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상담을 하고 난 뒤
두 번째 상담을 하고 왔습니다.
첫 번째 만남보다 한결 편한 차림으로, 마음가짐으로 다녀왔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대화 주제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거든요. 어디에서 봤는데 'I'들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기 전에 대화 시뮬레이션을 한다고 합니다. 네. 제가 그러고 삽니다. 근데 E들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세상 놀라웠습니다. 물론 저도 친한 친구, 가족들을 만날 때는 대화 주제를 생각하지 않지만, 스몰톡이 없을 수 없는 미용실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날 때는 대화 주제를 생각해 보곤 하는데. 전혀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고요.
여튼, 지난번과 연결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엄마의 존재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녀가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막연하게 엄마가 아니라면 내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마음먹게 된 이유가 따로 있는지,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를 찾는 게 중요할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상담 이후에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엄마라는 존재에 '집착'하게 되었는지 답을 찾아보려 하였으나, 도통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엄마’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부터, 키우는 것까지 그 모든 과정을 잘 해낼 자신도 없거니와 나 외에 사람에게 신경을 쓰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크거든요. 여성에게 모성애는 필수요소라고 여겨지는 일부 시선을 가지신 분들은 ‘애 낳아보면 달라질 거야’라고 하시겠지만, 아직까지 저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이 또한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냐고 물으신다면, 딱히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주입식 교육으로 만들어진 K-장녀 콤플렉스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답은 영원히 풀지 못할지도 모르겠네요.
더불어 새로운 작업 환경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에 대해서 답을 찾으려 노력 중입니다. 대체 가능한 사람이지만, 자신만의 기준이 있기에 언제나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고 싶은,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고 싶은, 이 이중적인 마음을 ‘또라이’ 아니냐고 표현했더니 선생님께서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산다며 ‘아무도 나를 모르지만, 돈이 많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던 류승수 씨의 명언에 대해 이야기하시더라고요. 더불어 ‘아무도 나를 모르는 것’도 어쩌면 지금 현재만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며, 실제로 그 상황이 되면 '모두가 나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해 주는데’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조건이 더 붙게 될 거라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생각하며 산다며 위로(?)해주시는 반면, 생각을 평가 내리려고 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얘기해 주셨어요. 직장에서 일을 하는 과정, 결과를 평가 내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누군가의 생각을 특히 자신의 생각을 평가한다는 게 어찌 보면 자신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고 높기 때문일 거라고. 그 기준도 왜 세우게 됐는지, 원인을 찾아보라 하셨지만 솔직히 상담할 때 말고 혼자서 꼬리의 꼬리를 물고 생각을 한다는 게 심히 지루하더라고요. (상담 후에 자기 돌봄 시간을 가지려고 해도 1도 못 함. 아니 안 함)
이유를 찾는 ‘왜’보다 이걸 ‘왜’하고 있나 라는 의문을 갖고 있는 제 표정을 읽으셨는지, 인생에 대한 해답을 찾는 건 빨리 되지 않는다고, 명확한 답을 듣고 싶으면 사주를 보러 가는 게 가장 빠르다는 얘기도 해주셨지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정답이 있다면, 그 길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데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막막함을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정답도 오답이 될 수 있고, 오답도 정답이 될 수 있는 게 인생이라지만 ‘평가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가진 저는 남들이 옳다는 길로 가고 싶고, 평범하게, 아니 평범 보다는 조금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싶은 이 기질부터가 문제인 것 같고요. 이렇게 '문제'라고 평가, 판단하는 것조차 고쳐야 할 텐데.. 30년 넘게 이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바꾸겠습니까. 그럴 수 있는 답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다음 편지는 최대한 빨리 보낼게요. 사실 4번째 상담까지 다 끝났답니다. 하하.