 이곳이 마지막으로 물이 나가는 배관이 있는 곳이며, 다양한 음식물 찌꺼기와 기타 등등의 문제로 막혔다는 것. 그리고 이것을 뚫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종일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 말을 듣은 나와 지유는 화를 낼 상대를, 잘못을 한 누군가를 찾고 싶었다.


난리 난리 난리

'공동', '공용'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고 있는 곳이기에 범인을 찾을 수도, 특정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늦은 점심을 먹고, 운동을 다녀온 뒤, 주말 동안 해야 할 일을 시작하려 했던 계획이 모두 물거품이 되자 나는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화를 낸다 한들 변하는 건 없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인지, 다음에 집을 구할 때는 공동 배관이 한대로 모이는 마지막 집이 아닌지를 체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들과 동시에 입맛이 뚝 떨어졌기에 점심과 운동은 가볍게 패스하고, 책상 앞에 앉아 조용히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와중에도 물은 멈추지 않았고 10분에 한 번씩, 30분에 한 번씩 방 안으로 들어오려 하는 닦아 내는 작업을 해야 했다.   




저녁 9시, 작업은 마무리되었지만 우리에게는 뒷정리가 남아있었다. 싱크대 서랍에 있던 그릇들을 모두 씻어내야 했고, 걸레로 사용된 수건들을 버려야 했고, 이상한 오물이 남아있는 화장실을 청소해야 했으며, 은은하게 거실을 잠식해 버린 악취를 쫓아내기 위해 향을 피워야 했다. 그렇게 한 시간을 더 보낸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늦은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굿바이 슬리퍼


집은 아무리 잘 보고 골라도 살아봐야 안다는 것을 새삼 알게 해 준, 황금 같던 주말이 사라진 어느 날이었다. 


만약 우리가 20대였다면 바로 부모님을 불렀을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내 곁에 지유가 없었다면 이성을 잃고 갈팡질팡 혼돈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둘이 함께였기에 의지가 되었고, 이번 일 또한 그러려니 하고 지나간 것이 아닐까. 물론 앞으로 이보다 더 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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