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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ringtime Aug 03. 2023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단수'

겨울철 한파 대비 어떻게 해야 하나요

"대박이야 물 안 나와"

"동파?!?!?"


유독 추웠던 이번 겨울, 추위뿐만 아니라 의외의 복병이 지유와 나를 찾아왔다.

얼어서 터지는 '동파'까지 이어지지 않은 '단수'


빨간 벽돌로 이루어진 원룸에서 겨울을 보낼 때 종종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날이 있었는데, 집주인 할머니에게 그 얘기를 했다가 바로 우리 집을 방문하셨더랬다. 그녀는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헤어 드라이기를 빌려 온수 배관을 녹였는데 (이러다가 폭파하는 사고도 있다 하니 조심할 것) 나이 든 그녀가 그러고 있다는 것 자체가 꽤나 불편했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건물주이자 집주인이라는 현실 덕에 그 마음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 후로 수도관을 따뜻하게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고, 그럼에도 추위를 막지 못할 때면 지유와 내가 직접 드라이기로 수도관을 녹였다. 그럴 때면 언제 온수가 나오지 않았냐는 듯 물이 콸콸 쏟아지곤 했는데, 차가운 물까지 안 나온 적은 처음이라 이게 무슨 일인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쯤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아, 옆집인데요. 물 나오시나요?"

"오.. 아니요"


우리 집 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지난 물난리로 마주했던 건물 관리인이 등장했다. 우리보다 먼저 단수를 눈치챈 다른 집에서 진즉 연락을 취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꽝꽝 얼어붙은 수도관이 터지지는 않아 누수가 생기지는 않았으나, 같은 수도관을 사용하는 집들 모두 단수가 되었고 이 관을 어떻게 녹이는가가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물이 나오지 않아 조급한 우리와 달리 건물 관리인은 작년에는 다른 라인에 이런 일이 있었다며(그랬으면 미리 방지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느긋함을 보였다. 이번에도 자연스럽게 우리 집 콘센트를 이용해 전기를 끌어와, 밖으로 연결되는 수도관을 온풍기를 이용해 녹이기 시작했다. 이 부분에서 왜 하필 우리 집 전기를 이용하나 싶었지만, 이걸로 녹여진다면! 물을 사용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업체를 불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경험이 있다는 관리인의 말을 믿을 수밖에, 들을 수밖에 없었다.  


뭐가 문제인가요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단순히 씻는 것에만 어려움이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단수'는 초등학생 때와 같은 어릴 적이었는데, 그때 살던 아파트에서(부모님과 동생은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다) 고를 수십 번 때리고 시행되는 수도 점검으로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하루정도 물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미리 욕조에 물 한가득을 채워 놓는 등의 대비를 하셨고 나는 그 물로 하루를 견디는 게 너무나 쉬웠다. 


하지만 이번은 예기치 못한 '단수'였기에 예상외 난관에 부딪칠 때마다 당황하지 않은 척,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인 척하는 이상한 애를 써야 했다. 볼일을 보고 난 뒤 물을 내릴 수 없었고, 세탁기를 돌릴 수도, 밥을 먹고 난 뒤 수저와 그릇들을 씻을 수 없었고, 수돗물을 정수해 마시는 브리타 정수기에 담을 물이 없었다. 식용이 가능한 물인 생수는 편의점이나 마트에서 구매하는 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지만 1.5L 패트 생수를 변기 물로, 설거지에 사용하는 것은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었기에 지유와 나는 되도록 밖에서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헬스장을 등록해 놓았기에 그곳에서 샤워와 화장실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었지만, 지유가 다니는 요가원에는 별도의 샤워실이 없어 그 앞에 위치한 사우나-찜질방을 이용해야만 했다.


"찜질방이 얼마인지 알아?"

"글쎄? 8,000원 정도 하지 않았나?"

"15,000원 주말에는 17,000원이래"


코로나 발생 이후 갈 일이 없었던 밀폐되어 있는 그 공간을 갈 준비를 하던 지유는 비용을 보고 다시 한번 고민에 빠졌다.


"우리 헬스장 1일 이용권이 12,000원 하는 거 같던데"

".... 요가랑 정반대에 있잖아"

"그치, 그 거리 걷는 걸 돈으로 샀다고 생각하면"

"찜질방 다녀올게"


운동을 다니면서도 이상하게 걷기는 귀찮아했던 지유는 결국 운동 후 찜질방을 갔다 오겠다며, 요가원으로 향했다. 샤워 용품을 싸놓은 그 가방은 방안에 소중히 모셔둔 채.

금요일부터 자세히 보기 시작한 안내문자

   



하루 이틀이면 쉽게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던 건물 관리인의 예상과는 다르게 수도관은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금요일'이 돼서야 업체를 부른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물이 나오지 않는 빌라가 우리뿐만이 아니었기에, 업체의 방문일은 주말이 지난 '월요일'이 되었고 이 또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대신 관리인은 세대 별로 생수 2리터 6개를 가져다 둔다 하였고, 엘리베이터에 물을 가득 채운 약수통을 두어 사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아주 어릴 적, 아빠와 등산을 할 때 산속에 있는 약수터에 들르면 주변 어르신들이 지고 가던 약수통을 이곳 엘리베이터에서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말통이 반가우면서도 신기했지만, 사실 그 속에 담겨있는 물이 더 반가웠다. 누가 먼저 인터셉트하기 전 집에 있는 바가지에 빠르게 물을 옮겨 담아놓았고,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나 자신을 향한 왠지 모를 안타까움과 서러움이 몰려왔다.

거의 재난 영화 찍는 느낌
이미 깡깡 얼어버린 수도는 어케 합니까


"오늘 작업했는데, 포기하시고 가셨습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오후, 업체에서 포기하고 갔다는 문자를 받은 지유와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포기할 정도로 꽝꽝 얼었다는 걸까, 이참에 호캉스나 즐겨볼까 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다만 이번주 날씨가 좋아서 온수 작업을 해두면 해동 가능성이 있다 하셔서 내일부터 온수 작업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연히 오늘부터 물이 나올 줄 알았기 때문에 바가지에 담아놨던 물을 전부 사용해 버린 우리는 '온수 작업은 또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기보다 재빠르게 몸을 움직여 엘리베이터에 있는 약수통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마지막이길 바라면서.




"어이없지 날씨가 따뜻해져서 물이 나온다는 게"


지유 말처럼 날씨 때문인지, GG를 외치고 간 업체가 조금이라도 작업을 해두어서 인지, 건물 관리인의 온수 작업이 잘 통해서인지 어떤 것이 얼어붙은 수도관을 녹이는데 크게 일조했는지는 따질 수는 없지만 다행스럽게도 다음날부터 물은 잘 나오기 시작했다.


"찜질방에 쓴 돈이 얼만 줄 알아?"

"얼만데?"

"들으면 마음 아플 텐데 괜찮겠어?"

"흠 그럼 말하지 마"


한숨과 함께 그동안 찜질방에 들어간 비용에 대해 토로하던 지유는 헬스장을 다니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이상한 결론을 냈고, 그 누구에게도 청구할 수 없어 더욱 가슴 아픈 그 금액을 우리는 '인생 수업료'라 부르기로 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수 있는 특별한 대책이 우리에게는 없지만, 엘리베이터에 있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물을 알뜰하게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두는 계기가 되었으니. 물론 그걸 굳이 이런 식으로 배우고는 싶지 않았지만.


하, 집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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